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또 다른 기대작 <함부로 애틋하게>가 시작됐다. 김우빈과 수지 그리고 이경희 작가, 그 이름값만으로도 설레는 것은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태양의 후예와는 또 다른 색깔과 향기를 가진 멜로를 만날 생각에 심장은 함부로 두근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7월 6일이 찾아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기대했던 많은 것들이 빗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남녀 주인공을 설명하는 장면들이 길게 이어졌는데 너무도 평면적이어서 확 다가서는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그저 오랜만에 보는 김우빈과 수지에게 감탄하는 정도에 그쳐야 할 수준이었다.

KBS2 새 수목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

또한 수지가 김우빈을 섭외하겠다고 나서게 되는 동기에 대해서도 좀 더 극적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랬더라면 엔딩이 더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러지 않더라도 엔딩은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첫 회에 나오리라 생각지도 못한 명장면이었고 이 드라마의 감성이 어떨 것인지에 대한 예고였다.

‘함부로 애틋하게’는 앞으로 매우 다양하게 활용되겠지만 첫 회의 엔딩은 애틋까지는 몰라도 함부로 아름답게라는 말은 해도 좋을 장면이었다. 이 드라마와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오래 전에 읽은 박범신의 소설 <풀잎처럼 눕다>가 떠올랐다. 내용, 주인공들의 이름도 다 잊었지만 그 소설의 어느 부분엔가 한없이 차갑고 순수한 설경이 있었다는 기억 때문일 것이다.

인적도 드문 시골 도로 바닥에 노을을 두고 혼자 차를 몰고 가버린 신준영이 갑자기 차를 돌리더니 노을을 찾았다. 버리고 갈 때는 오히려 이해가 됐지만 다시 찾는 모습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찾지 못하면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헤매던 신준영이 어느 지점에서 차를 멈췄다. 저 앞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한 여자가 보인다. 노을이 틀림없다.

차 안에서 노을을 발견한 장면부터 진짜로 놀라기 시작했다. 이런 앵글이 드라마에서 가능했다는 사실이 감동스러울 지경이었다. 내리막이었고 길게 이어진 1차선 도로였다. 차량 통행이 드문지 길가의 눈이 도로 한복판을 향해 삐쭉 나와 있기도 하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 여름에 보는 겨울이 아니라 그냥 여기도 저기도 다 겨울이 된 기분이었다. 아직 이 드라마에 기대만 존재하지 확인된 매력은 하나도 없었는데 갑자기 잡고 한 번도 놓은 적 없는 소설의 결말 부분을 읽는 것처럼 감정이 솟구쳤다. 그냥 그 풍경이 주는 아련함에 중독된 기분이었다.

KBS2 새 수목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

신준영은 차를 몰고 언덕을 내려가 차를 세우고 노을에게 달려갔다. 그런데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나왔다. “너 나 몰라?”였다. 두고 가서 미안하다는 말이라든지 아니면 걱정했다는 말이 보통일 상황에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노을은 다분히 엉뚱한 대답이라는 냄새를 폴폴 날리며 너스레로 답한다.

그러자 신준영이 화가 잔뜩 나서 소리를 지른다. 다시 “너 나 몰라!” 그러자 노을의 표정은 침착 혹은 경멸하는 감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는 대답했다. “알아, 이 개자식아” 여전히 의문일 수밖에 없는 대화지만 드라마 좀 봤다면 이제 답은 나왔다. 이 둘에게는 오래 전 악연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집세도 오르고 뇌물을 받은 게 들통이 나서 직장에서도 쫓겨난 절박감이 스스로 신준영을 찾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이야 보면 아는 것이고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홀딱 반하고 말았다. 그림 같은 풍경이 아니라 소설 같은 풍경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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