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JTBC가 낫잖아?”

공영방송의 처량한 신세를 그대로 드러내는 말이다. 하지만 이 같은 미디어환경은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그랜드 전략에 따른 것이라는 게 학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박사는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까지 공영방송이 목적의식적으로 도구화됐다”며 “보수정부는 공영방송을 도구로서 두기 위해 빼앗아야한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사회적으로 공공적인 역할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 결과, 공영방송 제도가 유명무실화됐고 그에 반해 종편 등 사적 미디어들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사회가 복잡해지는 만큼 ‘공영방송이 쓸모 있는 조직’으로 변모하기 위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재차 제기됐다.

20대 국회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상황에서 KBS 8개 협회가 21일 주최한 <공영방송 독립을 위한 방송법 개정> 토론회는 오래된 숙원이기도 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제작자율성 확보’의 화두를 던졌다. 이 자리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발제를 맡은 정준희 박사는 “최근 공영방송 무용론이 나오는 등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공영방송의 경우, 제도에 대한 신뢰의 힘으로 굴러가는데 그 제도 자체가 무너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KBS이사회 등 공영방송 이사들은 자신을 추천한 정당의 후견주의를 추동하게 됐고, 그 속에서 공영방송은 저널리즘이라는 전문적 영역으로 존재하기보다는 자사 이기주의로 흘러갔다는 비판이다.

“승자독식 깨기 위한 특별다수제 단기적인 방안으로 고려해볼 수도”

공영방송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을 재정립하고 큰 틀에서 제도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게 정준희 박사의 설명이다. 그는 2009년 한나라당이 종편의 탄생의 발판을 위한 미디어법 개정과 같은 수준으로 새로운 미디어 생태계 구성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KBS 8개 협회가 21일 주최한 <공영방송 독립을 위한 방송법 개정> 토론회가 열렸다. KBS 노동조합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공동 후원했다ⓒ미디어스

정준희 박사는 공영방송 지배구조에 있어서 정치의 영향력에 따라 정치종속적인 △‘정부모형’과 정치반영적인 △‘의회모형’과 △‘시민모형’, 그리고 정치차단적인 △‘전문직모형’으로 유형을 구분했다. 정준희 박사는 “궁극적으로 방송의 정치로부터 독립하는 게 맞지만 그런 모델을 구현하는 나라는 몇 개국 안 된다”며 “그것은 제도의 구성상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문직 모형이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실현이 어렵고 비현실적”이라며 “왜냐하면, 전문직 모형이 가능하려면 실제로 기자와 제작진 집단이 자사 이기주의의 모습이 아닌 직능성 등을 갖춘 전문직이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권이나 시민들도 나와 견해가 맞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의 판단을 중시해야 하는 모형”이라고 설명했다. KBS 등 공영방송 구성원들 스스로 책무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20대 국회에서 어떤 모형을 채택할 것인지 논의하고 단계적으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KBS 내부에서도 조직문화 개편을 동시에 가져가야한다고 덧붙였다.

정준희 박사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장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옳다”며 “하지만 19대 대선 전 보도에 있어서 최소한의 중립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처방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치에 있어서 승자독식이 아니라 타협적 구조를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있다. 그 중 하나가 ‘특별다수제’”라면서 “또, 조직문화도 전문직모형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방법으로 집단의 동의로 만들어진 방송편성규약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준희 박사는 이 같은 단기적 방안을 장기적인 방안을 전제로 해야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정준희 박사는 장기방안으로는 사회적 신뢰와 기대를 높이기 위해 1~2년 깊은 논의를 통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 방향은 공영방송위원회 등의 논의테이블을 구성하고 현행 사장 추천권 등의 권한을 가진 공영방송 이사회의 기능을 축소하는 안을 제시했다.

KBS 고대영 사장이 편성규약 개정에서 손 떼야 하는 이유

고민수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는 ‘방송편성규약’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에 나섰다. 현행 <방송법> 제4조는 “종합편성 또는 보도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사업자는 방송프로그램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취재 및 제작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방송편성규약을 제정하고 이를 공표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KBS 고대영 사장은 이 같은 방송편성규약을 개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종사자’의 의견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고민수 교수는 “방송의 자유는 방송사 경영자의 자유권적 기본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주의에 있어 언론의 자유는 가장 중요한 권리 중 하나”라며 “개별 기본권 주체가 언론의 자유를 행사함에 있어서 토대가 되는 게 방송이며, 특히 지상파는 공익과 가장 밀접해 있는 방송”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고민수 교수는 방송편성규약 제·개정 과정에서는 반대로 ‘경영권’을 분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강택 KBS PD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전반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그렇지만 단기방안 등 구체적인 안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여야 7대 6 추천이야말로 정치적 후견주의를 공식화하는 게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손관수 KBS 기자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제작자율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해직 언론인들의 현업 배치에 대해서도 고민해야할 부분”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야당의 ‘의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토론회 사회를 본 강상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또한 “미방위원장은 새누리당이 가져갔다”며 “방송 등 전문가들이 포진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그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농성만하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우려를 전달했다.

20대 국회 미방위에 배정 받은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이 같은 우려와 관련해 “국회에 들어와보니 현실적인 것들을 무시할 수 없다”며 미방위원장직과 추혜선 의원의 미방위 배제에 대한 배경을 설명했다. 19대 국회에서 미방위원장은 새누리당 의원이 맡았던 상임위였고 추혜선 의원 또한 미방위 배정을 위해 노력을 했다는 설명했다. 이재정 의원은 “당 차원에서 공정언론특별위원회가 구성될 정도로 의지를 가지고 있다”며 “국회 선진화법으로 인해 3/5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어 상대방(새누리당)이 수긍할 수 있는 수준의 안이 필요하다. 타협하면서도 핵심을 놓치고 가진 않겠다”고 밝혔다.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 또한 “최근 7~8년 동안 언론환경이 얼마나 황폐화 됐는지 시청자들이 보고 있다”며 “공영방송 사장추천에 대한 특별다수제라고 하는데, 공영방송 이사를 뽑는 방송통신위원회 자체에서부터 특별다수제가 된다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KBS이사회가 현재 11명인데 대폭 늘리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토론회 내용을 참고해 입법하는데 참고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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