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양쪽 다 피곤한 상황이다. SK는 지난해 12월 초 정부에 인수합병 허가 및 승인을 요청하고 자료를 제공했다. 그런데 1단계라고 할 수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정재찬)는 6개월째 심사 중이다. 결국 정부가 ‘법대로’ 해결할 문제이지만, 지상파와 경쟁사업자들의 반발이 거세다. 이동통신 1위, IPTV 2위, 알뜰폰 2위 사업자인 SK와 케이블 1위, 알뜰폰 1위 사업자인 CJ헬로비전이 더 큰 몸집의 공룡이 되는 것을 허락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넘어섰다. “방송통신 융합 시대에 규모의 경제로 미디어생태계 선순환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 SK와 CJ의 주장이다. 반면 반대진영은 “1등 사업자인 SK가 모든 것을 가져가면 생태계가 망가진다”고 반박한다.

SK와 CJ의 주장대로 법을 따지자면 규제공백 탓에 이종매체 겸영이 시장점유율 33% 이내에서 가능하다. 그래서 최근 업계와 학계에서는 SK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에 대한 심사를 ‘통합방송법’ 제정 이후로 미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우정 계명대 교수(법경대학)는 17일 한국방송협회와 한국언론정보학회가 공동주최한 <SK텔레콤-CJ헬로비전 인수합병과 방송 공공성‧공익성> 세미나에서 방송법에 ‘방송’ 개념이 정립돼 있지 않을뿐더러 방송통신 융합과 유료방송사업자 간 소유규제 체계가 미비하다고 지적하면서 “20대 국회에서 통합방송법을 만들면서 이를 보완하고, 인수합병 심사를 ‘입법적 전제조건이 완비되는 시점’으로 연기하자”고 제안했다.

최우정 계명대 교수

문제는 이럴 경우, 소급적용 논란이 일뿐더러 ‘청부입법’ 문제도 있을 수 있어 현실성은 떨어진다는 데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와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최양희)는 19대 국회에 제출한 통합방송법안을 용어 정도만 수정해 20대 국회에 다시 제출할 계획이다. 방통위 방송정책기획과의 통합법안 담당 실무자는 17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20대 국회에 ‘패스트 트랙’(fast track)으로 제출하기 때문에 법안 내용을 손보지는 않는다. 겸영규제 관련한 내용도 달라질 것이 없다”고 전했다. 통합방송법안에 있는 유료방송사업자에 대한 겸영규제는 특정 유료방송사업자가 특수관계자를 포함해 시장의 3분의 1을 초과하는 것을 막고, 시장점유율 또는 사업자수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겸영이나 주식‧지분 소유를 규제하는 내용이다.

정부의 움직임과 반으로 나뉜 여론 지형을 고려하면 찬반 토론을 반복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정준희 박사(중앙대) 지적대로 “현행법이 행정기관에 상당한 권한을 준 것을 고려하면 기존의 법에서 가능한 최대한 (공공성의) 조건을 만들어내야 하는” 시기다. 방송의 공공성과 지역성, 그리고 노동권과 관련한 요구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넓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개입할 지점이 없지는 않다. 언론‧노동‧사회운동단체들이 모인 방송통신실천행동은 SK의 인수합병 선언 직후부터 공공성, 지역성, 노동권을 중심으로 한 ‘조건’을 제시했고 미래부와 방통위는 심사주안점안과 심사기준을 통해 이런 요구를 상당 부분을 받아들였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미래부와 방통위가 최종적으로 SK에 지울 공적 책무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이번 거래가 미디어생태계에 미칠 영향력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SK와 CJ의 ‘빅 딜’(big deal)은 지금까지 인수합병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거래가 성사되면 사업자 간 인수합병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한다. 강명현 한림대 교수는 “추가적인 인수합병이 일어나게 되면 이통3사의 시장점유율이 90%가 넘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또 지상파 등 콘텐츠 단위에 대한 플랫폼의 우위가 ‘만들어질’ 것으로도 본다. SBS가 보도권력을 활용해 결사항전에 나선 것이 이런 분석을 간접적으로나마 뒷받침한다. 결국 정부는 이번에 미디어생태계 전반에 대한 중장기 정책을 보여주는 셈이다.

정미정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

공공미디어연구소 정미정 부소장은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출하고, 시장이 거대자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분명하다”며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지켜져야 할 가치들을 살피고, 이번 인수합병 이슈를 계기로 전체 방송시장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플레이어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 중요하다”며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시청자에 시혜적으로 내려주는 같이 소극적인 방식이 아니라 시청자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커뮤니케이션 인프라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과점화 가능성이 커질수록 공공의 영역을 가장 우선 고려해 공공성을 구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번 인수합병 추진을 계기로 새로 구축할 공공성의 모습은 다양할 수 있다. 유료방송사업자에게 지역채널발전기금을 부담시키는 것, 방송통신 융합시대에 걸맞게 더 많은 공적 재원을 부담시키는 것, 결합상품이 이용자에게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지 검증하는 것, 원‧하청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노동조건을 끌어올리는 것 등 정부가 이번 심사과정에서 관철할 수 있는 내용이 많다. 이은주 박사(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는 “미디어재화는 필수재화다. 소수 기업의 경쟁력 강화 차원이 아니라 이용자와 소비자의 차원에서 그리고 다양성과 공공성, 공적 담론의 틀이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호순 순천향대 교수는 “플랫폼사업자들이 지역성을 희석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조건으로 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인숙 가천대 교수는 “이번 거래는 사업자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싸움이다. 앞으로도 수직적이든 수평적이든 이런 메가 딜(mega deal)이 이어질 것이다. 나가려는 SK든 막으려는 KT든 사업자들의 목적은 같다”고 지적하면서 “사업자들의 싸움은 창과 방패 다 있는데 소비자들은 맨손이다. 방통위는 소비자 후생, 시청자 편익의 차원에 집중해서 심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준희 박사는 “SK가 감당할 수 있을지 테스트하고 제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20대 국회가 통합방송법안을 논의하면서 규제 공백을 메우고, 공적 책무를 강화하면 된다는 게 정준희 박사 의견이다. 지금부터 통합방송법안 제정까지는 SK과 CJ뿐만 아니라 지상파, KT 등 모든 방송사업자에게 공공성을 묻고 실험할 때다.

▲이날 토론회는 17일 오전 대한상공회의소 중회의실B에서 열렸다. 유선영 한국언론정보학회장(성공회대 교수)는 축사를 통해 “기술과 자본의 힘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문화를 변화시켜왔다. 이번에 두 개의 큰 힘이 합쳐지려 하고 통신이 방송을 흡수하려 하는데, 언론정보학회는 학회의 핵심가치인 ‘공공성’으로 이를 보려고 한다. 규제기관의 산업중심적 발상과 이 문제를 시장의 힘에 맡기려는 성향들에 대해 우리 학회는 우려할 만한 사태라고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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