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북>의 비주얼을 한마디로 말하면 ‘현실을 압도하는 CG’라고 평가할 수 있다. 영화에서 진짜로 연기하는 배우는 모글리를 연기하는 닐 세티라는 소년 배우 단 한 명. 나머지는 전부 CG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글리의 최대 적수인 호랑이 쉬어칸, 모글리의 편이 되어주는 늑대와 곰, 흑표범 모두 진짜 동물이 아닌 CG다.

CG가 발달하기 전이라면 동물들을 조련시키지 않는 한 실사영화로 만드는 게 불가능하기에 디즈니는 일찍이 <정글북>을 실사가 아닌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아바타>에서 CG가 제2의 배우였듯, <정글북> 역시 인간 배우보다 CG가 제2의 배우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인간만이 배우를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아바타>에서 균열을 일으켰다면, <정글북>을 통해 또 한 번 확인 사살하는 격이 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글북>의 CG는 성인 관객의 눈도 황홀하게 속일 줄 안다.

영화 <정글북> 스틸 이미지

<정글북>이 CG로 도배되었다고 해서 ‘오직 아이들 관람용 영화’라고 단정 짓기에는 곤란해 보인다. 어릴 적부터 동화로 보아온 아니 애니메이션으로 보아온 관객이라 하더라도, 이 영화의 영화적인 완성도는 서사 구조를 익히 아는 관객에게 합격점을 받기에 충분할 정도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사 구조를 익히 알아도 충분히 매력적인 뮤지컬로 다가오는 것처럼, 영화 <정글북>은 CG로 도배되었다고는 하지만 서사적 완성도가 탁월한 CG를 커버해주고도 남는다.

영화 <정글북> 스틸 이미지

사람인 모글리가 다른 동물에 비해 탁월한 점은 딱 한 가지다. 재빠른 발도 없고 그렇다고 힘이 세거나 위협적인 발톱도 없는 모글리가 정글 속 다른 동물보다 우월한 점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지능이다. 원숭이의 우두머리인 거대한 오랑우탄 루이가 그토록 탐내던 ‘붉은 꽃’, 불은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도구다. 모글리는 도구를 사용하여 물을 떠먹거나 벼랑 위 벌집을 채집하는 식으로, 다른 동물이 활용하지 못하는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모글리의 멘토 역할을 해온 흑표범 바기라는 모글리가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반칙’으로 규정하고는 정글에서는 모글리가 도구를 사용하지 말 것을 권유한다. 다른 동물에 비해 정정당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해서 모글리에게 도구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인데, 만일 모글리가 바기라의 명령에만 복종했다면 그는 호랑이 쉬어칸에게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동물은 흉내 낼 수 없는, 모글리만의 도구를 사용하는 방식 덕에 호랑이 쉬어칸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정글북> 스틸 이미지

도구를 이용하여 호랑이를 물리친다는 영화 <정글북>의 서사는, 모글리만의 장기인 도구를 사용하는 법을 멘토인 바기라가 인정해준다는 점에 있어서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의 우월함을 대변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점을 호모 파베르라는, 인간만이 도구를 활용할 수 있단 점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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