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오해영>은 서현진이 우는 맛에 본다는 말이 있다. 다른 로코와 달리 여주인공이 우리와 닮은, 선망이 아닌 공감의 여주인공이라는 말이 있는데 왜 시청자들은 서현진을 울리고 싶은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지만 그것을 한두 마디로 잘라 규정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숙제로 남기기로 한다.

에릭의 ‘있던 것’이라는 선물을 받은 서현진은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본가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리는 그녀의 양손에는 한 가득 반찬거리가 들려 있었고, 집에 들어가서는 설명도 없이 도시락을 싸야 한다고 난리를 피웠다. 눈치 빠른 엄마는 그것이 누굴 위한 것인지 알아차리고 대여섯 명이 먹어도 충분할 찬합 도시락을 꺼내놓으며 난데없는 요리를 하느라 새벽부터 야단법석이었다.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

그러나 얼굴에 비해 연애는 참 못하는 에릭은 두 가지를 못했다. 생일날 머리에 고깔모자를 쓰는 것과 여친이 싸준 도시락을 못 먹는다고 했다. 머리에 고깔모자를 쓰는 것이라면 몰라도 여친이 싸준 도시락을 먹지 못한다는 것을 보면 서현진이 감정불구라고 한 말이 정답이었다. 남들은 못해 안달인데 그걸 못한다니 말이다.

그런데 그 어려운 것을 에릭이 마침내 해내고 말았다. 동생의 악다구니 덕분이기도 했지만, 아니 에릭은 그렇게 믿겠지만, 그건 누가 봐도 서현진으로 인한 한 남자의 변화였다. 에릭이 감정불구인 근거는 더 있다. 그날 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에릭은 차를 동생에게 내어주고 도시락을 들고 집으로 가던 중 서현진과 만나 나란히 걷게 됐다. 그런데 하필 뒤에서 누나 예지원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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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원의 눈을 피한다는 것이 어두운 골목에서 밀착하게 됐고, 또 하필 배달 오토바이가 반대편에서 오는 바람에 마치 골목에서 키스라도 하는 남녀의 자세가 되기도 했다. 당연히 여자인 서현진의 심장은 이미 핑크빛이 되고도 남았다. 그런데 에릭은 덤덤하다. 서현진에 대해서 덤덤한 것이 아니라 그런 행동과 자세일 때 남녀가 어떤 감정이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에릭이 감정을 갖든 말든 어쨌든 거기까지는 서현진의 봄날이었다. 그렇게 나란히 걷던 골목길에 벚꽃 잎이 떨어지자 서현진이 멈춰 서서 “어쩌자구 이렇게 아름답고 지랄이니. 눈물 나게 진짜”라고 했던 것처럼 적어도 그 순간만은 서현진에게는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그러나 봄이란 계절은 오롯이 봄인 적이 드문 것처럼 서현진의 봄날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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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이 감정불구라면 서현진은 감정과잉이다. 소위 썸 타는 관계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이상도 아닌 상태에서 서현진은 에릭에게 결국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 말았다. 그것도 에릭이 전혜빈이 왜 떠나야 했는지를 알고 다시 전화를 걸려던 차에 말이다. 아주 나쁜 타이밍이었다. 에릭은 서현진에게 사귈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런데 왜 잘해줬냐는 서현진의 말에 “짠해서 그랬다”라고 했다. 안 좋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에릭도, 듣는 서현진도 모르는 것이 있었다. 감정불구 에릭에게 짠하다는 것은 결코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혜빈이 들은 과거의 녹음은 그 힌트가 되었다. 그런데 몹시도 날카로운 상황에 서현진의 부모가 삼겹살을 싸들고 쳐들어왔다. 그걸 모르는 에릭은 기가 찼다. 방금 전에 그렇게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는 삼겹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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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락 하고 방문을 열어 젖혔는데 아뿔싸 거기엔 서현진과 부모들이 있었다. 서현진과 에릭의 관계가 꽤나 진전된 걸로 착각한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물쇠도 없는 허술한 방문을 사이에 두고 남녀가 오가는 상황이 아니었던가. 이럴 때 자식 입장에서 부모는 참 민폐다. 그렇지만 부모 입장에서 또 그럴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결국 딸이 혼자 좋아하는 걸로 정리되고 부모들이 돌아가자 건너편의 에릭의 입에서 차마 해서는 안 될 말이 나왔다.

“원래 헛다리짚는 게 집안내력인가?” 아차 했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었다. 평소라면 결코 그냥 듣고 지나칠 서현진이 아닌데 아무 대꾸 없이 쿵쾅거리며 방을 나가는 소리만 들렸다. 에릭은 더욱 곤혹스럽다. 이건 조금 강제스럽지만 에릭에게 미안한 짓을 시켜서 사귈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선언한 에릭을 지게 만들려는 의도일 것이다. 좋아하면서도 정작 그걸 모르는 감정불구 에릭을 그럴듯하게 연애로 유인하려는 고육책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에릭이 친구 김지석과 함께 망가뜨렸던 이재윤까지 교도소를 나오게 되어 결국 4각관계로 발전하게 되는 상황이고 보면, 뭔가 이 둘을 떨어지지 않을 강력한 아교 같은 것이 필요한 것도 분명하다. 과연 어떻게 진행될지.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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