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기업을 ‘구조조정’ 한다는 것은 곧 노동자들을 대거 ‘정리해고’ 한다는 뜻으로 인식된다. 1990년대 후반 금융위기, 2007~2008년 금융위기, 2009년 쌍용자동차, 2013년 한진중공업 사태를 경유하면서 목격한 모습들이 실제 그랬다. 국가와 자본은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노동을 쥐어짜고 잘라냈다. 이들이 밀어붙인 대책의 대부분은 주주와 오너 일가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에 집중됐고, 이를 위해 노동을 희생했다. 2007~2008년 직후 줄줄이 도산한 중소 조선소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 대우, 삼성 등 조선 빅3의 시급 7000~8000원의 일용직노동자로 살아가게 된 것도 같은 이유다.

조선업 구조조정 논의가 본격화한 2016년 지금, 정부와 자본은 같은 모습을 반복 중이다. 기름값이 반짝 하며 뛰던 시기, 조선 빅3는 해양플랜트 사업을 벌이며 값싼 노동력을 불러모았고, 이제 와서는 이들을 버리고 있다. 원청 빅3는 이미 수만명의 하청업체 노동자들과 물량팀을 정리해고했고, 이제는 직접고용 노동자들을 잘라내려고 한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있는 대우조선해양, 정몽준씨가 대주주인 현대중공업,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중공업은 모두 최소 수천명의 노동자들을 외주화하거나 정리해고하려는 자구안을 세웠다.

문제는 이번 조선업 구조조정이 굉장히 공격적이라는 점이다. 정부와 언론은 이번에도 호흡을 맞추고 있다. 정부는 이참에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려는 모양새다.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20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해 국회가 파견법 개정안 등 노동개혁을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박 대통령은 “조선소 실직자들을 재취업시켜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보수언론들은 교섭력을 확보해 자기 목숨을 지켜온 정규직노조를 두고 기득권 집단이라는 판에 박힌 비난을 내놨고, 이제는 ‘구조조정에 반대해 파업하는 조선소에는 공적 지원을 하지 말라’고까지 주문하고 있다.

동아일보 31일자 사설을 보자. <‘구조조정 반대 파업’ 조선사에는 혈세 지원 못한다>는 제목의 이 사설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오늘부터 이틀 동안 파업 찬반투표를 벌이는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 오는 17일 대의원대회에서 쟁의행위를 결의한다는 현대중공업 노조를 겨냥했다. 이 신문은 “조선 경기가 호황일 때는 임금 상승과 복지 확대를 누리다가 어려워지면 정부에 손을 내밀면서 임금과 고용 보장을 요구하는 행태는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의 전형적인 모습이다”라고 썼다.

▲동아일보 6월 13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정부가 주도해 만들 11조원 규모의 자본확충펀드는 조선사들의 인력 30% 감축, 설비 20% 축소 등 자구계획을 선결조건으로 설계된 것이라며 “조선사 노조의 반발 때문에 인력 및 설비 구조조정이 차질을 빚는다면 자구책은 빈껍데기에 불과해진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구조조정안이 “조선 3사를 연명시키는 미봉책이란 비판이 비등한” 마당에 “파업까지 하려는데 국고를 털어 지원할 이유가 없다”는 게 동아일보 주장이다.

따져볼 것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동아일보는 정부와 한몸이 된 것처럼 느껴질 만큼 공격적으로 선동한다. 동아일보의 주장은 기업에 과감한 결단을 촉구하던 과거의 선동 수준을 넘어선다. 이번을 계기로 개별 기업과 채권단뿐만 아니라 정부의 노동개혁에 힘을 실어주려 한다. 그러면서도 국회에 개입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 동아일보는 정치권에 대고 “과거 노조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던 여야 정치권도 개입을 자제해 구조조정의 성공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부에는 적극적인 개입을 주문하고, 정치권에는 개입하지 말라 촉구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동아일보는 노조라면 당연히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비난하고 있다. 그러면서 노조를 이익을 사유화하고 손실을 사회화해온 주체라는 식으로 공격한다. 그 동안 투입된 공적 자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채 말이다. ‘주주에게 배당하는 만큼 미래의 위기에 대비하는 기금을 마련해야 했다’는 상식적인 충고도 생략한 채 노조를 공격하는 데에 혈안이다. 노조에 대한 증오는 사설 이곳저곳에서 드러난다. 특히 노조 없는 삼성중공업은 공격 대상에서 뺐다는 점에서 이 신문의 의도는 두드러진다. 결국 노조가 마치 좀비처럼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혈세를 빨아들이려 한다는 게 동아일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물론 언론이 노동조합의 기득권에 대해 비판할 수 있다. 조선소 노조는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 있다. 일단 삼성중공업에는 노조가 없다. 자신의 권리마저 포기한 채 일만 해왔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그 동안 자본과 보수언론이 ‘달콤한 무분규 사업장’으로 추켜세운 노조다. 대우조선 노조도 비정규직 문제를 소극적으로 대해왔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주장하는 언론이 지적해야 할 노조의 행태는 이렇게 숱하게 많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노조를 좀비인양 묘사하고 비난하는 데만 집중했다.

지금 언론의 관심이 필요한 곳은 오히려 노조 없는 삼성중공업이다. 호황기 때는 노조 없는 삼성중공업의 노동자들도, 노조 있는 대우조선과 현대중의 노동자들도 비슷한 성과급을 챙겼지만 불황이 닥치자 노조 없는 삼성 노동자들은 말없이 떠났다. 노조 있는 대우와 현대 노동자들은 당연하게도 조합원의 이해관계를 지키려 한다. 노동과 자본의 당연한 싸움, 지극히 당연한 구도를 외눈으로 그것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과연 누가 좀비짓을 하고 있나. 호황 때 무분규 결정을 한 노조를 극찬하다 불황 때 쟁의행위를 결정하려는 노조를 물어뜯는 언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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