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뜬금없는 실소의 원인이 된 글을 떠올린다. 제목은 ‘5·18은 폭동이다’와 비슷했던 걸로 기억한다. 또 무슨 호남 차별의 정서가 담겨 있는가 하여 열어 보았는데, 의외의 논리가 담겨 있었다. 민초가 속된 말로 열을 받으면 폭동도 일으킬 수 있고 그런 건데 왜 기어코 5·18은 폭동이 아니라는 위선을 떠드느냐는 거다. 전형적인 냉소주의 시대의 피장파장 논리인데, 오로지 사전적 의미만을 갖고 이야기 한다면 생각해볼 여지가 없지 않은 논리다.

굳이 이런 조건을 구차하게 붙여 말하는 것은, 우리가 5·18 광주민중항쟁을 폭동이라 부르지 않는 이유가 훨씬 더 건전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의 만행이 시작됐을 때 이미 신군부에게 지배당하고 있던 언론은 광주에서 ‘폭도’들이 ‘폭동’을 일으켰으며 계엄군의 대응은 정당한 진압이었다고 보도했다. 또, 이 ‘폭동’은 ‘불순분자’와 ‘폭도’들의 ‘난동’이었으며 작전에 따른 민간인 피해는 하나도 없었다고 선전하였다. 광주에 거주하지 않는 수많은 국민들이 이런 보도의 내용을 그대로 믿었다.

그러나 실상은 신군부의 정권 찬탈 계획에 제동을 걸려던 광주 시민들이 계엄군에 의해 일방적으로 학살당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까맣게 알지 못했던 젊은이들은 그나마 대학 언저리에 기웃거릴 만큼이 되고 나서야 진실을 알 수 있었다. 1980년 5월의 진실은 이런 방식으로 사회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형성했다. 이후 이들에게 있어서 5·18을 ‘폭동’으로 규정하는 것은 당시 언론의 역겨운 왜곡 보도에 동조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걸 뒤집어 생각하면 이런 생각을 잠시 해볼 수도 있다. 신군부의 폭력적 프레이밍은 그들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5·18이 갖는 의미의 일부를 우리에게서 강탈하기 위한 위협으로 작용한 것은 아닌가?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둘러싼 공방이 어떤 단어나 절차의 선택으로 치환돼버리는 마술은 2016년의 5월에 다시 한 번 재현되었다.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할 것인지 제창할 것인지가 몇 년째 논란이 된 데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국론분열이 없는 방법을 강구하도록 지시 하겠다”고 밝혔다. 우리가 볼 때 ‘국론분열이 없는 방법’이란 원래 제창을 하도록 돼있는 것을 굳이 합창으로 격하한 졸렬한 조치를 바로 잡겠다는 거였다. 그러나 국가보훈처가 “합창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란 입장을 밝히면서 이러한 기대는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아마 박근혜 대통령이 생각한 ‘국론분열이 없는 방법’이란 ‘합창’을 거부하는 5·18 피해자 유가족들과 ‘제창’을 거부하는 이른바 ‘보훈단체’들을 얌전히 한 자리에 불러 모으는 거였을 테다. 그러나 합창과 제창의 의전 논리를 따지면 이 문제의 답은 애초에 정해져 있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제창은 말하자면 노래를 강제하나 합창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5·18 기념의 정신은 꼼짝없이 합창이냐 제창이냐의 소박한 두 선택지의 사이로 말려들어가게 됐다.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 5·18 정신을 기념하는 대의를 존중해서 이런 모양 빠지는 사태를 피하고자 했다면 당연하게도 이른바 ‘보훈단체’들을 직접 설득했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러한 파격보다는 귀족적 중립을 택함으로써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고 두 야당을 적으로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보훈처가 5·18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합창 방침을 유지하기로 발표한 16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추모객들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이후 여의도 정치에서 벌어진 일들을 생각할 때 어쩌면 이게 ‘진군나팔’의 소리였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17일 새누리당은 그야말로 ‘분당적 파국’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4·13 총선 패배로 궤멸적 타격을 입은 지도부를 간신히 다시 세워야 할 때였다. 잡음 끝에 정진석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고 혁신위원장으로 40대 김용태 의원을 세워 이제 모처럼 전열을 정비해 원 구성 협상에 박차를 가할 순간이다. 그런데 새누리당 전국위는 이런 당연한 절차를 거부하였다.

정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게 ‘정진석 체제’에 대한 불신임이 될 수밖에 없음을 잘 알 수 있다. 비상대책위원회는 말 그대로 지도부가 없는 비상시기에 권한을 행사하는 기구다. 그런데 그 비상기구조차 구성하지 못하는 당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눈치 빠른 김용태 의원은 민주주의가 죽었다며 얼른 발을 빼버렸다. 사실상 ‘외통’에 걸린 정진석 원내대표는 전화기를 꺼버렸다. 이제 정국을 향한 눈은 장외에서 대기하고 있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싱크탱크’가 이후 과정에 어떤 역할을 할지에 쏠리고 있다.

