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백혈병 논란’ 9년만에 마무리>, <삼성전자 백혈병 분쟁 마무리 국면>. 동아일보와 중앙일보가 9일자 신문에 실은 기사 제목과 부제다. 8일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 대해 종합진단을 실시하고 개선안을 마련하기 위한 옴부즈만위원회(위원장 이철수 서울대 법학과 교수)가 출범했는데,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이를 ‘백혈병 분쟁의 마무리’라고 봤다.

▲동아일보 2016년 6월 9일자 14면

지독한, 그리고 익숙한 표현이다. 지난해 9월 삼성이 55명의 피해자 가족과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의 반대에도 ‘반도체 백혈병 문제 해결을 위한 보상위원회’를 발족시킬 때 언론은 삼성 백혈병 문제가 마무리됐다고 했다. 또 지난 1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보상위원회 발족에 합의해준 가족대책위와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했을 때도 언론은 백혈병 분쟁이 일단락됐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마무리’다. 삼성이 옴부즈만위원회를 구성한 것은 분명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다. 위원회는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에 대해 종합진단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하는 역할”을 맡고 “종합진단 결과 개선이 필요한 사항이 발견되면 개선안을 제시하고 그 이행을 점검하는 역할”도 한다. 화학물질 관련 학술·정책 연구도 하고 재해예방 실행방안을 삼성에 권고할 수도 있다. 활동기간 3년에 3년 범위 내에서 활동을 연장할 수 있다.

옴부즈만위원회 출범은 지난 1월 삼성전자, 가족대책위, 반올림이 합의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 7월 ‘삼성반도체 직업병 조정위원회’가 삼성에 권고한 내용 중 일부일 뿐이다. 삼성은 보상, 대책, 사과 등 조정위가 제시한 3대 과제 중 대부분을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백혈병 외의 직업병에도 보상과 사과, 재발방지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반올림과 피해자 가족들의 요구였지만 삼성은 묵살했다. 반올림과 가족들이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앞에서 247일째(6월 9일 기준) 농성을 벌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언론이 이런 문제를 외면하고, 위원회 출범이 백혈병 문제의 마무리인양 보도하는 것은 삼성의 이해관계와 일치한다. 반올림의 권영은 활동가는 “삼성은 늘 ‘해결’과 ‘마무리’라는 말을 쓰고 싶어 했다. 그런데 삼성은 가해자에 해당한다. 언론이 삼성이 원하는 대로 보도하는 것은 문제다. 삼성이 제멋대로 한 일을 가지고 마치 문제가 해결된양 보도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백혈병 문제에 있어 언론은 삼성의 공모자로서 함께 침묵했고, 이제는 가해자와 한편이 돼 보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방희경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한국언론학회 학술대회에서 “(직업병 논쟁 과정) 1차 국면에서 언론은 침묵함으로써 소극적인 태도로 사건을 왜소화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면, (보상 국면이 시작된) 2차 국면에서는 삼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유사 공론장을 형성해 보상을 중심으로 사건을 확대화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언론이라면 삼성이 말하지 않으려는 문제가 무엇인지 지적해야 한다. 옴부즈만위원회 출범과 관련해서도 위원회의 과제가 무엇인지 제시해야 한다. 적어도 삼성의 노동자들이 어떤 직업병에 시달려왔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위원회가 밝혀낼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보도자료를 받아쓰고, 문제를 마무리지으려고만 한다. 정확하게 삼성이 바라는 논조로 말이다.

▲중앙일보 2016년 6월 9일자 12면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과 죽음은 무노조 경영, 경영권 승계 과정과 함께 삼성이 내막을 가리고 싶어하는 문제다. 2014년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상영 중일 당시, 비판 여론이 확산될 것을 우려한 삼성이 물밑으로 언론을 포섭한 일도 있었고, 지난해에는 삼성에 비판적인 기사를 연이어 쏟아낸 메트로에 편집국장을 교체할 것을 요구했다는 의혹도 터져 나온 바 있다. 삼성은 언론인 출신을 대거 영입해 2014년부터 이들에게 직업병 문제 관련 교섭을 맡기며 여론전을 펴왔다.

