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혁 참여연대 노동위원회 간사가 화들짝 놀랐다. LG유플러스의 IPTV와 인터넷을 설치하는 기사들의 임금이 임금 및 단체협약 체결 이후 오히려 떨어졌다는 분석결과를 봤기 때문이다. 최재혁 간사는 한국사회를 통틀어 재벌의 온갖 ‘갑질’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 중 한명이다. 그런 그가 12일 오후 국회에서 <LG유플러스 비정규직 임단협 타결 이후 개인도급 확대‧반인권적인 노조탄압 실태와 문제점>을 주제로 열린 긴급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용노조를 만들고, 노동자를 파편화시키고, 조합원에게 일감을 주지 않는 것은 재벌의 전형적인 행태다. 그런데 어떻게 임단협을 체결했는데 임금이 떨어지나.”

▲12일 국회 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열린 이 토론회는 ‘기술서비스 간접고용노동자권리보장과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과 ‘민주노총 서울본부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와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은수미 의원, 정의당 추혜선 언론개혁기획단장이 공동 주최했다. 사회를 맡은 김진억 희망연대노조 나눔연대국장(우측에서 두 번째)은 “LG유플러스 센터에서 일어나느 부조리한 행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자. 통계자료로 드러내 개선을 요구하자는 취지로 토론회를 열게 됐다. 다음 주 목요일(19일)에는 이 자리에서 기술서비스노동자의 노동실태와 간접고용에 대한 사회적 규제 방안을 고민하는 토론회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제유곤 희망연대노동조합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수석부지부장은 ‘LG유플러스 홈서비스센터 노동 실태’를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기준은 2015년 5월 임단협 체결 전인 2014년 3~4월과 체결 이후인 2015년 8~10월이다. 체결 전 개통기사가 받던 평균 수수료는 282만3929원(유류비 포함)에서 체결 뒤 202만5807만원으로 80만원 가까이 줄었다. 노조는 전국 70개 서비스센터 중 조합이 있는 17개 센터의 노동조건을 분석했다. 유플러스는 하도급업체와 계약을 맺고 서비스센터를 운영 중인데 센터에는 개통, AS, 멀티, 내근직 등 3천여명의 간접고용 노동자가 일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LG유플러스 기사들은 기본급 140만원에 건당 수당을 받는다. 개통기사를 예로 들면, 노사는 임단협 체결 시 주당 40시간의 노동시간 동안 기사들이 147포인트를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포인트를 달성했을 경우 개통기사의 월급은 232만원이다. 노조 입장에서는 주말근무를 줄이면서 임금이 일부 삭감되는 것을 감안한 합의였다. 그러면서 노사는 당시 “회사의 인원충원이나 보강시 현행의 개인도급 형태를 인정하며, 향후 점진적인 정규직 채용을 지향한다”는 단체협약을 체결했고 “회사는 하도급 업체와의 계약을 2015년 말까지 종료한다”는 내용의 별도 합의서에 서명했다.

제유곤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수석부지부장

진일보한 임단협을 맺었는데도 월급이 줄어든 이유는 바로 조합원들의 일감이 줄였기 때문이다. 센터가 단체협약을 어기고 노동조합에 가입한 직원들에게 배정하던 일감을 줄이고 다단계 하도급을 늘렸다고 제유곤 수석부지부장은 주장했다. 분석 대상 17개 센터의 개인도급 인력 현황을 보면, 도급인력은 2015년 5월 임단협 체결 당시 233명에서 2016년 4월 현재 312명으로 늘었다. 17개 센터에는 629명의 기사가 있는데 이중 절반이 다단계 하도급 계약을 맺고 있는 것이다.

특히 조합원 대다수는 개통과 AS 직군인데 센터는 이른바 ‘멀티’ 직군을 123명에서 239명으로 대폭 늘려 활용하고 있다. 제유곤 수석부지부장은 “2014년 말 파업 전후로 원청과 센터가 투입한 대체인력은 파업 이후 ‘과잉인력’이 됐지만 여전히 일하고 있다”며 “한정된 업무량 속에서 조합원과 신규 대체인력 간의 아귀다툼을 하게 함으로써 조합원의 생계 압박과 조합원 수의 감소를 동시에 꾀할 수 있는 방법이었던 것”이라고 회사를 비판했다.

