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왜 참사에 대해 정치적으로 찬성 반대를 하느냐’. <이정현 녹취록 파문으로 돌아본 세월호 보도 점검 긴급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한 한겨레21 정은주 기자는 세월호 참사를 취재하며 만난 독일 국적의 한 기자로부터 이 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국가적 참사라고 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참사의 원인을 찾아 다시는 그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텐데 한국의 언론 기자들의 보도를 보면 정치적 유불리에 좌우된다는 외신기자의 의문이다. 이와 관련해 정은주 기자는 “그 질문에 여전히 답이 없다”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그 답을 찾지 못한다면 참사는 반복된다. 그리고 우리는 또 똑같은 기사를 쓸 것이다….”

한겨레21 정은주 기자의 이 같은 발언은 한국사회 그리고 언론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준다. ‘이정현녹취록’을 통해 드러난 청와대의 보도통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의 말대로 이정현 당시 홍보수석의 행위를 ‘통상업무’의 맥락으로 인정하고 넘어간다면 똑같은 보도통제가 반복될 것이란 말이다.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를 비롯한 공영언론 보도책임자에 전화를 걸어 아주 쉽게 “뉴스 빼라”고 지침을 내릴 수 있는 사회가 정상적인 걸로 인준되는 거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공적 책무를 쥔 이들은 ‘선-후배’라는 사적인 관계로 대화를 하며 뉴스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요리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세월호 침몰에 대한 구조작업에 실패한 것은 정부 뿐 아니라, 언론도 마찬가지라는 진실을 확인한다.

국가적 재난상황이 발생하면 공영언론은 단순 ‘전달자’가 아닌 ‘구조의 당사자’로서 기능해야한다. 언론학계와 시민사회가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 주문이다. ‘이정현녹취록’에서 KBS 김시곤 당시 보도국장과 이정현 홍보수석의 대화 중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이 선배, 솔직히 우리만큼 많이 도와준 데가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중요할 땐 극적으로 좀 도와주십시오”. 언론노조 김동원 정책국장은 이 대목에 주목해 “정부와 방송사 모두 세월호 참사의 일부를 구성한 당사자였다”고 말한다.

문제는 2014년 ‘기레기’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언론인들의 자성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건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언론들은 시종일관 정부와 행보를 같이 했다. 세월호참사를 이제 잊자고 했고,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악의적인 공격을 했고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는 수많은 보도를 했다. 세월호특조위가 출범한 이후에도 언론매체들은 끊임없는 공세를 퍼부었다. 세월호특조위 김형욱 언론팀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첫 출근일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3만원 케이크’에 대한 왜곡보도에 대해 해명하는 일부터 했다고 개탄했다.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됐다. 팽목항에서 웃으며 사진 찍은 것을 두고 앞뒤 맥락을 자르고 파렴치한으로 몰아가거나,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조사대상으로 포함시키자 어떠한 근거도 없이 ‘위헌’이라고 몰아가거나, 박근혜 정부의 발표대로 6월 30일 세월호특조위 활동이 종료됐다고들 보도하면서 반대로 세월호특조위가 새롭게 밝혀낸 진상규명 내용들에는 침묵했다.

정부의 일방적인 세월호특조위 활동 강제종료에도 58명 중 55명의 조사관들이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출근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예산은 없다. 이에 유가족들은 쌈짓돈을 꺼내 조사관들의 출장을 위한 차비를 마련해줬다는 이야기에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최근에는 김관홍 잠수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세월호의 인양작업은 정부의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세월호 유가족들은 여전히 거리를 헤매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세월호 참사는 ‘종료’된 게 아니다.

언론노조 김동원 정책국장은 그런 점에서 ‘이정현녹취록’을 두고 우리의 논의가 ‘청와대에 의한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 훼손’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안타깝게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왜곡보도라고 손꼽히는 KBS 리포트들 중 일부 혹은 전부는 길환영 사장의 사퇴와 KBS 독립성을 위해 파업에 참여했던 이들의 손에서 나왔다.

일선 기자들 역시 기자로서의 책무를 다시 한 번 점검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중국 내 식당을 탈출해 집단 입국한 북한 종업원들의 변호를 맡은 민변에 대해 ‘북한 하수인’이라는 악의적인 보도에 동참하고 있지는 않은지, 사드배치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 정부가 주는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쓰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방송독립’, 그 이후를 구체적으로 그려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KBS 길환영 전 사장의 사퇴로 인한 생긴 공백기를 시청자들은 지켜봤다. 문창극 총리후보자에 대한 도덕성 등 자질 검증을 통해 부적격 인사로 판명돼 낙마되는 데 KBS 보도가 큰 역할을 한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KBS 등 방송사 구조에 대한 게 그것이다. 현재의 공영언론은 이 때문에 ‘시민’보다는 ‘권력’에 더 밀착돼 있다.

공영방송의 주된 가치는 무엇인가. 언론현업인들은 방송독립 요구를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시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특조위의 활동기간이 보장되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 사드 한반도 배치의 문제점을 제대로 짚고 그것이 시민들의 건강 등 복지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분석 보도를 볼 수 있을 것인가. 메르스 사태에서 공영방송의 보도는 어떻게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현재의 보도와 1%도 달라질 것이 없다면 여전히 시민들은 ‘공영방송이 왜 필요한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한겨레21 정은주 기자는 ‘편집장의 결단으로 세월호참사와 관련해 집중 취재 및 보도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작은 매체가 가지는 이점이다. 그러나 KBS와 MBC 등 타 언론사들이 세월호 참사 등 국가 재난 사태 전담기자를 배치하지 않았던 것은 조직이 비대하기 때문일까. 한겨레21이 세월호참사와 관련해 1~2명을 집중 배치할 수 있다면, KBS를 비롯한 MBC 등 대형언론사는 10~20명의 기자를 배치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건 방송사의 규모가 아닌 방송의 가치와 철학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정현녹취록’, 이제 구체적인 답을 내려야할 때다. 또 다시 참사를 반복하며 똑같은 기사를 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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