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에 중간광고를 허용해야 한다는 ‘말’이 다시 나온다. 매번 하던 이야기이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와 국책연구기관인 정보통신정책연구원(원장 김도환)이 지난 2월 25일 비공개로 진행한 ‘중장기 방송정책’ 워크숍에서는 “특정 시간대와 특정 장르를 우선으로 지상파 중간광고를 점진적으로 허용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총선 이후인 4월 28일 지상파 3사가 후원한 한국광고산업협회 세미나에서는 “주말 예능을 시작으로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종합편성채널 등 유료방송에 추가적인 규제완화를 하자”는 방법론까지 제시됐다.

이런 와중에 19일 동덕여대 지식융합연구소가 개최한 <광고제도 개선 및 중간광고의 경제적 효과> 세미나에서는 지상파의 중간광고 도입 매체 간 대체효과를 분석한 결과가 등장했다. 윤여준 대외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상파에 중간광고를 도입하면 유료방송의 방송광고 매출이 393억원이 줄어들지만 지상파의 광고매출이 1310억원(2015년 광고매출액 대비 6.65%) 늘어 방송시장 전체 파이가 786억원 가량 늘어난다는 분석을 내놨다. 윤여준 연구위원은 산업연관표를 활용해 경제효과를 추정했는데, 지상파의 중간광고 허용시 1533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와 1038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 시 매체 간 대체효과 추정 (자료=윤여준 연구위원 발제문.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중간광고 도입은 지상파의 숙원사업이다. 광고비가 뉴미디어에 쏠리고 CJ가 치고 올라오면서 전체 방송광고 시장에서 지상파가 차지하는 비중은 줄고 있는 추세다. 때문에 지상파는 스스로 위기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상파는 미디어생태계를 선순환시키고 지상파가 공적 책무를 충실히 이행하려면 중간광고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리고 최근 지상파는 한류 확산, 경기활성화, 제작역량 강화 등 내세울 수 있는 모든 명분을 동원해 다시 ‘중간광고 허용’ 여론에 불을 지피는 중이다. 특히 이런 움직임은 4‧13 총선 이후 활발해지고 있다. 지상파 3사는 각종 학회‧협회를 후원하면서 이 같은 여론을 만드는 중이다.

MBC는 지난 4월 16일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 학회 세미나(MBC 후원)를 보도하면서 지상파가 광고매출 하락으로 한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규제완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KBS는 같은 달 28일 한국광고산업협회 세미나(지상파 후원)와 관련, “경기 활성화 뿐 아니라 지상파 방송사의 제작 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도 중간 광고 도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보도했다. SBS는 5월 12일 한국언론정보학회의 중간광고 관련 세미나 내용을 다루면서 “지상파 방송의 공적 책임을 이행을 위한 최소한의 재원을 마련을 위해서도 중간광고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라고 보도했다. 미디어스 취재결과, 이 세미나의 주제는 언론정보학회의 정기학술대회 후원을 약속한 SBS가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위에서부터 MBC 4월 16일자 리포트, KBS 4월 28일자 리포트, SBS 5월 12일자 리포트 갈무리

지상파가 최근 중간광고 이야기를 다시 들고 나오는 것은 총선 결과와 관련 지어 볼 수 있다. 정부여당은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선을 맞이해야 하는데, 지상파의 ‘몸값’은 총선 전보다 높아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규제완화는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가 시행령을 개정하면 가능하다. 최성준 위원장은 지난 4월 7일 취임 2주년을 맞아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지상파 중간광고’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파급력이 큰 부분이라 올해는 광고총량제 효과를 살펴보고, 종합적으로 살펴볼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으나 “기본적으로 지상파든 유료방송이든 콘텐츠 제작 재원을 확보한다는 의미에서 광고 규제완화 흐름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시청자들이 광고를 굉장히 불편해하는 것은 잘 알고 있다”면서도 “훌륭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하다. 시청자들이 어느 정도 타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밝혔다.

물론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에 대해서는 ‘불가론’이 다수다. 정인숙 가천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최근 한국언론정보학회 세미나에서 “지상파에 중간광고를 금지한 것은 반백년 이상 이어져온 ‘방송공공성의 핵심수단’이고 지상파 편성의 근간”이라며 “이를 허무는 것은 시청자 권익이 퇴보하고 공공성이 훼손되는 것이라고 본다. 지상파의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중간광고를 허용한다면 단기간 효과가 있겠지만, 이후 남는 것은 중간광고를 봐야 하는 시청자들뿐이다. 지상파, 정부, 학계, 시청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범사회적 논의,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사진=미디어스)

정부가 종합편성채널 등에게 추가적인 규제완화나 재정적 지원을 하지 않는 한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 가능성은 낮다. 종합편성채널과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는 물론 신문업계 또한 결사반대 입장이다. 한정된 방송광고 시장에서 자신들의 몫을 지상파에 뺏긴다는 이유에서다.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에서 종편의 중간광고를 금지하는 등 ‘방송광고 규제를 정상화하겠다’는 공약까지 내놓은 상황이다. 이런 국면에서 지상파 중간광고 허용 여부는 결국 정부여당의 정치적 판단과 강행 의지에 달렸다. 만약 정부여당이 지상파의 여론 지배력을 높이 평가하고, 반대 사업자를 달랠 지원책을 준비한다면 중간광고 허용 논의는 대선을 앞두고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있다.

방통위 입장은 ‘지상파의 중간광고가 다른 사업자의 광고를 잠식하지 않고, 반대로 전체 시장을 키운다면 검토가 가능하다’는 수준이다. 최성준 위원장은 19일 미디어스에 “지금 방송광고 시장이 전체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만일 제도 변화로 인해 어느 방송사업자에게는 광고매출의 많은 증가를 가져오고 반면에 다른 방송사업자에게는 광고매출의 많은 감소를 가져온다면 이는 바람직하지 않고, 방송광고 시장 전체의 상황을 면밀히 분석해서 균형을 이루면서 확장되도록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후 여론의 추이에 따라 방통위의 이러한 입장이 어떤 수준이 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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