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것은 늘 오지 않는다. 그러나 기다리다 지쳐 담뱃불을 붙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쏜살같이 다가오는 버스. 늘 그런 식이다.

안 풀리는 인생을 늘 우울하게 만들고 또 의기소침하게 하는 것은 소소하게 어긋나는 타이밍들이다. 워낙 우월한 동명이인과 엮여서 온갖 일을 다 겪은 서현진 오해영(이하 서해영)은 더할 수밖에 없었다. 전혜빈 오해영(이하 전해영) 때문에 상처받은 남자들의 돌팔매를 대신 받을 정도니 더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물론 꽃이나 사탕은 잘못 배달된 적이 없다.

심지어 결혼까지도 전해영으로 착각한 박도경에 의해서 망가지게 됐으니 이 불운은 거기서 끝이어야 했다. 그런데 서해영의 타이밍은 끝까지 오작동을 멈추지 않았다. 본가를 나와 집을 얻었더니 하필이면 박도경의 옆방.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박도경을 좋아하게 됐다는 것이고, 한술 더 떠서 박도경도 서해영을 좋아하게 됐다는 것이다.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

둘이 서로 좋아하게 됐다고 하더라도 늘 불안할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그것도 타인에 의해서 그 일이 서해영에게 알려진다면 박도경으로서는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치명적 상황이 될 것이다. 세상이 늘 그렇고 특히 서해영 같은 인물에게는 거의 비켜간 적이 없는 배드 타이밍은 또 작동했다.

한태진을 만나기로 했다는 서해영의 말을 들은 박도경은 이제 그 일을 털어놔야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먼저 보자고 했다. 그 고백으로 서해영이 자신을 버리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한편 서해영은 미안하지만 한태진과의 만남을 하루 미뤘다. 그런데 한태진은 굳이 장미꽃 한 다발과 반지를 들고 서해영을 만나러 온다. 나름 서프라이즈를 하겠다는 것인데 그 의욕이 문제였다.

서해영의 회사 앞에서 박도경을 발견했고, 한태진은 분노했다. 질투가 반쯤이었을 것이다. 길거리에서 한태진은 박도경을 일방적으로 두들겨 팬다. 박도경은 맞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서해영에게 박도경이 저지른 일에 알린다. 서해영은 충격이었다. 일단 그 자리를 벗어난 서해영은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

그건 박도경이라도 다르지 않았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거리를 배회한다. 그 뒤를 친구 진상, 동생, 직원들이 마치 기차놀이를 하듯 따른다. 그러다 납치하듯 박도경을 차에 태워 어디론가 가버린다. 날이 밝자 그들은 바닷가에서 눈을 뜬다. 그러다 진상이 해변을 산책하는 여자들을 발견하고 작업을 건다. 이야기가 잘되는 분위기다. 그런데 하필이면 거기에도 오해영이 있다.

남자들은 아무 말 없이 여자들을 떠난다. 그리고 다시 서울 밤거리에서 했던 기차놀이를 한다. 처음 봤을 때도 이상했지만 다시 반복되는 것이 뭔가 의미하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갖게 한다. 박도경이 맨 앞에 서고 그 뒤를 친구거나 동생이 힘없이 뒤따르는 풍경. 나란히 걷는 것이 아니라 일렬로 길게 따라 걷는 행렬은 결코 흔한 것이 아니다. 줄맞추기 좋아하는 군대도 이러지는 않는다.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

도대체 연출의 의도는 무엇일까?

현재로서 상상해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박도경의 죽음이다. 줄곧 서해영에 대한 환시만 보던 박도경이 최근 자신에 대해서 보기 시작했다. 그것도 끔찍한 사건 현장이다. 그러면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이 이야기가 전부 박도경이 코마상태에서의 회상이 아니냐는 추측이 마치 스포일러와 같은 설득력을 갖고 전파됐다.

일열로 걷는 박도경과 친구들. 이것은 정말 박도경의 죽음을 암시하는 복선일까? 아니면 박도경이 코마 상태라는 시청자들의 추측에 장단을 맞추는 낚시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닌 단순히 실험적 구도일 수도 있다. 아무튼 박도경과 서해영의 연애에 치명적 결함에 맞물린 이 심상치 않은 장면들로 인해 긴장을 더해주는 것만은 틀림없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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