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돈을 허투루 쓰는지 감독하는 것은 대주주인 방문진의 중요 업무 중 하나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그간 제기돼왔다. MBC가 언론노조 MBC본부 등을 대상으로 한 각종 소송에서 연거푸 패소하면서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면서 ‘안광한 사장 등 경영진들의 배임’이라는 주장까지 나오지만, 방문진은 이런 소송들에 어느 정도의 비용이 소모됐는지 파악조차 못하는 실정이다. 세월호특조위가 발부한 동행명령장에 MBC가 불응하면서 과태료를 물 수 있게된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여당 추천 이사들은 MBC를 감독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2일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고영주, 이하 방문진) 이사회에서 MBC의 세월호특조위의 동행명령 불응 안건이 누락돼 논란이 벌어졌다. 지난달 19일 회의에서 최강욱 이사는 “세월호특조위가 동행명령장을 부과하자 이진숙 대전MBC 사장이 도망갔다는 얘기가 들린다”며 공식 안건으로 논의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고영주 이사장은 차기 회의에 안건으로 상정하겠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 안광한 이진숙, 특조위 동행명령 ‘불응’)

방문진 고영주 이사장ⓒ미디어스

이러한 결정에도 이날 방문진 회의에 해당 안건이 누락되자 논란이 확대됐다. 야당 추천 최강욱 이사는 안건이 제출된 지 10일이 지났기 때문에 자동 상정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에서 논의를 요청했다. 그동안 5명 이사의 동의가 있는 안건일 경우 ‘긴급’한 안건으로 보아 당일 상정이 가능했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 안건은 제출 10일(숙려기간) 이후 자동 상정된 것으로 간주했다. 수적으로 열세인 야당 추천 이사들이 제출한 안건은 10일 뒤에나 공식 논의안건으로 논의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반면, 방문진 다수를 점하고 있는 여당 추천 이사들은 이 같은 규정에 따라 1억 원 상당의 <북한주민의 한국방송 시청확대를 위한 지원> 사업 승인의 건을 긴급안건으로 올린 바 있다.

세월호특조위 동행명령 불응에 대한 논의라는 안건 성격을 감안해보면 이 날 논의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가늠해보는 건 어렵지 않다. 여당 추천 이사들은 ‘안 되는 이유’부터 들면서 반대했다. 여당 추천 김광동 이사는 “안건 제안이 있어야 한다”며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논의해서 어떤 결과를 도출해 볼 수 있을지 기본 구상이라도 제출하고, ‘논의할 가치가 있다’고 5명 이상이 동의를 하면 안건으로 상정이 되는 것이 절차”라고 주장했다.

김광동 이사는 “지난 번(5월19일) 동행명령 관련 최강욱 이사의 이야기를 (별 생각없이) 가볍게 들었다”며 “그와 관련해 논의해볼 필요성이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시면 동의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무엇을 논의하자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인철 이사는 “안건으로 올라오면 논의하자는 거였다”며 “(내용에 있어서도 논의가 아닌) 보고하라는 정도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고영주 이사장은 ‘동행명령 불응에 대한 과태료를 회삿돈으로 내면 배임행위’라는 지적이 나오자 “(그게) 방문진의 관리감독과 상관이 있는 것인가. 과태료를 내는 건 그건 개인적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고영주 이사장의 주장과는 달리 세월호특조위의 동행명령은 MBC 업무와 관련된 일이라는 점에서 과태료가 회삿돈으로 지불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회삿돈이 쓰일 가능성이 있는 사안인 이상 이에 대한 방문진의 입장 정리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볼 수 있다.

유의선 이사는 “며칠 전 이사회 논의 안건이 이사들에게 다 보고가 됐었다”며 “최강욱 이사가 그걸 봤을 때 ‘(동행명령 불응 관련)안건이 빠졌다’라고 주의를 환기시키거나 했어야 했다. 그런데, 왜 여기 와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안건 누락의 원인을 최강욱 이사의 책임으로 주장했다. 그는 “통지가 되어야 이사들이 준비를 하고 올 게 아니냐”며 “오늘 바로 논의하자는 건 아니다. 다음에 준비해서 해야지 구체적인 내용을 정확히 알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강욱 이사 본인이 (논의)필요성을 느꼈다면 통지를 했어야 한다”고 재차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강욱 이사는 “(논의 안건으로 상정하기로 했으면)회의에 참석하는 이사들이 준비를 해와야지, 제가 준비를 시켜줘야 하는 것이냐”며 “제안자의 이야기를 귀 담아 듣지 않았던 사람들이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느냐”고 주장했다. MBC 관리감독 기관 방문진 이사가 해당 사건에 대한 논의를 거부하는 것은 직무유기와도 같다는 지적이다.

여야추천 이사들 간 감정이 격화되자 고영주 이사장은 “안건으로 다루겠다고 약속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안건을 다루려면 다른 이사들에게 고지를 미리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동의를 해주시면 즉석안건으로 삼아 토의를 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날 방문진에서는 해당 사건과 관련한 어떤 심도 있는 논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야당 추천 이사들이 제출한 <백종문 녹취록에 대한 특별감사 결의의 건>이 상정되자마자 고성과 욕설이 오가며 회의가 끝났기 때문이다.

한편, 방문진 임무혁 사무처장은 “(규정상)서면으로 안건이 제출되면 이사장의 내부결제를 받아 상정하는 것”이라고 발언해 또 다른 논란을 야기했다. 이에 대해 최강욱 이사는 “규정에 반드시 서면으로 제출해야한다는 문구는 어디에도 없다. 사무처는 방문진 이사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곳으로 고영주 이사장이 안건으로 상정하겠다고 약속했다면 이를 실행시키도록 하는 게 임무”라면서 반대 입장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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