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대표예능 <무한도전>은 기발한 CG로 화제를 일으키며 마니아층을 형성해왔다. 이 같은 MBC 내 대표예능들의 컴퓨터 그래픽 제작은 업무직(구 상시계약직)들과 일반직이 함께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업무직 노동자들의 경우 고용은 보장돼 있지만, 임금 등 처우는 계약직과 다름없을 뿐 아니라 정규직은 꿈도 못 꾼다는 의미로 ‘중규직’으로 불려왔다.

MBC노사는 이를 개선하고자 TF를 구성해 논의해왔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해왔다. MBC 업무직들은 지난해 초 회사를 상대로 각종 수당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는데, 법원은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10일 오전 MBC 업무직 97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주택수당’, ‘가족수당’ 및 ‘식대’ 3가지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선고했다. MBC로 하여금 원고들에 2011년 3월부터 2015년 2월 말(소송제기 시점)까지 4년간 미지급된 수당을 지급하라고 판결이다. 단, 2011년 3월 이후 입사한 업무직 노동자들은 근무기간에 따라 청구한 금액을 받게 됐다. MBC가 이번 판결로 지급해야할 금액은 3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규직, 고용 보장돼 있더라도 차별은 안 된다는 의미있는 판결”

언론노조 MBC본부(본부장 조능희) 배성민 정책교섭국장은 “TF를 통해 업무직 노동자들의 처우에 대해 논의해왔다. 하지만 안광한 사장이 취임하면서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소송을 통해 처우에 대한 개선을 요구한 것”이라면서 “법원은 주택수당과 가족수당, 식대 3가지 요청 모두 인용해줬다”고 밝혔다.

MBC 상암동 사옥의 모습ⓒ미디어스

이번 소송은 ‘중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간 차별을 시정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게 언론노조의 설명이다. 이번 판결이 확정될 경우, MBC 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중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전망이다.

MBC본부 배성민 정책교섭국장은 “현행법 상 동일업무에 대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하지만 법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종신계약으로 고용이 보장돼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었다”고 설명했다. 사회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안정 노동이 문제로 대두되자 은행권을 중심으로 ‘무기계약직’이라는 이름의 중규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공공기관들이 앞장서 중규직을 확장시켜왔지만 고용만 안정화될 뿐 처우는 비정규직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컸다.

MBC본부 배성민 정책교섭국장은 “중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정규직과 동일 노동을 하고 있지만 고용이 보장돼 있다는 이유로 받고 있는 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웠다”며 “현행 노동법은 고용이 안정돼 있는 사람들까지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중규직에 대한 법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데 이번 소송을 통해 법원은 고용이 보장돼 있다고 하더라도 중규직에 대한 차별은 안 된다고 결정한 것이다. 가히 의미있는 판결이라고 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8조(차별적 처우의 금지) 제1항과 제2항은 “사용자는 기간제근로자임을 이유로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에 비하여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사용자는 단시간근로자임을 이유로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의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통상근로자에 비하여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간제근로자’ 등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한다. 반면, 중규직은 고용이 보장되면서 분류상 ‘정규직’으로 규정돼 있어 법의 허점이 있었다는 얘기다.

MBC에서 15년 일한 업무직 노동자 월급은 200만원?

MBC 업무직 노동자들 또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MBC는 2010년 상시계약직 노동자들을 노동조합과 합의해 ‘업무직’으로 개명하고 정규직으로 편입시켰다. 하지만 정규직 편입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임금 및 노동조건 상에서는 계약직과 다름 없이 지내왔다. 그러다보니 일반직의 경우, 호봉제를 통해 기본급과 각종 수당이 산정되는데 반해 업무직의 경우, 포괄임금제 성격이 커 ‘직책’, ‘직무’ 등 수당 지급에서 배제돼 왔다.

MBC에서 업무직으로 15년을 근무한 한 노동자의 월급은 200만원 안팎(상여금 제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MBC 내 업무직 노동자들의 업무는 단순 보조업무가 아닌 일반직과 동일했다. MBC본부 한 관계자는 “운영팀 프로그램 제작비 담당 업무직 노동자들은 일반직들과 섞여서 일한다”며 “업무는 같고, 일도 잘 한다”고 말했다.

MBC노사는 2014년 ‘업무직/연봉직 직원의 처우 개선을 위한 협의체’(TF)를 구성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급여와 복지제도와 관련해 제도적 개선안을 찾아왔다. 하지만 2015년 사측이 업무직 기본급 인상과 관련해 ‘성과에 따른 선별적 지급’ 조건을 제기하면서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그 후, 업무직 노동자들이 수당 청구소송(2015년 2월)을 제기하자 TF 운영은 아예 중단돼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승소 판결을 이끌어낸 신인수 변호사(소헌)는 “이번 판결은 업무직/연봉직에 대한 차별이 부당하다고 인정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특히, 이 사건에서 문제된 주택수당·가족수당·식대는 직무/직급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지급되는 보편적 급여이므로 차별의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는 점을 재판부에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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