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기 위한 용기가 필요한 때다.”

‘삼성 비자금’ 사건을 둘러싼 언론의 보도행태가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한국기자협회(회장 정일용)가 31일 “삼성 불법 비자금 계좌 사건은 ‘세게’ 취재하고 ‘크게’ 보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한겨레 11월1일자 1면.
기자협회는 “경제권력에 대한 비판 보도는 거의 모든 언론이 외면하고 싶은, 보통의 경우엔 종종 외면해왔던 영역”이라며 “다만 이번 사안의 경우 몇몇 언론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제약을 넘어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겨레, 시사인 등을 평가했다.

기자협회는 이번 사안 보도에 소극적인 대다수 언론에 대해서는 “정부의 브리핑룸 통폐합 조처에 대해 ‘언론자유 침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몇몇 언론사들은 ‘경제권력’ 앞에서는 꼬리 내린 강아지꼴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이날 한국기자협회가 발표한 성명 전문이다.

삼성 비자금 사건 제대로 보도해야 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자본주의, 아니 어떤 사회체제에 살더라도 이 말은 거역할 수 없는 진실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진실은 반쪽이다. 온전한 진실이었다면, “배 부른 돼지보다는 배 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다”는 말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삼성그룹의 핵심인 구조조정본부에서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이 내 이름으로 돼 있던 50억원 규모의 비자금 계좌를 운용했다”고 폭로하고 나섰다. <한겨레> <한겨레21> <시사인> 등 일부 일간지와 시사주간지들이 이 사안을 ‘크게’ 보도했다. 방송을 포함한 나머지 언론들은 ‘작게’ 보도했다. 아니, 언론계 표현을 빌리면 구석에 처박았다.

‘삼성 불법 비자금 계좌 사건’을 크게 보도한 일부 언론사를 한국 저널리즘의 양심을 대변하는 언론으로 추켜올리자는 게 아니다. 이들 언론 역시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진실로부터 벗어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경제권력’에 대한 비판 보도는 거의 모든 언론이 외면하고 싶은, 보통의 경우엔 종종 외면해왔던 영역이다. 다만, 이번 사안의 경우 몇몇 언론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제약을 넘어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최소한,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언론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을 지켰다는 얘기다.

대다수 언론들의 보도행태는 언론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의도적 무시’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단어는 대다수 언론의 보도행태가 갖는 심각성을 드러내기엔 너무 점잖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말 정도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정부의 브리핑룸 통폐합 조처에 대해 ‘언론자유 침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몇몇 언론사들은 ‘경제권력’ 앞에서는 꼬리 내린 강아지 꼴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 불법 비자금 계좌 사건은 ‘세게’ 취재하고 ‘크게’ 보도해야 한다. 드러난 액수만도 50억원이다. 계좌가 개설된 우리은행과 삼성이 ‘공모’했을 정황도 엿보인다. 2003년 흐지부지된 대선자금 수사 때 삼성의 검찰 로비 실상의 일단도 드러났다. 2003년 삼성이 야당 대선후보에 건넨 돈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개인 돈만이 아니라 비자금 계좌에서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회원 동지들에게 진심으로 호소한다. 이번 사건은 크게 보도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기본이다. 지금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기 위한 용기가 필요한 때다. 그것만이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는 한국 저널리즘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회복하는 길이다.

2007년 10월 31일
한 국 기 자 협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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