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가 휴대전화 지원금 상한액을 현행 25~35만원에서 ‘출고가 이하’로 완화하기 위해 단말기유통법 관련 고시를 개정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9일 머니투데이가 정부, 업계, 정치권을 인용해 이 같은 내용을 단독보도한 뒤, 후폭풍이 거세다. 이에 대한 방통위 입장은 “정식으로 논의한 바 없다”는 것이다. 방통위가 논란을 진화하고 있지만 업계와 방통위에서는 상한제 조기 폐지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특히 상한제 폐지는 통신사와 제조사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사업자들의 상술에 가계통신비가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폐지 여부를 두고 진통이 예상된다.

우선 현행 규제는 이렇다.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말기유통법)’ 제4조는 “방송통신위원회는 가입자 평균 예상 이익, 이동통신단말장치 판매 현황, 통신시장의 경쟁 상황 등을 고려하여 이동통신단말장치 구매 지원 상한액에 대한 기준 및 한도를 정하여 고시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방통위가 정한 ‘이동통신단말장치 지원금 상한액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이동통신사업자가 지급하는 지원금의 상한액은 25만원부터 35만원까지다. 방통위가 2015년 4월 8일자로 정한 ‘이동통신단말장치 지원금 상한액’은 현재 33만원이다. 출시 15개월이 지나지 않은 이동통신 단말장치가 규제 대상이며, 이 규제는 단말기유통법이 시행된 2014년 10월부터 3년 간만 효력이 있는 한시적 규제다. 효력이 끝나는 시점은 2017년 9월 30일이다.

규제 종료를 1년여 앞두고 상한제 폐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실제 방통위가 이 같은 내용의 민원을 접수했기 때문이다. 박노익 방통위 이용자정책국장은 “지난 3월 단말기유통법의 성과를 점검하면서 전체적으로 시장을 들여다봤다. 상당부분 성과가 있다고 판단했고, 일부 미흡한 문제도 살펴봤다. 그 중 하나가 상한제 문제였다. 소비자단체들은 ‘과도한 규제’라고 했고, 이런 문제제기가 계속 있었다. 상한제 문제는 중소유통점과 골목상권 붕괴 문제와 함께 단말기유통법 시행 이후 방통위가 해결해야 할 여러 가지 과제 중 하나”라고 말했다. 박노익 국장은 “모법과 관련 없이 방통위는 상한액 결정권을 위임받았기 때문에, 고시를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고민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 열에 아홉 이상은 상한제가 지나친 규제 아니냐는 의견이었다. 찬성보다 반대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실무 차원에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해왔다”고 전했다.

결국 방통위 사무처가 상임위원들에게 이 문제를 보고하고 공식적으로 검토한 적은 없으나, 실무 차원에서는 오랜 기간 고민해왔다는 정도로 볼 수 있으나 문제는 상한제 폐지가 논란이 된 배경에 청와대와 기획재정부의 압박이 있다는 의혹 때문이다. 머니투데이는 주무부처인 방통위와 미래창조과학부는 상한제 폐지에 부정적이었으나, 청와대와 기재부는 반대 입장으로 정부 내 입장이 엇갈렸다며 “그러나 지난 3월 말부터 청와대 미래수석실 주관으로 관계부처들과 가진 비공개 대책회의를 계기로 지원금 상한제를 폐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조율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여기에 새누리당마저 상한제를 폐지하는 단말기유통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사진=현대캐피탈 블로그)

그러나 국회를 통한 상한제 폐지는 가능성이 낮다. 통신사와 가전사의 마케팅비용이 이용요금에 전가돼 가계통신비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20대 국회는 여소야대 상황이고,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에서는 삼성전자의 반대로 단말기유통법에서 빠진 분리공시제 등을 반영해 휴대폰 유통구조를 더욱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9일 우상호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상한제가 폐지되면) 통신기기 시장이 다시 정글로 바뀔 것”이라며 “우리 국민들은 왜 막대한 통신비를 부담해야 하는지 모르면서 공짜폰이라는 상술에 휘말려 고액의 통신비를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등이 고시 개정을 통해 상한제를 폐지하려는 것도 이런 상황 때문으로 보인다.

방통위 내부에서도 진통이 예상된다. 고삼석 상임위원은 10일 입장을 내고 “단말기 지원금 제도의 주무기관은 방통위임에도 불구하고 기재부, 미래부 등 유관부처가 사전협의 없이 월권으로 비춰질 정도로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유감을 표했다. 고 위원은 “지원금 상한제도 등 단말기 유통법의 시행에 대한 방통위의 공식입장은 지난 4월에 발표한 ‘단말기유통법이 시행되면서 시장안정화와 가계통신비 인하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 단말기 지원금 상한 관련 제도의 급격한 변화는 없다’로 이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만약 방통위 외부에서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지원금 상한제 폐지 등을 검토하고 있다면, 방통위의 독립성과 자율성은 물론, 정책결정과정의 합리성과 투명성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로 비판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일부 언론이 전망한 대로 방통위 또는 기재부가 다음 주중 ‘휴대폰 지원금 상한제 폐지’를 발표할 경우다. 진성철 대변인은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애초 방통위는 단말기유통법 시행 이후 각계 의견을 수렴해서 개선할 것이 있다면 수시로 개선방안을 내놓겠다고 했다. 상한제 폐지도 검토 방안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한 적은 없다”고 말했으나, 방통위가 논의를 시작한다면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 사업자의 민원을 접수한 저우부처와 관료가 누군지 드러나게 된다.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의 특성 상 상임위원 간 협의와 의결이 있어야 하는데, 상한제 폐지가 청와대의 지시가 맞다면 최성준 이기주 김석진 등 정부여당 추천 상임위원들은 그 동안 추진해온 정책방향을 틀어 다수결로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고삼석 위원은 “정책은 안정성과 신뢰성, 정책결정 과정은 합리성과 투명성에 기초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경제 활성화’라는 명분 하에 정상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방통위 외부에서 일방적, 내리꽂기식 정책결정을 강요한다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다. 방통위원을 들러리로 전락시키는 일은 없어야 하며, 정책의 과도한 ‘정치적 운용’은 자제해야 한다.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지원금 상한 제도는 단말기유통법에 근거하여 3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한 사회적·정치적 합의가 지켜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고 위원은 다만 “지원금 상한의 조정은 이용자 편익과 시장질서 안정 등을 고려한 정책적 판단에 따라 합리적 논의과정을 거쳐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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