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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에 '규제개혁' 하나된 권력과 방송[기자수첩] 2016년 5월 18일 방송가의 씁쓸한 풍경
권순택 기자 | 승인 2016.05.19 15:01

과거 KBS는 정기적으로 'MB주례 방송연설'을 편성했다. 대통령의 연설을 KBS에서 방송한다는 사실만으로 논란이 컸던 사안이다. KBS가 ‘국영방송’이라는 비난을 듣기 시작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대통령의 주례 연설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사라졌다. 그러나 방송의 위상과 역할은 달라게 없다. 청와대가 개최하는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지상파가 연일 중계하고 있으니 말이다.  장관들이 줄지어 앉아 대통령 말씀 하나하나를 수첩에 옮겨 적고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치는 장면이 그대로 노출되니 MB정권보다 더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당초 ‘청와대 규제개혁장관회의를 도대체 왜 방송사에서 생중계를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졌지만, 이젠 그 정도 문제의식도 사치가 돼버렸다는 느낌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4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5월 18일이라는 날짜의 의미는 크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5·18을 통해 현 시점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해석도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최소한 방송가에서 2016년 5월 18일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날이었다.

5·18기념식은 국가적 행사로 치러진다.  그러나 청와대는 5·18기념식이 진행되는 그 시간에 제5차 규제개혁장관회의 일정을 잡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본부장 윤창현)가 19일 발표한 <5·18영령 앞에 ‘땡박뉴스’가 웬 말인가?> 성명에 따르면, 방송사와 청와대는 규제개혁장관회의 중계를 위해 해당 회의 시간을 2시로 옮기는 것으로 협의했다고 한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는 정권의 5·18에 대한 기본적인 무시행태, 방송사와의 유착 관계 등을 그대로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씁쓸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3년째 뚜렷한 이유 없이 5·18기념행사에 불참하고 있다. 올해는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여부를 두고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원내교섭단체 원내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론분열을 일으키지 않는 좋은 방법을 찾도록 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밝혔으나 국가보훈처는 ‘합창유지’를 결정했다.

누군가들은 “청와대가 말을 바꿨다”고 했지만, 오히려 대통령의 뜻을 잘못 해석했다고 보는 편이 옳은 것인지도 모른다. 국론분열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 싫은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었던 듯 하다. 정부를 대표해 5·18기념식에 참석한 황교안 총리가 ‘님을 위한 행진곡’ 합창시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것 역시 대통령의 이러한 의중이 반영된 걸로 보인다.

18일 오전 광주시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36주년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왼쪽 첫 번째)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부르지 않았다(사진=연합뉴스)

5·18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기본적인 시각은 그야말로 문제다. 국가적 행사로 치러지는 5·18기념식에 뚜렷한 이유 없이 ‘불참’할 수 있다는 인식, 오히려 그 시간 다른 정부 행사를 예정하는 현 정부의 무감각한 행보가 이 문제를 잘 나타내준다. 박근혜 정부에서 5·18 정신 같은 것은 그야말로 찬밥 신세인 거다. 백 보 양보해서 10시에 잡혀있던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오후 2시로 옮긴 수고를 알아줘도 문제는 남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개혁장관회의가 미뤄져 비는 시간에 5·18기념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물론, 이는 국민들이 절대 알아서는 안 될 일이란 걸 우리는 이미 안다.

방송사들의 행보도 문제였다. 규제개혁장관회의는 ‘중계되어야 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당위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규제개혁장관회의를 10시에 하기로 했고, 그것이 5·18기념식과 시간이 겹친다면 방송사는 그저 둘 중 하나를 선택해 방송하면 될 문제였다. 하지만 방송사가 ‘5·18기념식이 10시이니 규제개혁장관회의 시간을 옮겨야 한다’고 제안한 것은, 언론이라기 보다는 청와대 참모에 가까운 것이다.

5월 18일 방송사들의 뉴스가 5·18을 푸대접했다는 것은 이런 형태의 '참모론'을 뒷받침 한다. KBS를 비롯해 MBC, SBS 모두 청와대 규제개혁장관회의를 톱에 올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있는 곳, 그 자리의 사건이 지상파의 머리기사가 되는 건 '땡박뉴스'라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일이다.

이날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정부는 임상 2단계를 마친 신약에 대해 시판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감염병이나 화학무기 피해 치료제 등은 동물 실험만으로 허가될 것이라고도 했다. 임신테스트기처럼 진단제품은 임상시험 자체가 면제되고 의약품 자동판매기 설치도 허용된다고 하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시끄러운 요즘 국민들의 건강과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는 규제들이 ‘낡았다’, ‘신성장 동력 마련’이라는 이유만으로 완화된다고 하니 말이다. 이런 현실에도 18일 KBS <뉴스9>는 비판 한 줄 없는 전달자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5월 18일 KBS 뉴스

MBC <뉴스데스크>와 SBS <8뉴스>는 ‘드론규제 완화’에 주목했다. 이제 드론이 공연이나 택배 등에도 활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머리기사로 배치됐다. SBS <8뉴스> 신동욱 앵커는 클로징 코멘트를 통해 “과거에 보면 규제를 없애라고 했더니 없애기 위한 규제를 또 새로 만드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번 만큼은 이런 걱정이 쓸데없는 걱정이기를 바라겠다”고 보태기도 했다. 

규제개혁장관회의 중계를 위해 시간을 조정한 것은 지난달 말에 있었던 청와대 보도·편집국장 오찬 간담회를 떠올리게 한다. 비공개로 진행된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청와대와 방송사들 간의 관계가 더욱 긴밀해져 보인다는 사실이다. 청와대 행사 시간을 변경하는 걸 같이 조율할 정도가 됐으니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들을 ‘잡초’에 비유해 “뿌리까지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뽑아버려야 할 건 권력과 언론의 유착이 아닐까 싶다.

권순택 기자  nanan@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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