어떤 사람들은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의 사주일가가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 일가와 사돈지간이기 때문에 삼성에 치우친 기사를 쓰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더 일상적인 대목에 있다. 권영은 활동가는 “진보언론에서도 삼성에게 유리한 기사를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대광고주인 삼성에 대한 언론의 자기검열은 일상화됐다.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한국의 언론은 삼성이 주무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오히려 그럴수록 언론이 삼성과 관련한 문제를 제대로 보도해야 한다. 그래야 광고주에 휘둘리는 비정상적 언론 환경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는 지금 진행 중이다.


다음은 ‘삼성전자 백혈병 옴부즈만위원회 출범’ 보도자료 전문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 대해 종합진단을 실시하고 개선안을 도출하기 위한 '옴부즈만 위원회'가 8일 공식 출범했다.

옴부즈만위원회 이철수 위원장(서울대 법학과 교수)은 임현술 동국대 의과대학 교수와 김현욱 가톨릭대 의과대학 교수를 위원으로 선임하고, 2개 분과위원회와 5개의 소위원회를 두는 위원회 구성안을 발표했다.

현재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철수 위원장은 삼성전자, 가족대책위원회, 반올림 등 모든 당사자들의 합의로 옴부즈만위원장에 추대됐으며, 위원 2명에 대한 선임권을 가지고 있다.

이철수 위원장은 “학계와 관련 학술단체 등 광범위한 분야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산업현장의 안전과 보건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임현술 위원은 예방의학과 직업환경의학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로, 대한예방의학회 이사장과 한국역학회장을 역임했다. 임 교수는 ‘마르퀴즈 후즈후’, ‘영국 캠브리지 국제인명센터’, ‘미국 인명정보기관’ 등 세계 3대 인명사전에 모두 등재됐을 만큼 활발한 연구 및 학술활동 성과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김현욱 위원은 산업보건 및 예방의학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현재 한국산업보건학회 고문 및 호흡보호구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산업보건학회장을 역임했으며, 석면 유해성, 근골격계 및 호흡성 질환, 작업장 노출평가 등 산업보건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해 왔다.

이철수 위원장은 “옴부즈만위원회의 핵심 관건인 객관성과 전문성 그리고 공정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위원회와 진단팀을 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위원회 출범의 토대가 된 합의 내용을 이행할 수 있도록 과학적인 진단과 객관적인 평가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옴부즈만위원회는 지난 1월12일 삼성전자, 가족대책위원회, 반올림이 조정위원회에서 최종 합의해 설립된 기구로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에 대해 종합진단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또 종합진단 결과 개선이 필요한 사항이 발견되면 개선안을 제시하고 그 이행을 점검하는 역할도 맡게 된다.

옴부즈만위원회는 종합진단 이외에도 화학물질 관련 학술∙정책 연구 등 재해예방과 실행방안의 수립을 위해 필요한 제반 활동을 삼성전자에 권고할 수 있다. 활동기간은 3년이며, 필요할 경우 3년 범위 내에서 연장할 수 있다.

옴부즈만위원회는 실무 활동을 위해 2개 분과와 5개 소위원회로 구성된다. 임현술 교수가 위원장을 맡는 1분과는 종합진단을 실시하며, 김현욱 교수가 위원장을 맡는 2분과는 화학물질 학술∙정책 등을 조사연구하고 필요한 사항에 대한 제도 개선 등을 검토하게 된다.

◇1분과(위원장 임현술 교수)

[물리/화학물질관리소위원회] ▲김치년 연세대 산업보건연구소 교수 ▲김판기 용인대 산업환경보건학과 교수 ▲오정미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 ▲김은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건강영향조사소위원회] ▲박수경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이관 동국대 의과대학 교수 [건강체계강화소위원회] ▲박종태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정효지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2분과(위원장 김현욱 교수)

[조사연구소위원회] ▲최재욱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규정소위원회] ▲박형욱 단국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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