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오후 1시경,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강남 한복판 주상복합건물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흉기에 찔려 살해당했다. 30대 남성인 가해자는 화장실에 숨어 있으면서 여섯 명의 남성을 거르고, 잠입 후 처음으로 들어온 여성을 죽였다.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야 했던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강남역 10번 출구에 포스트잇을 붙여 애도의 뜻을 전했다.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는 탄식과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안도 아닌 자조가 확산됐다.

‘강남역 살인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에서 ‘여성혐오’를 읽어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가해자가 정신질환의 일종인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금세 사건을 ‘한 정신이상자의 기행’으로 격하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를 공중 앞에서 말하고 또 다른 혐오범죄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이를 마치 여성 대 남성의 성 대결로 묘사하는 등의 일들까지 일어났다. 적지 않은 ‘언론’에 의해서’ 말이다.

그러나 2016년 5월 대한민국 사회에서 벌어진 이 비극의 원인을 정확히 직시하고, 맥락을 짚어 보려는 언론 역시 있었다. 사건 당일이었던 5월 17일부터 6월 1일 현재까지, ‘강남역 살인 사건’에 한 걸음 더 다가가려고 노력했던 언론 보도를 모아 보았다.

5월 31일자 아이즈 기획 <죽은 여성들의 사회>

1. 아이즈 <죽은 여성들의 사회│①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이후, 살아남은 여성들의 세계> / 최지은 기자 (2016. 5. 31.)

“대중문화에 기반해서,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대중들이 형성하는 페미니즘이 있는데 그 중요한 축 중 하나가 듀나고 다른 하나가 아이즈다. 아이즈는 길이길이 보전해야 할 소중한 매체이므로 많이 봐 주시기 바란다” 페미니즘 강연에서 우연히 들은 이 찬사처럼, 현재 젠더이슈에 가장 신속하고 민감하게 대응하는 대표적인 매체가 아이즈다. 여성신문, 일다 등 ‘여성’을 중심에 둔 매체가 아닌 ‘대중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곳임에도, 아이즈는 지난해 일명 ‘장동민 사태’가 일어났을 때부터 꼭 필요한 ‘고언’을 꾸준히 해 왔다. 5월 31일 나온 <죽은 여성들의 사회> 기획도 마찬가지다. △살아남은 여성들의 이야기 △언론에서 일어난 2차 가해 △여성들이 죽어간 장소 △2016년 여성 대상 범죄 사건일지 등 4꼭지로 이루어진 이 기사만 보아도, ‘강남역 살인 사건’에서 짚어내야 할 맥락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2. 경향신문 <[강남역 10번 출구 포스트잇]경향신문이 1004건을 모두 기록했습니다> /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 (2016. 5. 23.)

실로 놀라운 ‘기록’이 이루어졌다.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은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쓴 추모 포스트잇 1004건을 모조리 기록해 온라인에 공개했다. 가장 많이 나온 말은 “미안합니다”였다. “명복을”, “빕니다”, “나는”, “여성”, “우리”, “편히”, “없는”, “잠재적”, “삼가”, “안전한”, “사회가”도 빈번히 등장했다. 수많은 사람들과 취재진으로 발 디딜 틈 없었던 그 공간에서, 기록하는 자로서의 역할에 누구보다 충실했던 경향신문 사건팀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은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어 있던 포스트잇 1004건을 전부 기록했다. 사진은 경향신문 기사 캡처

3. 여성신문 <강남역 살인사건이 공용화장실 때문?...“핵심 놓친 근시안적 대책”> / 이세아 기자 (2016. 5. 24.)

강남역 살인 사건 초기부터 이번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바라본 여성신문은 5월 24일자 3꼭지 기획기사를 통해 이번 사건의 ‘원인’과 ‘대책’에 방점을 찍었다. 여성신문은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인 애도와 추모 물결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남녀 공용 화장실을 분리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하자는 식의 ‘땜질 처방’을 내놓는 정부와 정치권의 행태를 꼬집었다. 여성을 표적으로 한 범죄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일시적인 해소 수단’을 내놓았을 뿐, 범죄 해결과 예방을 잠재적 피해자인 여성 몫으로 떠넘긴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담았다. “정말 바꿔야 할 것은 공공연히 여성혐오를 발화해도 문제 되지 않고, 젠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남성이 여성에게 폭력을 동원해도 된다고 여기는 사회 구조다. 이를 방치하고 CCTV를 늘리거나 남녀 화장실만 분리해서는 또 다른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막을 수 없다”

4. 시사IN <부치지 못한 편지> / 송지혜 기자 (2016. 6. 1.)

시사IN 455호 (2016. 6. 4.)

시사IN은 545호 커버스토리로 ‘강남역 살인 사건’을 다뤘다. “여자들이 나를 무시했다”는 말, 신학원에 다녔다는 과거 등 ‘가해자’ 입장에서 쓰여진 기사들은 많았지만 영문 모른 채 죽어간 피해자의 꿈을 묻는 사람들은 포스트잇을 붙였던 시민들이었다. 시사IN은 피해자 가족, 친구, 회사 동료들을 취재해 한 사람의 ‘삶’을 복원하고자 했다.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그는 지방에서 일하면서 월급 80%를 송금하면서도 힘들다는 내색 한 번 안 하던, 가족의 소중함을 가르쳐 준, 타고난 성격이 밝았던 사람이었다. 또한 이 기사에는 피해자가 어버이날 무렵 부모님께 쓴, 미처 ‘부치지 못한 편지’도 담겨 있다.

5. 한겨레21 <‘여성’이라는 죽을 죄?> / 정환봉, 김선식 기자 (2016. 5. 31.)

한겨레21은 1114호 표지이야기 주제로 ‘여성혐오’를 선택했다. 경찰청 소속 범죄분석관 10명이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최근 10년 동안 발생한 ‘이상동기 범죄’를 가해자 중심으로 분류한 보고서에서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21명의 사건 33건을 전수조사해, ‘동기’를 파악하려고 애썼다. 한겨레21은 묻지마 범죄의 대상이 결코 ‘아무나’가 아니라는 점을 짚었다. 피해자 중 남성도 있었지만 “범행에 취약”하다는 점 때문에 더 높은 확률로 여성이 희생됐고, “평소 여자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거나 “계집년들은 사회의 암적인 존재”라는 피의자 진술처럼 ‘여성에 대한 증오’가 살인 동기로 추정되는 사건들도 발견됐다. 경찰·대검찰청 보고서와 판결문 등 자료와 통계로 ‘여성혐오’와 ‘범죄’의 상관관계를 찾아내려 애쓴 흔적이 돋보이는 보도다.

6. 오마이뉴스 <“여자라서 죽였다” 기획> / (2016. 5. 20. ~)

오마이뉴스는 5월 20일부터 <“여자라서 죽였다”> 기획을 선보이고 있다. <아저씨가 내 허리를 만졌다, 나는 욕을 해줬다>, <화장실에 ‘몰카’가 없기를, 나는 소망했다>, <“치마만 보면 흥분” 여자들은 이런 말을 듣고 산다> 등 여성들의 자기고백적인 글에서부터 <내가 강남역 촛불 문화제를 제안한 이유>, <21일 오후 5시 강남역 10번 출구 주변은 뜨거웠다> 등 강남역 추모 현장을 담은 글, <‘여혐’의 반대말은 ‘남혐’? 그건 아니죠>, <여성 혐오 없으니 사이좋게 지내자?> 등 온·오프라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장 뜨거운 논쟁을 정면으로 다룬 글 등 다양한 내용이 포진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들의 릴레이 기고를 통해 ‘대안’을 모색하고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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