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록을 자세하게 보면요, 이정현 당시 홍보수석이 부탁을 합니다. 읍소를 하거든요"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 발언이다. 최근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세월호 사건 당시 KBS 김시곤 전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 통제'를 시도한 것에 대한 해명일 것이다.

그렇다. 어떤 면에선 김도읍 부대표의 말도 맞다.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은 분명 부탁한다며 읍소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런데 읍소는 약자가 강자에게 하는 것이 아닌가.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읍소는 순식간에 '협박'으로 돌변할 수 있다. 더욱이 당사자가 청와대와 KBS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새누리당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가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KBS 사장을 결정하는 KBS 이사회는 여야 추천 이사 비율이 7대4로 여권이 추천하는 이사의 수가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KBS 사장을 선출할 때에는 이사회의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선임한다. 정부여당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법적으로 KBS 사장은 방송편성에 전혀 개입할 수 없다. 하지만 3일 오후 MBN <시사스페셜>에 출연한 김능구 폴리뉴스 대표는 "(KBS사장은) 실제로는 막강한 인사권과 경영권을 가지고 내부를 통제한다"며 결국 이번 이정현 보도 통제 사건이 KBS의 지배구조 문제라고 진단했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 공영방송은 여야 할 것 없이 정권을 잡았을 때 대통령과 여당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KBS 사장 선임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지배구조 개선을 역설했다.

실제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문제는 언론개혁의 오래된 주제이다. 19대 국회는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공영방송 이사회의 이사 숫자 및 여야 추천 이사 비율 조정 등을 합의했고, 사장 임명제청시에 전체 이사의 3분의 2 혹은 5분의 4 이상이 찬성토록 하는 '특별다수제' 도입에 대해서도 의견을 모은 바 있다.

그러나 국회의 이러한 시도는 정권의 반대 속에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20대 국회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문제를 사실상 원점에서부터 논의해야 하지만 전문성 있는 인사의 관련 상임위 배치 문제부터 몸살을 앓았다. 쉽지 않은 미래를 예고한 것이다.

정부여당이 임명하는 KBS 사장의 사내 권력이 '무소불위'고 이를 바꾸려는 노력이 국회에서 무위로 돌아가는 판국에 청와대 홍보수석의 말이 단순한 읍소로 들렸을 가능성은 낮다. 새누리당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김도읍 부대표와 같은 인식이 얼마나 사리에 맞는 것인지 의문이다. 과연 이정현 의원이 통화 상에서 김시곤 전 국장에게 한 발언을 진심으로 '읍소'라고 생각하는지, 김도읍 부대표에게 진의를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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