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가 드디어 메이저리그 첫 홈런을 기록했다. 그 홈런은 팀의 연패를 막는 결승타점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큰 가치를 가진다. 시범경기부터 현재까지 지독한 고통 속에서 버텨야만 했던 김현수였기 때문에 이 홈런은 더욱 강렬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감동을 만들어낸 김현수의 극적인 홈런, 그의 도약은 이제 시작

리카드의 부진은 김현수에게 기회로 다가왔다. 시범경기 서로 다른 기록으로 다른 길을 걸어야 했던 두 선수는 그렇게 시즌이 이어지면서도 여전했다. 물론 팀 전체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 감독의 입장이지만, 공존의 법칙을 찾기보다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강제로 퇴출시키려던 볼티모어 구단에 맞서 김현수는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행사했다. 단장과 감독의 노골적인 압력에도 그는 메이저를 택했다. 그리고 김현수의 고난은 지독할 정도로 심각하게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5툴로 볼티모어로 온 리카드는 시범경기에서 맹타를 휘두르며 김현수의 좌익수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시즌 초반 그의 맹타는 팀을 지배하기도 했다. 이런 활약은 결과적으로 김현수를 더욱 옥죄는 이유가 되었다.

김현수 메이저리그 첫 홈런 (AP=연합뉴스)

시즌 초반 볼티모어 홈구장에서는 김현수에 대한 야유까지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최악이었다. 물론 동료 선수들은 김현수를 응원하고 격려해왔다. 누구라도 김현수처럼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피해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메이저 선수노조에서도 김현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다고 발표할 정도로 비이성적인 구단의 행동은 논란을 불러왔었다.

팀 동료들의 응원이 있다고 해도 문제는 결국 실력이다. 메이저리거가 되는 것은 수많은 경쟁에서 이겨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어려운 단계를 넘어 최종적으로 올라설 수 있는 곳이 바로 메이저리그이기 때문이다. 좀처럼 주워지지 않는 기회를 잡기 위해 김현수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리카드가 연일 맹타를 터트리고 팀 역시 승승장구하는 상황에서 김현수에게 기회가 돌아가기 어려웠다. 기본적으로 잘되는 팀의 운영 방식을 바꿀 이유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현수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팀이 잘나가는 것이 독이 되었다.

가끔씩 주어지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는 안간힘을 다했다. 그 쉽지 않은 기회를 놓쳐버리면 더는 기회를 잡기 어렵다는 사실을 김현수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현수는 신고선수였다. 지명을 받지 못해 어렵게 기회를 잡아 프로에 입단한 선수다. 바닥에서 시작해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김현수가 메이저리거까지 되었다는 것은 인간 승리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릴 정도로 극적이었다. 누구보다 힘든 시절을 경험했던 김현수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산발적으로 주어지는 기회를 김현수는 알차게 채워냈다. 초반 내야 안타에 그치던 타구는 점점 그 폭과 강도를 넓혀갔다. 그렇게 불규칙적인 출전 기회에도 타격감을 잃지 않고 유지한 김현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초반 폭주하듯 폭발하던 리카드가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30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경기 7회에 솔로 홈런 결승포를 터뜨린 김현수(28·볼티모어 오리올스, 오른쪽)가 동료 매니 마차도의 환영을 받고 있다. 메이저리그 1호 홈런. (클리블랜드 AP=연합뉴스)

5월 26일 휴스턴 전부터 선발로 출전해 30일 경기까지 다섯 경기 연속 선발 출전은 달라진 김현수의 위상을 엿보게 하는 장면이었다. 지난 경기에서 초반 발에 공을 맞은 상황에서 그가 보여준 장면은 눈물 나게 할 정도였다. 무방비 상태로 발가락을 맞은 그는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자신이 계속 경기를 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보호 장비를 풀면서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날 정도였다. 그날 경기에서 무안타로 그치기는 했지만 김현수의 간절함은 모두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감독까지 나와 김현수의 상태를 확인하는 상황에서 그는 아프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기회를 놓칠 수 없는 김현수의 악바리 근성은 그렇게 극적인 상황 팀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역전 홈런으로 이어졌다. 내야 안타만 치는 선수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던 김현수는 큰 타구를 노렸다. 스윙은 커졌고 그만큼 자신감도 있었다. 삼진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그 전에 볼 수 없을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스윙을 했다는 점은 반가웠다.

아쉬운 삼진 뒤 김현수는 4-4 동점 상황에서 흐름을 볼티모어로 가져가는 극적인 솔로 홈런을 때려냈다. 메이저리그 진출 후 첫 홈런을 때린 김현수가 느끼는 감정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실력으로 검증하지 못한다면 그저 고집만 부리는 형편없는 이방인 선수 정도로 취급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현수는 출루 머신이라는 별명처럼 선발 출전한 다섯 경기에서 7개의 안타와 3개의 사사구, 1타점, 3득점을 했다. 9번 타순에서 8번으로 자리를 옮긴 김현수는 2번 타자로 고정되어 출전하게 되었다.

아직 완벽하게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김현수는 수많은 편견을 이겨내고 스스로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홈런으로 팀 승리를 이끈 김현수. 경기가 끝난 후 현지 언론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웃어도 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김현수는 볼티모어에서 주눅 든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김현수의 활약에 벅 쇼월터 감독의 발언도 많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홈런으로 인해 김현수는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경기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시즌 한국프로야구에서 20개가 넘는 홈런을 쳤던 만큼 김현수 역시 메이저리그에서 두 자리 홈런을 기록할 수준은 되니 말이다.

김현수의 홈런은 단순한 장타를 넘어서는 가치를 가진다. 두 달이 지나가고 있는 메이저리그. 그 기간은 김현수에게 지독한 고통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힘겨움 속에서도 항상 노력했고, 그렇게 노력한 결과는 모든 것을 바꿔놓기 시작했다. 미국 현지 리포터의 이야기처럼 김현수는 이제 웃어도 된다. 그리고 보다 당당하게 경기를 지배해도 좋다. 지독한 시간들을 버텨낸 김현수는 그래서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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