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지법은 지난 29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KBS를 상대로 제기한 정직무효 확인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법원은 김시곤 전 국장이 주장한 길환영 사장의 ‘보도개입’ 사실은 인정했다. “길환영 사장은 9시 뉴스(<뉴스9>)에서 정부와 여당에 유리한 내용이 방영될 수 있도록 수시로 지시, 개입함으로써 보도본부 독립성을 침해해 온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법원이 길환영 전 사장의 ‘보도개입’을 판결로서 ‘인정’한 사실이 2년 전 불거진 보도개입 사태를 풀어줄 변수가 될지 주목된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 이하 언론노조)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이하 새 노조)는 16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길환영 전 KBS 사장과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했다. 왼쪽부터 김환균 언론노조위원장, 성재호 새 노조 본부장 ⓒ미디어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 이하 언론노조)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이하 새 노조)는 16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길환영 전 KBS 사장과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을 고발했다. 두 사람이 지속적으로 KBS 보도 내용에 간섭, 개입해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는 방송법 제4조 제2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다.

김시곤 전 국장이 2013년 1월 1일부터 같은 해 11월 17일까지 작성한 이른바 ‘비망록’에 따르면 길환영 전 사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특종을 빼라’, ‘윤창중 전 대변인 성추행 사건을 톱으로 놓지 마라’, ‘대통령 관련 뉴스를 앞으로 보내라’ 고 지시하는 등 <뉴스9> 순서와 내용에 개입했다.

이정현 전 홍보수석 역시 201년 2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정무수석 및 홍보수석을 역임하는 동안 김시곤 전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 내용에 간섭했다. ‘대통령 방미 성과를 잘 다뤄달라’고 하는가 하면, ‘청와대 안뜰서 아리랑 공연’이라는 리포트에 대해 “맨 마지막에 편집한 것은 문제 있는 것 아니냐”고 항의한 것이 대표적이다.

성재호 새 노조 본부장은 “정치권력은 지속적으로 공영방송에 대한 장악을 시도해 왔다. 자기 선거본부에 있던 특보를 사장으로 임명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길환영 전 사장과 이정현 전 수석에게 고발장을 내는 이유는, 공영방송 KBS를 권력의 하수인처럼 만드는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성재호 본부장은 “또한 고대영 현 KBS 사장에게도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 MB정부 말기 공정성, 편파성 논란을 일으킨 보도 총책임자였던 그는 지난해 말부터 사장이 되었는데 여전히 KBS의 공정성, 독립성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 사장도 권력에 휘둘려 잘못을 저지를 경우 끝까지 책임 물을 것임을 천명한다”고 전했다.

언론시민사회는 ‘KBS 보도개입 사태’가 벌어졌던 지난 2014년에도 길환영 사장 등 주요 인물을 고발한 바 있다. KBS기자협회는 2014년 6월 3일 ‘방송법 위반’ 혐의로 길환영 전 사장과 이정현 전 수석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으나, 거찰은 핵심 참고인인 김시곤 전 보도국장에 대해서는 조사도 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했다. 앞서 2014년 5월 22일 언론노조와 민변 등은 길환영 전 사장,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이정현 전 수석을 방송법 위반과 형법상 직권남용죄, 강요죄 등으로 고발했으나 이 역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종결됐다.

성재호 본부장은 “이번 김시곤 전 국장의 소송 결과에서 드러난 것처럼, 재판부가 ‘공영방송 사장이 보도본부 독립성과 방송 독립성을 침해했다’고 판단한 만큼, 관련자들을 철저히 수사해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환균 언론노조위원장은 “어떤 누구도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방송 독립성을 침해할 수 없다는 법 조항에 따라 개개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을 분명히 하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될 정부가 어떻게 앞장서서 언론 자유를 유린하고 방송 독립성을 해쳐나갔는지 전모를 밝히는 데 언론노조는 모든 힘을 다 쏟겠다”고 말했다.

김환균 위원장은 “길환영 사장이 재임 시절 저질렀던 방송 독립성 훼손은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사법기관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낱낱이 밝혀줄 것이라 믿는다”면서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본질적인 ‘목적’이 되어야 한다. 언론을 수단으로 하려는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강력히 저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길환영 전 KBS 사장과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사진=KBS, 연합뉴스)

앞서 김시곤 전 국장은 2014년 5월 9일,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에 대한 어떠한 가치관과 식견도 없이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 온 길환영 사장은 즉각 자진 사퇴해야 한다”며 길환영 전 사장의 보도개입을 폭로했다. 그는 이후 구체적인 보도개입 사례를 KBS기자협회 총회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밝혔고, 그 해 11월 11일 KBS 특별인사위원회로부터 정직 4개월의 중징계를 받아 정직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길환영 사장이 보도개입을 했다는 김시곤 전 국장의 주장을 대부분 사실로 판단했다. 법원은 길환영 사장이 △2013. 3. 보도본부 간부들에게 ‘기계적 중립을 포기하라’는 발언을 해 정부와 여당에 유리한 편파적 보도를 요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고 △취임 이후(2012. 11. 23.~) 매일 오후 5시를 전후해 <뉴스9> 큐시트 전송을 지시했고 계속 받아봤으며 △대통령 관련 리포트 순서를 앞쪽으로 배치하라는 요구 및 스크롤 자막 송출 중단(국정원 대선개입 특종 관련) 사실을 지시한 적이 있고, 2014. 5. 5. 14:30경 보도본부 간부 참석 회의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해경 비판 자제하라’ 취지로 발언했고 실제로 기사 내용이 상당 부분 완화돼 방송됐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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