이 날의 상황은 박근혜 대통령이 4·13 총선 이후의 난국을 민심의 존중이 아닌 ‘정치게임’으로 풀어가겠다고 결정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보수언론을 포함한 숱한 ‘여론’들이 그토록 대화와 소통과 타협과 또 그 무슨 좋은 이야기를 늘어놓았음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제 성급한 사람들은 다시 ‘개헌’ 두 글자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다. 새누리당이 친박과 비박으로 쪼개질 경우 소수파가 연합해 정권을 장악할 수단은 권력구조 개편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건 애초에 박근혜 대통령의 소수파적 입지와 퇴임 이후의 정치 활동을 고려할 때 언제든 상정될 수 있는 시나리오로 회자돼왔다.

이 국면에 개헌 깃발을 가장 먼저 들어 올린 것은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일부가 이 판국에 무슨 개헌이냐는 말을 내놓고 있으나 주판알을 튕겨 계산이 끝난 이후에는 어떤 말을 할지 알 수 없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다시 ‘대권’을 말하고 있다는 점도 미심쩍다. 왜 저러나 싶지만 ‘大權’의 ‘大’가 대통령의 그것이 아니라면 어찌할 것인가? 이를테면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의 처지를 겹쳐보라. 박지원 대통령이나 김종인 대통령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이원집정부제 하의 박지원 총리나 김종인 총리는 상상 가능한 범주 안에 있다.

5·18은 우리에게 민주화의 당위만을 가르쳐준 것이 아니다. 5·18은 시민사회에 죄책감, 트라우마와 함께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5·18은 민중이 ‘체제’를 가질 수 있다는, 즉 ‘통치’를 쟁취할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경험이었다. 광주의 시민들은 스스로 무장했고 규율을 만들어 부당한 권력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켰으며 동시에 공동체 유지를 위한 헌신을 망설이지 않았다. 그 잠깐의 시기에 시민 권력은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며 펄떡 거리는 하나의 생물과 같았다.

‘광주 코뮌’이라고 까지 불린 이 시기의 경험은 1987년 ‘호헌철폐’를 외친 항쟁으로 이어졌다. 직선제 쟁취를 요구하는 시민의 폭발적 에너지는 광주의 경험으로부터 이어진 수많은 도화선들로 인해 형성됐다. 이 결과가 현재 우리의 체제를 규정하는 1987년 헌법이다. ‘87년 체제’는 숱한 한계에도 불구, 통치의 근거를 민중 스스로가 형성한 결과라는 거다.

그러나 호사가들이 지금 말하는 개헌은 이 당시의 경험처럼 아래로부터 형성된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다. 개헌으로 인한 정치적 효과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어서 영향력 유지의 수단이면서 동시에 국민의당에 있어서 2017년 이후에도 기반을 유지할 수 있는 근거가 될 뿐이다. 어느 누구의 기득권적 욕심, 어느 기득권 세력의 흥망성쇠를 근거로 통치의 룰을 바꾸겠다는 건 4·13 총선을 통해 확인된 민의와 어긋날뿐더러 오히려 정치적 냉소를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국민의당은 스스로를 호남의 대변자로 여기는 만큼 아마 5·18 정신의 계승을 주장하고 있을 것이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말하는 개헌을 이대로 두고 볼 것인가? “선거제도 개편이 더 중요하다”는 말로 타이밍을 잴 일이 아니다. 술수가 아니라 전환이 필요한 때다.

우리가 오늘 아침에 맨 처음 고민할 일은 이런 온갖 오염된 언어들 속에서 그나마 나은 것의 먼지를 털어내 재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게 아니다. 대통령중심제냐 내각제냐 이원집정부제냐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구조 개편이 누구의 의지에 의해 작동하느냐를 물어야 한다. 합창이냐 제창이냐, 폭동이냐 항쟁이냐의 문제를 넘어 권력이 5·18 정신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민주화냐 산업화냐의 박제화된 빈곤한 선택지가 아니라 누구의 권력이 누구의 수단으로 누구를 지배하였는가 또 지배할 것인가를 묻고 또 말해야 한다.

즉, 5·18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우리는 민중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말해야 하고 동시에 이런 당연한 일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는 모든 시도에 맞서야 한다. 그것은 다시 강조하지만 여의도의 어느 누구에게 유리하고 불리한 것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스스로의 운명을 어떻게 개척할 것인가, 이를 우리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되물어야 한다. 지금은 그래야 하는 날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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