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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도 없는데 지상파 뒤덮은 ‘탈북 뉴스’[비평] 북한 뉴스면 무조건 톱? ‘관습적 기사 작성’ 아닌가
김수정 기자 | 승인 2016.05.24 14:45

“중국의 북한 식당에서 최근 종업원 세 명이 또다시 집단 탈출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들은 중국 당국의 묵인 아래, 현재 제3국으로 안전하게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_ 5월 23일 KBS <뉴스9>

“20대 여성인 이들 종업원은 지난달 중국 닝보시의 류경식당 종업원들의 집단 탈북 소식을 듣고 탈북을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들은 대북단체의 도움을 받아 지난 20일 동남아시아의 제3국에 도착한 뒤 현재 한국행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_ 5월 23일 MBC <뉴스데스크>

“북한의 해외식당 종업원 탈출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중국 내 북한 식당의 종업원들이 또 제3국으로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달 초 북한식당 종업원 13명의 집단 탈출이 이들에게도 영향을 준 걸로 보입니다”
_ 5월 23일 SBS <8뉴스>

북한 관련 소식은 그 민감도 때문에 구체적인 취재원이 기사에서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취재원의 존재가 ‘북한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나 ‘대북 소식통’이라는 다소 막연하게 묘사되더라도 일종의 관행으로 여겨질 뿐,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23일 저녁 KBS·MBC·SBS 지상파 3사 메인뉴스를 뒤덮은 탈북 소식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확인된 것’이 없다. ‘알려지고’ ‘전해졌’다는 문장은 있지만, ‘~했다’고 보도할 수 있을 정도의 취재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상파 3사는, ‘대북 소식통’의 말이 마치 철썩 같이 믿을 만큼의 신뢰도를 지니고 있는 양 ‘대북 소식통’의 증언에만 의지해 해외에 위치한 북한 식당 종업원들의 탈북 소식을 일제히 톱 뉴스로 보도했다.

KBS <뉴스9>는 23일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 3명 또 탈북”> 리포트를 톱 뉴스로 전했다. <뉴스9>는 종업원 탈북 소문이 또 퍼졌다는 언급 후 “대북 소식통은 ‘중국의 한 북한식당에서 최근 종업원 3명이 집단탈북했고, 중국 공안의 묵인 하에 제3국으로 안전하게 이동했다’고 밝혔다. 단, 북한식당의 이름과 이들의 신원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해당 북한 식당의 위치와 관련해 “상하이라는 보도도 있지만 일부에서는 시안 등 다른 지역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며 “종업원들의 탈출 시점은 이달 초 평양에서 열린 북한 7차 노동당 당대회 이후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뉴스9>가 근거로 의존하는 대북 소식통은 ‘해외 북한식당 종업원 3명이 최근 탈북했다’는 것만 “밝혔”을 뿐, 이들이 어느 해외 식당에 속해 있었는지, 왜 탈북을 결심했는지, 이동 경로가 어떻게 되는지, 탈북한 정확한 시점은 어디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전해졌다”, “알려졌다”라고밖에 처리할 수 없는 ‘정황’들의 나열이다. 해당 리포트에서 ‘확인됐다’고 나타난 것은 “상하이 식당은 하나도 문제가 없다”는 북한 식당 관계자의 발언과 현재 상하이와 시안에 있는 북한 식당들이 정상영업 중이라는 점뿐이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23일 KBS <뉴스9>, SBS <8뉴스>, MBC <뉴스데스크> 보도

<[앵커&리포트] 잇단 탈북…충성자금 압박 탓?> 리포트에서 황상무 앵커는 지난달 초 집단탈북한 북한 식당 종업원들의 가족들이 미 CNN과의 인터뷰에서 ‘딸들이 유인 납치당했으니 북으로 돌려보내라’고 한 것을 언급한 후, “북한 당국은 이렇게 가족과 동료들을 앞세워 내외신 매체를 가리지 않고 지금까지도 대대적으로 흑색선전을 펼치고 있는데 이 와중에 또 다시 북한 식당 종업원들이 집단 탈북하면서 북한의 선전전은 허구임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외 북한 식당 지배인 출신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당 대회 자금 마련을 위한 거세진 충성자금 상납요구에다, 대북 제재에 따른 경영 압박”을 잇따르는 ‘탈북’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리포트는 “김정은 집권 후 공포통치가 만연한 현실에 두려움을 느낀 이들이 본국 소환을 앞두고 평양 대신 제3국행을 택했을 것이란 관측”과 “엘리트층인 이들의 탈북으로 북한 내 핵심계층의 불안과 동요가 더욱 심화될 거란 전망”으로 마무리된다. 누구의 관측과 전망인지는 물론 드러나지 않았다.

MBC <뉴스데스크>와 SBS <8뉴스> 보도도 매한가지였다. <뉴스데스크>는 같은 날 톱 보도 <"北 식당 종업원 3명 상하이서 탈출, 한국행 준비">에서 “중국 상하이의 북한 식당 종업원 3명이 지난주 탈북해 한국행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지난달 류경식당 종업원들의 집단 탈북소식을 접하고 탈출을 결심한 걸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뉴스데스크>의 보도는 <뉴스9>보다는 자세했다. ‘최근’보다는 구체적인 ‘지난 20일’이라는 시점과 ‘20대 여성’이라는 신원, 동남아시아의 제3국을 거쳐 한국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KBS와 마찬가지로 “알려졌다”, “전해졌다”로 책임 소재에서 한 발 뺐다.

