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주간 <듀엣가요제>는 매우 특별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임을 전제로, 김윤아가 출연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김윤아는 보란 듯이 3주 연속 우승을 차지하고 <듀엣가요제>를 떠났다. 특히 이번 주에 부른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는 <듀엣가요제>에 길이 남은 명곡으로 기억될 것이다.

말보다는 노래하는 것이 편한 청년 채보훈과 함께한 이번 노래는 원곡이 쓸쓸함으로 위장한 허무를 바닥까지 다 긁어냈다. 어쿠스틱 기타 솔로로 연 시작은 차분해 보였다. 원곡과 대선배에 대한 예의를 갖춘 것일지 모르겠다. 사랑이 끝난 뒤의 일반적인 정서와 심정을 담담한 투로 노래했다.

MBC 예능프로그램 <듀엣가요제>

그러나 이내 긴장이 고조되며 듣는 이의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하는 템포로 전환이 됐다. 김윤아는 이전과는 달리 동작을 최대한 절제하며 노래에 집중했다. 그래서 더욱 처절했다. 어찌 보면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연설을 하는 것 같았다. 국가의 위기를 떨쳐내기 위해서 피를 토하는 심정의 연사를 떠올리게 했다. 사랑의 끝을 서러워하는 노래에서 연결시킬 수 없는 매우 부적절한 연상이었다.

김윤아 2집의 노래들이 오버랩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 앨범에는 히트곡 <야상곡>과 <봄이 오면>이 수록되어 있지만 오히려 더 독하게 마니아를 끌어 잡는 노래들은 다른 것들이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사랑,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닐 마음의 사치>, <미저리>, <나는 위험한 사랑을 상상한다>, <세상의 끝> 등등. 이번 주 김윤아가 부른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가 유난히 반가웠던(?) 이유일지 모를 일이다.

MBC 예능프로그램 <듀엣가요제>

김윤아의 삶은 잘 모른다. 그렇지만 노래하는 김윤아는 정말 특별하다. 유니크하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말로는 김윤아를 표현하기는 매우 부족하다. 개인적으로 김윤아는 우리나라 많은 가수들 중에 가장 우울하게 노래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매일 듣지는 않지만 어떤 날에 한번 꽂히면 휴대폰 배터리가 동이 나도록 반복해서 듣게 한다.

그런 그의 어떤 노래들은 지독하게 우울해서 노래가 끝나면 그대로 죽어도 좋을 듯한 감상을 준다. 그런데 막상 노래가 끝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후련함 아니 해방감으로 인해 힘이 생긴다. 상처 난 곳을 더 억세게 후비고 들어내어 새 살을 돋게 하는 치유처럼 말이다. 그래서 김윤아의 어떤 노래들은 천사와 악마의 목소리를 동시에 들려주는 것만 같다. 그렇게 김윤아의 노래를 들을 때면 일상에서 겪을 수 없는 극단의 감정으로의 선동을 겪게 된다.

MBC 예능프로그램 <듀엣가요제>

이번 주 <듀엣가요제>에서의 김윤아는 다시 한 번 감정의 극단으로 누군가를 끌고 갔다. 워낙에 원곡자인 양희은의 노래도 들을 때마다 극심하게 가슴이 요동치게 했는데 김윤아가 해석한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한 종말을 고하는 것만 같았다. 이미 사랑이라는 것에서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 왠지 겁이 났다. 어리석게도 노래 한 곡 들으면서 겁에 질려버렸다.

그래놓고는 다음 주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 참 난감할 뿐이다. 다음 주에는 그간 <듀엣가요제> 우승자들만의 왕중왕 전을 한다고 하지만 김윤아는 역시 거기에 없다. 김윤아를 티비에서 오래 보고자 하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쉽지만 아쉬워도 별 수 없다. 언제가 또 툭하고 등장할 때를 기다려볼 수밖에.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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