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진 신드롬을 가져온 <또 오해영>. 아마도 13일 방영된 13회에서 서현진은 지금까지의 망가짐 이상의 깊은 내면의 연기를 뽐냈다. 그런 서현진을 가능케 한 것은 이별한 여자의 심리를 처절하게 묘사한 명대사였다. 서현진의 대사와 내레이션으로 이어진 이 명대사는 사랑한 채로 이별한 한 여자의 아픔이 어떤 것인지를 너무도 치열하게 표현해냈다.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

그것은 차라리 시였다.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당신에 대한 기억 때문에
정말 어이없는 곳에서 당신이 생각나 조용히 무너질 때마다
아파라, 아파라, 더 아파라

발길은 앞으로 가는데 마음을 뒤로 가겠다고 울고 있을 때마다
아파라, 더 아파라

남녀가 사랑한다는 것은 참 많은 우여곡절을 내포하게 된다. 그 우여곡절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것은 역시나 헤어지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포스트잇처럼 수도 없이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커플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한두 번은 헤어짐의 싸늘한 단계를 누구나 겪게 된다.

오해영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평상을 위장한다. 다소 허술할 수밖에 없는 그 위장을 방패 삼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애써 괜찮은 척 하고, 사람들은 그런 오해영에게 속는다. 오해영의 위장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남의 아픔이 절대로 내 아픔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

그리고 오해영은 자기 자신도 속이려 애쓴다. 친구 희란의 모자가 바람에 날려 분수대로 날아가자 젖을 것을 알고도 굳이 달려가는 친절을 보인다. 그런 오해영에게 찾아온 것은 감기. 그렇잖아도 몸살이 나도 열두 번은 더 날 지경인데 감기에 걸렸으니 운이 좋은 것이다.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다.

그런데 뺨을 맞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오해영은 일부러 작은 구두를 신고 출근을 한다. 그 덕에 퇴근할 무렵 오해영의 뒤꿈치는 살갗이 벗겨져 피가 흥건하다. 하루 종일 구두에 시달리다 보면 그에 대한 생각을 덜하게 되니 그런 상처 정도는 오히려 고맙다. 게다가 집에 돌아와 마침내 그 작은 구두를 벗었을 때에 느끼는 아주 잠시 동안의 행복도 누릴 수 있다.

아무도 모르는 이런 자학을 알아챈 유일한 사람이 있다. 발소리만 듣고 구두가 불편하다는 것을 안다. 나에 대해서, 그 사소한 발소리의 변화까지도 알아버리는 그런 남자. 그 사람이 생판 남이라면 홧김에 반하기라도 할 텐데 그 사람이 하필 또 박도경이다. 흠칫 하지만 내색할 수도 없다.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

오해영이 할 수 있는 것은 몸을 더 괴롭히는 것이다. 작은 구두에 뒤꿈치가 까지는 정도로는 어림없다. 며칠째 감기에 달고 살면서도 약을 먹지 않는다. 어제보다 열이 좀 더 오르면 기분이 좋다. 더 아프면, “손 하나 까닥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 차리지 못할 정도로 아프면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사라”지니까. “열이 팔팔 끓을수록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사라”지고 “아플수록 마음은 편해”지니까.

그렇게 아파하다가 새벽녘에 문득 눈이 떠지면 휴대폰부터 확인한다. 본능적으로. 이성이 시킨 모든 자학이 쓸모없음을 넌지시 깨우치는 본능의 신호다. 느닷없이 그에 대한 기억이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기억이 온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현실 직시다.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

결국 오해영과 박도경은 서로 비슷한 짓을 하다가 병원 응급실에서 만났다. 그런데 아픈 탓인지 감정불구 박도경이 달라졌다. 게다가 미래가 보이는 기시감은 일종의 모의고사처럼 박도경의 감정오작동을 수정해주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한 말이 “너도 아파서 정말 반갑다. 씨...”였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말이지만 오해영의 닫힌 마음을 열기에는 최고의 대사였다. “너 안고 뒹굴고 싶어 병났다”는 그 상황에 참 부적절한 의외의 고백도 이상하게 시적으로 들렸다. 오규원의 시 <사랑의 기교1-K에게>라는 시가 떠오른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