SBS <8뉴스>도 같은 날 <"중국서 북한 식당 종업원들 또 집단 탈출"> 리포트를 톱으로 배치했다. 3사의 뉴스 방향은 똑같았다. 지난달 초 북한 해외 식당에서 13명이 집단 탈출한 것이 다른 해외 식당 종업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탈북을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이 그것이다. 발언 출처는 물론 ‘대북 소식통’이었다.

<8뉴스>는 “중국에 있는 북한 식당에서 종업원들이 탈출해 제3국에서 한국행을 기다리고 있다고 대북 소식통이 전했다. 탈출한 종업원 숫자는 2~3명 정도로, 한국행을 기다리고 있는 걸로 전해졌다”며 “식당 종업원들이 잇따라 탈출하는 데는 대북 제재에 따른 심각한 영업난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8뉴스>는 “경영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외화 상납금을 보내라는 압박이 커지자 탈출이 이어지는 것”의 판단 주체를 ‘정부’라고 밝혔다.

지난달 초, 지상파 3사는 해외 북한 식당에서 종업원 13명이 집단탈북한 소식을 집중 보도했다. 가장 앞장선 곳은 KBS였다. KBS는 탈북 소식이 알려진 8일부터 3일 간 관련 보도를 총 18건이나 내보냈다. 같은 기간 다른 지상파 2사 보도량(MBC 7건, SBS 6건)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 그래도 그때는 탈북한 종업원들의 사진도 있었고, 탈북 배경을 설명하는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인터뷰라도 있었다. 이후 한겨레가 <‘집단 탈북 긴급발표’ 청와대가 지시했다>라는 기사로 ‘요란한 탈북 보도’의 이면을 드러내 힘은 빠졌지만, 최소한 ‘집단탈북’을 사실로 믿을 만한 근거를 제시하기라도 했다. 그러나 이번 탈북 보도는 그마저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북한 소식이면 무조건 중요하다? ‘관습적 기사 작성’ 아닌가

더구나 KBS를 비롯한 지상파는 집단탈북 이후 불거진 인권침해 관련 논란은 소홀히 다룬 바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지난 13일 국가정보원에 국내에 입국한 북한 해외 식당 종업원들에 대한 변호사 접견을 신청한 바 있다. 북한이 ‘국정원에 의한 유인납치’라고 주장하고 있는 만큼, 종업원들이 국제인권기준에 맞춰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국정원은 민변의 접견을 거부했다.

민변은 16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정원의 이 같은 처사는 국내법과 국제법을 모두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은 웹진 <e-시민과언론> 글을 통해 “북한 관련 보도라면 거의 모든 내용을 미주알고주알 보도하던 ‘북한 보도의 메카’ KBS는 이 사안을 어떻게 보도했을까. KBS는 이 내용을 저녁종합뉴스에서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KBS는 지난달 초에도 북한 해외 식당 종업원 13명의 집단탈북을 집중 보도한 바 있다. 사진은 4월 9일 <뉴스9> 리포트

‘북풍 몰이’ 보도에 앞장서고 있는 KBS에 대해서는 “치밀한 검증 없이 전쟁 불안감을 자극하는 것은 ‘선동’에 불과하며 남북관계에 결코 바람직한 보도태도가 아니다”라며 “미주알고주알 북한 동정을 전하면서 정작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이는 국민 겁박용 보도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확인된 사실’이 터무니없이 적은 헐거운 ‘탈북 소식’을 마치 상의라도 한 듯 지상파 3사가 톱으로 올린 까닭은 무엇일까. 뉴스가치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여야 의견이 갈리는 상시청문회법 논란 등 굵직한 다른 아이템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알려졌다’로 점철된 뉴스가 다른 소식을 제치고 가장 먼저 보도되어야 할 합당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특히 북한이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분위기 조성’을 명분으로 남북군사회담 실무접촉을 해 오는 등 ‘유화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붕괴론’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여겨지는 ‘탈북 사건’을 전면에 배치한 것은 박근혜 정부의 폐쇄적이고 강경한 대북 정책과 결을 같이 하는 보도 태도로 보인다.

방송기자연합회는 지난 2013년 발간한 <방송보도를 통해 본 저널리즘의 7가지 문제>에서 방송보도 저널리즘의 문제점으로 △사실관계 확인 부족 △정치적 편향 △광고주 편향 △출입처 동화 △자사 이기주의 △시청률 집착 △관습적 기사 작성 등을 꼽은 바 있다. 어제의 지상파 뉴스 보도는 취재를 통해 ‘확인된’ 것이 희박했다는 점에서 ‘사실관계 확인 부족’, 박근혜 정부가 기대해 온 ‘북한 붕괴론’을 강화시킨다는 점에서 ‘정치적 편향’, 팩트 가치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톱 뉴스로 배치했다는 점에서 ‘관습적 기사 작성’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는 게 분명하다. 만에 하나라도 '관습적 기사 작성'이 권력과의 이신전심에서 비롯된 문제라면 그것이야 말로 언론으로서 큰 흠결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김수정 기자  girlspeac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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