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이영진의 이름을 대할 기회가 최근 많아지고 있다. 모델과 영화에 꾸준히 활동을 해왔지만 대중에게 이영진은 <여고괴담>의 그로테스크한 기억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다 최근에는 <복면가왕>에도 출연했고, <국수의 신>에서 검찰 수사관으로 드라마 연기에 현재 도전 중에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영진은 아직은 낯선 이름이었다.

그런 이영진이 <해피투게더>에 나온다는 것이 의외였다. 그나마 <복면가왕>에 출연해서는 짧게나마 발랄(?)할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이영진이 예능에서 웃음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전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예상대로 초반의 흐름은 주로 정다빈에 초점이 맞춰졌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이날 게스트들 중에서 정다빈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았을 것이기에 제작진 역시 그런 수요에 충실한 결과였다.

KBS2 <해피투게더3> '여신 선수권' 특집

그러는 동안 이영진은 거의 방청객 수준으로 잠잠했다. 모델답게 마른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 덕분에 날카로운 인상이 여전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해피투게더의 중심이 갑자기 이영진에게로 넘어갔다. 절대로 남을 웃기는 경험 따위는 없을 것 같았던 이영진이 에피소드를 이어가는데 이런 반전이 없었다.

애견족들이라면 대부분 경험했을지도 모를 일종의 애환이었는데 그것을 이영진이 하니 웃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었다. 이른바 강제애교사건인데, 그 전말은 이렇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다보면 마치 유모차에 탄 아기를 보듯이 행인들이 말을 건다는 것이다. 아기나 강아지나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대답도 못한다는 점에서 같은 경우라 할 것이다.

KBS2 <해피투게더3> '여신 선수권' 특집

결국 아기 부모나 강아지 주인이 대신 대답을 해야 하는데, 이 대답의 톤이 문제였다. 하긴 남자가 아니고서는 귀엽고 예쁜 강아지에게 무뚝뚝하게 말을 걸지는 않을 테니 어차피 대답을 할 것이라면 장단을 맞출 수밖에는 없기는 하다. 어쩔 수 없이 내일모레 마흔이라고 하는 이영진이 큰 키에 날카로운 인상에도 불구하고, 귀여운 말투로 강아지의 이름도 나이도 대신 말해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걸 그냥 에피소드로 들으면 예능 엠씨가 아니다. 게다가 상대가 유재석이다. 재연은 당연한 일이고, 예능에 출연한 이상 이영진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강제애교를 한 번씩 할 때마다 인상을 쓰는 그 진심의 피력이 반전의 웃음을 주었다. 그렇게 한동안 이어진 이영진의 애교 한 번에 욱 한 번을 보는 재미가 이날의 하이라이트가 됐다.

KBS2 <해피투게더3> '여신 선수권' 특집

이영진의 이런 반전 매력은 무척이나 신선했다. 유재석도 없는 캐릭터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칼 같은 태도가 매력적이었다. 박명수가 “왜 멀쩡한 사람이 결혼을 하지 않느냐”고 하자 “결혼 안 한 사람이 안 멀쩡한 건 아니잖아요?”라며 대응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통쾌하고 후련했다. 요즘 걸크러쉬라는 단어가 유행인데 진정한 의미의 센 언니란 바로 이영진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이영진은 적어도 외워온 모범답안대로는 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다. 또한 생각지도 못한 웃음에다가 편견에 주눅 들지 않는 당찬 모습까지 런웨이 위의 카리스마 그대로를 보여주었다. 그런 이영진은 장윤주, 한혜진에 이어 모델출신 예능인이 또 등장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강렬한 기대감을 갖게 했다. 또 보게 될까? 예능은 모르겠지만 일단 드라마 <국수의 신>에서 그를 계속 볼 수는 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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