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된 출전이 보장되지 않은 이대호가 꾸준한 타격감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과 일본에서 최고의 스타로 활동했던 그가 낯선 미국에서 신인의 자세로 도전하고 있지만 참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모처럼 주전 기회가 와도 다시 타격감을 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으니 말이다.

빅보이 이대호, 2사 만루 상황에서 대타로 나서 팀을 구했다

인터리그 경기로 치러진 시애틀과 신시내티와의 경기는 중반까지 치열했다. 이와쿠마와 스트레일리가 선발로 나선 오늘 경기에서 우위에 선 것은 신시네티였다. 1회부터 신시내티는 기회를 잡았다. 2사 1루 상황에서 필립스의 외야 큰 타구에 보토가 홈으로 내달렸지만 완벽한 아웃 상황이었다.

완벽한 중계 플레이로 발이 상대적으로 느린 보토는 홈에서 살아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아네타가 어처구니없는 실책을 하며 선취점을 내줬다. 보토까지 포기한 상황에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점수를 내줬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21일 신시내티전에서 7회 대타로 나와 역전 2타점 결승타를 때린 이대호. [AP=연합뉴스]

시애틀은 2회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다. 볼넷과 안타 등이 이어지며 1사 만루 상황을 만들었지만 시애틀은 삼진과 3루 땅볼로 만루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말았다. 기회를 잡지 못하자 신시내티의 코자트가 솔로 홈런을 치며 2-0으로 달아났다. 신시내티가 차분하게 점수를 내는 것과 달리, 시애틀의 공격은 맥이 끊기기만 했다.

4회 초 득점기회에서는 병살로 무산이 되고 말았다. 공격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자 다시 기회는 신시내티의 몫이 되었다. 1사 후 볼넷을 내준 이와쿠마는 연속 안타를 내주며 추가 실점을 하고 말았다. 3-0까지 밀려난 상황에서 시애틀의 첫 득점은 카일 시거의 적시타가 터지며 나왔다.

양 팀의 승패를 가른 것은 7회였다. 좀처럼 선발 스트레일리를 공략하지 못하던 시애틀 타자들은 7회 시작과 함께 터지기 시작했다. 마틴과 아오키의 연속 안타에 이어 바뀐 투수 우드가 연속 볼넷을 내주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싱그나리로 투수 교체를 했지만 초구부터 밀어내기 사구를 내주며 분위기는 급격하게 시애틀의 몫이 되었다.

21일 신시내티전에서 시즌 6호 홈런을 때린 이대호. [AFP=연합뉴스]

최근 부진했던 이대호는 2사 만루 상황에서 좌완 싱그나리를 상대하기 위해 대타로 등장했다. 3-3 상황 여전히 만루다. 하지만 투아웃이라는 점에서 기회를 살리는 팀은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렇지 않은 팀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최근에도 만루 상황에서 나와 득점을 하지 못했던 이대호는 서비스 감독의 선택에 이번에는 보답이라도 하듯 툭 밀어 쳐 2타점 적시타를 만들며 경기를 역전시켰다. 욕심 부리지 않고 좌완 싱그라니의 공을 부드럽게 밀어 쳐 역전을 만든 이대호의 타격은 압도적이었다.

침묵하던 시애틀은 이대호의 역전 이후 추가 득점을 이어가며 승리를 얻어냈다. 9회 DH 제도가 없는 내셔널리그로 인해 외야수로 나선 크루즈는 솔로 홈런을 터트렸다. 승기가 시애틀로 굳어가는 상황에서 이대호가 나섰다. 2사 상황에서 이대호는 빅보이만큼이나 거대한 디아즈를 상대로 6호 홈런을 쳐내며 팀 승리를 위한 축포를 선사했다.

초반 분위기는 완벽하게 신시네티의 몫이었지만, 이대호의 역전 2타점 적시타 후 완벽하게 바뀌었다. 이후 시애틀은 꾸준하게 점수를 내며 8-3으로 이겼다. 신시내티는 초반 3점을 얻은 후 좀처럼 추가 점수를 내지 못하며 패하고 말았다.

시애틀의 승리 1등 공신은 분명 이대호다. 3-3 2사 만루 상황에서 만약 이대호가 범타나 삼진으로 물러났다면 오늘 경기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흐름이 승패를 결정하는 야구의 특성상 오늘 경기의 모든 승패는 7회 2사 만루 상황에서였다. 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대타로 나선 이대호는 만만하지 않는 좌완 싱그나리를 상대로 적시타를 쳐냈다.

시애틀로서는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린드가 최근 좀 살아나는 듯하지만 이대호를 여전히 능가하지 못하고 있다. 10경기 이상을 더 출전하고 있으면서도 홈런 3개와 12 타점, 0.227 타율에 불과하지만 이대호는 6홈런, 12타점을 올리며 린드를 압도하고 있다. 물론 출루율과 장타율, 그리고 타율 모두가 앞선 이대호가 여전히 안정적인 출전이 보장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아쉽다.

1년 계약을 한 이대호는 올 시즌 시애틀에서 모두 보낼 가능성이 높다. 적은 연봉으로 그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는 이대호를 내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즌이 끝난 후 시애틀의 선택이다. 메이저리그 적응을 마친 이대호는 올 시즌 준비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21일 신시내티전에서 결승타와 6호 홈런으로 맹활약한 이대호. [AP=연합뉴스]

아직 시즌 초반임에도 이대호는 6개의 홈런을 쳐내고 있다. 홈런을 쳐낼 수 있는 능력이 메이저리그에서도 검증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여기에 의문을 품었던 1루 수비 역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역시 경기를 통해 증명했다. 그리고 이대호가 성실하며 팀과 어울리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 시장에 대한 광고 효과와 함께 검증된 능력을 가진 이대호를 노리는 팀들은 그만큼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린드의 8백만 불이 아쉬워 그를 중요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대호는 순수 연봉이 아닌 인센티브를 포함한 총액이 4백만 불이다. 이대호는 이미 그 비용 이상의 능력을 보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대호로서는 부담 없이 꾸준하게 메이저리그를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한 해가 될 수 있다. 현재의 페이스라면 이대호는 최소 15개 이상은 쳐낼 수 있다. 제대로 기회만 주워진다면 2, 30개의 홈런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대호의 존재감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여준 이대호의 결승타와 홈런은 그래서 특별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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