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2016 총선시민네트워크’(총선넷) 사무실이 있는 참여연대와 총선넷에 참여한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집을 들이닥쳐 컴퓨터와 외장하드, 그리고 활동가들의 수첩을 압수수색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다. 낙천낙선 후보자를 지정하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이를 공표한 것은 문제라는 게 선거관리위원회와 수사기관의 주장이다. 총선넷은 23일 참여연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경찰과 선관위를 비판하며 선거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총선넷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지하강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선관위의 고발과 경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비판했다. (사진=미디어스)

총선넷은 수십개 시민단체들이 4‧13 총선에 맞춰 출범했다. 선거과정에서 각 정당과 후보들의 정책, 공약, 의정활동 등을 검증하고 평가해 이를 바탕으로 베스트(best) 정책과 워스트(worst) 후보를 선정했다. 정치, 사회, 환경, 평화 등 각 분야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온 단체들이 각 정당의 총선 공약과 지역구의 쟁점을 분석하고 평가해 낙천낙선대상을 골라냈다. 시민단체들이 그간 해왔던 ‘유권자 운동’의 연장선이었다.

선관위와 경찰이 문제를 삼은 대목은 총선넷이 △문서, 도화, 시설물 등을 통해 불법 선거운동을 했고 △기자회견에서 불법으로 확성기를 사용했으며 △미신고 불법집회를 했으며 △선관위에 사전에 신고하지 않고 여론조사를 벌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총선넷은 낙천낙선운동 과정에서 △“나는 ○○○을 안 찍어요”와 같은 ‘구멍 뚫린 피켓’을 썼고 △선관위가 인정한 기자회견에서 확성기를 쓴 것은 불법이 아니며 △구호 없는 합법 기자회견을 진행했고 △베스트, 워스트 선정은 여론조사가 아닌 낙선운동 캠페인이라고 반박했다.

안진걸 2016총선시민네트워크 공동운영위원장(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우리는 구호를 외치는 것을 정말 좋아하지만,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외치지 않았다. 미신고집회가 아닌 선관위가 인정하는 합법적 기자회견이었다”며 “심지어 경찰과 선관위는 누가 핵심실무자인지도 확인하지 않고 고발하고 압수수색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찰이 무리하게 압수수색을 한 것은 시민단체에 대한 흠집내기이자, 보수단체에 대한 의리 지키기 차원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안진걸 총선넷 운영위원장은 기자간담회 직후 “경찰이 컴퓨터 서버와 외장하드는 압수수색했지만, 정작 자신들이 불법이라고 주장한 이 피켓은 가져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사진=미디어스)

박정은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시민단체마저 입을 다물어야 한다면, 시민단체의 활동에 제약을 주려고 한다면 앞으로 선거과정에서 후보자들의 고성방가 외에 목소리는 없을 것이고 정책 판단과 후보자 정보 제공도 제약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유권자들의 정치적 발언과 의사 표현이 심각하게 퇴행할 수밖에 없다”며 “일각에서는 ‘어버이연합에 대한 수사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경찰과 검찰이 눈물겨운 고민을 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이런 비아냥을 수사기관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총선넷 참여 시민단체들은 이번 수사를 계기로 선거법 개정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서복경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부소장은 “낙천낙선 대상자를 지정해도 되지만 정보를 유통하지는 말라는 것이 현행 선거법과 현실의 ‘괴리’”라면서 “20대 국회에서는 A라는 정책에 동의한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되고, a라는 정치인이 당선되면 좋겠다고 말하면 잡혀가는 난센스와 아이러니 자체를 걷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양홍석 총선넷 법률지원단 변호사는 “광우병대책위에 대한 수사가 ‘야간 옥외집회 금지는 위헌’이라는 판결로 이어진 것처럼, 이번 사건 수사를 계기로 선거법과 압수수색에 관해 묵혀온 문제를 해결할 계기로 접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진걸 총선넷 공동운영위원장은 “누가 (이번 고발과 수사를) 기획했든 총선넷은 이번 수사를 전화위복으로 삼아 말과 표현을 잡으려는 비판 여론을 조성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선관위와 경찰이 문제 삼은 총선넷의 피켓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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