정권과 보수언론이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성주 군민들의 움직임에 대해 ‘외부세력론’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15일 중앙일보가 김항곤 성주군수의 “외부 시위꾼 개입 용납 안 한다”는 발언을 보도한 이후 일제히 외부세력 책임론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18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일제히 ‘외부세력’과 관련한 보도를 지면에 실었으며, 특히 조선일보는 ‘융단폭격’ 규모의 기사를 지면에 배치한 것도 모자라 <예상대로 성주에 외부 시위꾼 끼어들었다>라는 제목의 사설로 사드 반대에 나선 민심을 강하게 비난했다.

조선일보 18일자 사설

여론이 이렇게 돌아가자 경찰도 여기에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같은 날 강신명 경찰청장은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는데, 성주군에서 열린 사드 반대 집회 등에 외부 참가자들이 있는 걸로 확인됐다면서 세부적인 내용은 확인 중이라고 설명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강신명 경찰청장은 ‘외부세력’의 정의에 대해 “성주군민이 아닌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서 성주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니다가 타지로 간 사람은 성주군민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더 엄격하게 말한다면 주민등록에 등재 안 된 사람”이라고 부연도 했다.

의문이다. 보수언론은 ‘외부세력’에 대해 사실상 구 통합진보당 등 전통적인 ‘반미운동권’의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 강신명 경찰청장의 발언도 그런 측면의 연속선상에 있다. 그렇다면 성주에 가족들이 살지만 단순히 바로 옆인 칠곡군으로 이사 간 사람 역시 외부세력이 된다. 인근에서 가장 큰 도시인 대구광역시에서 일을 하기 위해 나가있는 사람도 외부세력이다. 사실상 생활권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이런 사람들을 ‘반미운동권’으로 규정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비합리적이다.

성주군민 중에도 구 통합진보당원이 있을 수 있다는 점 역시 ‘외부세력론’의 허약한 실체를 보여준다.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1순위를 받아 국회의원이 됐다가 부정경선 사태에 책임을 지는 의미로 사퇴한 윤금순 전 의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윤금순 전 의원은 1988년 성주군 농민회장을 지낸 최진국 씨와 결혼한 이후 성주에서 참외농사를 지어왔다. 강신명 경찰청장의 도식대로 하자면 윤금순 전 의원은 외부세력이 아닌데, 보수언론의 도식으로 하면 반미운동권이 된다. 이런 판국에 외부세력이니 아니니를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경찰의 충심은 이해한다. 일국의 총리가 백주 대낮에 온갖 봉변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재킷 상의를 빼앗겨 민감한 정보가 들어있는 수첩과 휴대폰을 분실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경북경찰청장은 얼음이 든 물병에 맞아 피를 흘리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경찰 입장에선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사드 배치로 이미 ‘피해자’가 돼버린 성주군민들에게 칼을 들이대기는 어렵다. 그러니 ‘외부세력’을 ‘반미운동권’과 연결해 불온한 상상을 조장하는 상징조작을 감행하는 것일 테다.

1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서울종합청사에서 열린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황교안 국무총리와 강신명 경찰청장이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사드 배치는 성주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적 사안인 문제에 대해 당사자가 아니면 말할 자격이 없다는 식의 태도는 사실상의 폭력일 수 있다. 보수언론이 이런 사태만 터지면 꺼내드는 외부세력, 상습시위꾼, 운동권 등의 규정과 이에 대한 비난도 건강한 논의를 막는 악성 담론의 대표적 사례로 밖에 볼 수 없다. 장기적으로 보수언론과 정권의 이런 태도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메시지 반박이 어려우면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말이 있는데, 결국 사드 배치 반대론에 반박할 말이 없으니 외부세력론을 꺼내든 것 아니냐는 비판을 자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이 꺼내들고 있는 또 다른 전가의 보도인 ‘님비’ 프레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구경북 출신 국회의원들이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는 찬성한다면서 자기 지역에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특히 이런 사안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만일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해당 지역 출신 정치인들이 자기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면 반대 여론에 올라타고 정치적 생명연장을 기도할 게 아니라 자기 신념을 지역민들에게 설득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이들의 태도를 ‘님비’로 부르면서 악용하는 보수언론의 태도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언론의 특정 사안에 대한 관점은 일관되거나 공평해야 한다. 보수언론의 관점에서 정리하면 어떤 이유에서라도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외부세력이거나 반미운동권이다. 한반도 사드 배치에 찬성하지만 자기 출신 지역 배치 반대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지역이기주의자들다. 오직 어느 지역이건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나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순수한’ 성주군민의 목소리만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이건 담론이라는 차원에서는 일종의 ‘함정’이다.

언론이 이 문제를 성실하게 다루고자 한다면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한 찬반양론을 다루거나 찬성 입장 중에서 각 지역 배치를 지지하는 입장을 비교하는 게 정공법일 것이다. 지금 정공법이 아닌 방법으로 문제를 다루는 것은 ‘논점 흐리기’라는 혐의를 피해갈 수 없다. 자기들이 문제를 신의성실하게 다루지 않으면서 ‘괴담’ 운운 하는 것은 넌센스다. 사드에 대한 과장된 오해는 물론 존재할 수 있지만, 이를 해소하는 길은 오직 갈등을 조율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바람직한 정치에 있다. 꼼수와 괴담의 대결구도는 누구도 설득하지 못한다. ‘외부세력’을 운운해 달성할 수 있는 정치적 목표는 보수세력의 단결과 콘크리트 지지층의 복원이라는, 불건전 정치의 확대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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