문제는 ‘개인도급화’ 경향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LG유플러스 서비스센터장협의회 대표인 박종수 사장이 운영하고 강북서비스센터(강북/도봉/성북)에는 개통‧AS‧해지 업무를 하는 기사가 총 63명인데 이중 정규직은 단 한명이다. 멀티기사 60명, 해지기사 2명은 모두 개인도급이다. 제유곤 수석부지부장은 “임단협 직후 회유와 협박으로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고, 현장 기사 중 조합원 1명만을 남기고 모두 정규직에서 개인도급화를 시행했다”고 전했다. 그는 “노동조합을 탈퇴하거나 신규로 입사하는 기사인 경우 ‘노동조합 가입 불가 확약서’를 작성해야만 도급으로 계약하고 신규입사가 가능하다”고 폭로했다.

정상화할 방법은 없을까. 기업에 따라 사정이 다르겠지만 LG유플러스의 경우, 해법이 있다. 결국 원청인 유플러스의 방기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이기 때문에 원청이 나서야 문제가 풀린다는 게 제유곤 부지부장 의견이다. 그는 “원청이 나서서 평가지표를 바꾸고,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며 SK브로드밴드처럼 원청이 업무배분을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하도급업체 변경을 최소화하면서 고용과 근속 승계를 인정하는 업체를 선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원청이 당장 직접고용이 어렵다고 판단하면 KT처럼 계열사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고 덧붙였다.

최재혁 참여연대 노동위원회 간사

경제 전반으로 시야를 넓히면 ‘원청이 책임지지 않으려는 노동’을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최재혁 참여연대 간사는 “(현실과 다르게) 고용노동부 고용형태 공시자료를 보니 LG유플러스의 소속외근로자는 722명으로 돼 있다”고 꼬집었다. 최재혁 간사는 “이것은 기업의 경영전략을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다. 지금 더 이상 외주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무리한 외주화가 이루어졌고, 이는 서비스의 질 후퇴로 이어지지 않겠나 생각한다. 일상적인 정리해고와 외주화가 우리 사회가 작동하지 않게끔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공공연구원의 이상훈 연구위원은 “2000년 이후 (이동통신‧IPTV) 3사의 독점적 경쟁 체제가 공고화됐다. 외연확장이 아닌 내포적 수익창출의 방식으로 변모했다. 기존 시장을 두고 ‘땅따먹기’를 하면서 비용절감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올리는 경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LG유플러스가 만년 3위를 벗어나려면 지금과 같은 전근대적인 경영방식을 폐기해야 하고 새로운 노사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

이상훈 연구위원은 “통신서비스의 질적 수준 확보, 숙련에 대한 투자, 기저 기술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현재의 비용절감 식 성장전략의 지속은 성장세의 둔화라는 환경적 조건에서 경쟁력 약화, 통신 공공성 약화, 노동의 저항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며 “산업 내 노동시장은 점점 불평등해지는 상황, 많은 수를 차지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저숙련화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몰리는 상황에 대한 비판적 반성이 공공적 토론을 통해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나서 다단계 하도급을 강하게 규제해야 한다. 애초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방송통신업계의 다단계 하도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별 다른 정책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오히려 규제기관이 다단계 하도급을 유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방송통신 공공성 강화와 이용자 권리보장을 위한 시민실천행동’ 집행위원장)은 “미래창조과학부가 방송사업자의 고용과 노동조건을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이를 재승인, 재허가 심사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찬 언론연대 사무처장

김동찬 처장은 이어 “방송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시청자의 시청권과 맞닿아 있다. 법원이 MBC노조의 ‘공정방송’ 파업을 합법파업으로 인정한 것처럼 방송사업자와 방송노동자의 문제는 공공성의 차원에서 봐야 한다. 플랫폼사업자의 다단계 하도급과 노동착취 구조는 시청자의 권익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것이다. 사업자들이 핵심업무를 외주화하고, 다단계 하도급 구조과 실적 압박을 통해 시청자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20대 국회는 통합방송법안을 다루면서 방송사업자의 공적 책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필수적이고 상시적인 일을 외주화한 원청에 사용자 책임을 지우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법률지원센터 최진수 노무사는 원청을 ‘공동사용자’로 개념 짓는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동사용자’ 개념이 학계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지휘감독’ 주체에 얽매이지 말고 ‘지배’라는 개념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올해 2월에도 아파트 용역업체는 물론 입주자대표회의도 공동사용자로서 책임이 있다고 판정한 노동위원회 사례가 나왔다”고 전했다.

최진수 노무사

최진수 노무사는 제도적 개선보다 중요한 것은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직접고용’이 오히려 더 효율적이라는 연구결과도 많지만, 기업은 가능한 변수를 줄이고 갑질과 통제를 쉽게 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꾸미고 있다”며 “그러나 이 문제를 ‘직접고용’으로 해결하려면 1987년 이상의 사회운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민사회와 연대를 넓혀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역사회와 공동으로 활동할 수 있는 아이템을 개발하는 것이 법률 개선보다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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