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중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 등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에 제동을 거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MBC 업무직(구 상시계약직) 노동자들에 대해 “일반직 노동자들과 동일·동종 업무를 수행하는 등 피고(MBC)에 대한 기여도 등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면서 수당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이는 중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차별에 있어서 반향을 불러일으킨 선고라는 점에서 법원의 판결문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3민사부(재판장 김도현)는 지난 10일 MBC 내 ‘업무직’ 노동자 97명이 회사를 상대로 ‘주택수당’, ‘가족수당’ 및 ‘식대’ 3가지 청구하는 <임금(기본수당)지급청구소송>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관련기사: 법원, 중규직 차별 제동…“수당 지급해야”)

MBC 상암동 사옥의 모습ⓒ미디어스

현재 MBC 내 정규직은 △일반직, △연봉직, △업무직(구 상시계약직)으로 구분된다. 모두 ‘정규직’으로 분류되지만 승진 및 임금 등에서는 차이가 있다. 업무직 노동자들은 일반직과 달리 보직이 부여되지 않으며 직급 승진도 이뤄지지 않는다. 업무직 노동자들에게는 주택수당(30만원), 가족수당(16만원), 식대(21만원) 또한 지급되지 않아 ‘임금 차별’이 존재해왔다. 때문에 MBC ‘광고국 광고영업부’, ‘드라마본부 드라마운영부’, ‘미술부’, ‘보도국 컴퓨터그래픽부’, ‘보도국 뉴스투데이팀(편집2부)’, ‘제작기술국 보도부’, ‘시사제작국 시사제작운영팀’, ‘영상기술부 영상팀’, ‘영상미술국 영상2부’, ‘예능본부 예능운영부’, ‘자산관리부’, ‘재무운영부’, ‘제작기술부’, ‘제작기술국 중계부’, ‘총무부 구내식당’, ‘시청자홍보부’에 소속 97명의 업무직(연봉직) 노동자들이 수당 등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MBC는 “원고들의 채용형태가 <근로기준법> 상 차별적 처우를 금지하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원고들은 채용형태와 업무의 난이도, 피고에 대한 기여도 등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논리를 통해 이들의 주장을 반박해왔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6조(균등한 처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성(性)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이렇듯 MBC ‘업무직’을 차별적 처우가 금지되는 사회적 신분으로 볼 수 있느냐는 부분과 일반직 노동자와의 동일노동을 인정하느냐 여부에 있었다.

법원은 “MBC가 일반직 근로자들에게만 이 사건 수당을 지급하고 업무직인 원고들에게는 이 사건 수당을 지급하지 않기로 하는 내용의 업무직 보수규정 부분과 원고들과의 근로계약 부분은 근로기준법 제6조의 균등처우규정을 위반하여 무효하다”고 결정했다.

“사회적 신분, 근로자가 회피할 수 없는 사회적 분류”

법원은 먼저 <근로기준법> 상 차별을 금지하는 ‘사회적 신분’과 관련해 “MBC의 업무직 또는 연봉직이라는 고용형태 내지 근로형태는 피고 회사 내에서 자신의 의사나 능력발휘에 의해 회피할 수 없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결정했다.

법원은 “‘사회적 신분’이란 사회에서 장기간 점하는 지위로서 일정한 사회적 평가를 수반하는 것으로서 사업장 내에서 근로자 자신의 의사나 능력발휘에 의해 회피할 수 없는 사회적 분류를 가리킨다”고 강조했다. 이어 “직업 뿐 아니라, 사업장 내의 직종, 직위, 직급도 상당한 기간 점하는 지위로서 사회적 평가를 수반하거나 사업장 내에서 근로자 자신의 의사나 능력발휘에 의해서 회피할 수 없는 사회적 분류에 해당하는 경우 이를 사회적 신분이라 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법원은 “이 사건에 관해서 보건대, 원고들과 일반직은 채용절차 단계에서부터 각자의 직역(職域, 특정한 직업의 영역이나 범위)이 결정돼 업무직이나 연봉직의 경우 자신의 의사나 능력과 상관없이 일반직처럼 보직을 부여받을 수도 없고 직급승진도 할 수 없는 구조”라며 “회사의 업무직 또는 연봉직이라는 고용형태 내지 근로형태는 피고 회사 내에서 자신의 의사나 능력발휘에 의해 회피할 수 없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업무 내용과 범위, 업무의 양이나 난이도, 피고에 대한 기여도 차 없다”

법원은 MBC의 ‘업무의 난이도 등 회사 기여도 등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 “부서장이나 팀장 등 간부직 직원을 제외한 일반직 근로자들과 원고들은 채용절차나 방법, 부서장 보직 부여 및 직급 승진 가능성 등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뿐 담당하는 업무 내용과 범위, 업무의 양이나 난이도, 피고에 대한 기여도 등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MBC의 대부분의 부서에서 업무직, 연봉직과 일반직 근로자들의 업무분장이 서로 구분되어 있지 아니하고 동일한 근무 장소에서 혼재돼 근무하고 있다”며 “업무의 구체적 내용에 있어서도 업무직, 연봉직과 일반직 근로자들이 상호 순환, 교차·교대 근무를 하거나 수행하던 업무를 상호 인수인계하며 부재 시에는 상호 대체인력으로 투입되기도 하면서 원고들은 일반 근로자들과 동일·동종 업무를 수행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 “업무직 및 연봉직 근로자들과 일반직 근로자들의 채용경로가 아닌 그 직원의 업무능력과 숙련도에 따라 정해진 업무분장을 기준으로 업무를 수행해왔다”고 강조했다. 특히, 판결문에는 “직종별 업무 유사도는 대부분의 부서에서 90% 정도로 보인다”고도 지적했다.

법원은 MBC 내 업무직만으로 구성된 일부 부서(시사제작국 시사제작운영팀, 예능본부 예능운영부, 총무부 소속 구내식당)의 경우에도 “과거 일반직이 하던 업무를 업무직으로 대체했거나 다른 부서의 근로자들보다 업무의 양과 질, 난이도, 피고에 대한 기여도가 과소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특히, 이번 소송에서 제기된 ‘주택수당’이나 ‘가족수당’, ‘식대’의 경우에는 “복리후생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 지급 대상에서 업무직을 배제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도 없어 보인다”고도 덧붙였다.

결국, 법원은 중규직이라는 지위가 근로기준법 상 차별적 처우를 해서는 안 되는 ‘사회적 신분’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러므로 동일노동을 하고 있는 일반 정규직들에게 지급되는 수당을 차별적으로 지급할 수 없다게 논리적 귀결이다.

한편,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조능희)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 13일 “조합은 계속 업무직/연봉직 처우개선을 요구하고 또 요구했지만, 안광한 경영진은 무시로 일관했다”며 “안광한 경영진이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경영진이라면 이런 소송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회사는 1심 판결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즉각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법원 판결에 따라 30억 원에 대한 1년마다 4억5천만원이 넘는 지연이자가 발생한다”는 점 역시 지적했다. MBC본부는 이번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업무직/연봉직 노동자(약 30여명)들을 위한 2차 소송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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