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한국현실에 대해 매일경제가 진단에 나섰다. <진실게임 공방에 날새는 한국사회>라고 한다. 오늘자(30일) 39면 기사 제목이다.

▲ 매일경제 10월30일자 39면.
세 가지 예를 들었다. △국세청장 상납진술 번복압력설 △삼성임원 계좌에 50억 비자금설 △연세대 총장 부인 2억원 수수설.

이 같은 ‘부도덕한 일’이 벌어지는 작금의 한국현실을 매경이 개탄하는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하면 좀 아닌 것같다. 매경은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폭로와 해명이 꼬리를 물고 있다. 마치 사회 전체가 어떤 것이 진실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수렁에 빠진 느낌”이라며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진실공방이 사회를 뒤덮고 있다”고 지적했다.

속내는 이거다.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진실공방이 사회를 뒤덮고 있다.” 매경은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게다.

실체 확인하기 별로 어렵지 않다

하나씩 짚어보자. 먼저 연세대 총장 부인 2억원 수수설. 돈 받았다가 돌려준 거 맞다. 이 자체가 일단 ‘문제’가 있다. 그런데 정창영 연세대 총장의 해명이 더 의심을 부추긴다. 해명은 이렇다.

“아내가 아들 사업이 힘들어져 평소 알고 지내던 최모씨로부터 자금을 빌렸으나, 그후 편입학 지원자의 학부모로부터 나온 것임을 알고 반환했다.” (한겨레 30일자 보도 가운데 인용)

이 해명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학부모 김모씨는 지난 29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딸이 떨어졌으니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사모님 비서의 이름으로 자신의 통장에 2억원을 돌려줬다’고 한다. 계좌추적 하면 바로 진실 판별이 가능하다. 정창영 총장은 최모씨로부터 빌렸고 반환했다고 했는데, 학부모 김모씨는 자신의 통장으로 직접 2억원을 받았다고 한다. 통장 뒤지면 ‘게임 끝’이다.

▲ 한겨레 10월30일자 6면.
다음으로 ‘삼성 비자금설’이 있다. 복잡한 것 같지만 하나씩 풀어나가면 된다. 양쪽의 공방이 있지만 우선 지적할 것 하나. 50억 돈이 김용철 변호사 차명계좌에 있었다는 것은 삼성도 인정한다. 다만 본인 동의하에 차명계좌를 빌려줬다는 게 삼성쪽 해명이다.

삼성쪽 해명을 인정한다 해도 문제는 남아…하나씩 풀어가면 된다

이거 일단 인정한다고 치자.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본인 동의 없이 계좌를 개설한 행위는 형법상 사문서 위조에 해당하는데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은 다르다.

▲ 서울경제 10월30일자 26면.
김 변호사는 이렇게 주장한다. “내가 입사할 때(1997년) 제출한 주민등록증 복사본과 자기들이 만든 임의로 만든 도장을 이용해 수시로 신규 통장을 개설하고 해지했다.” 또 이렇게도 주장한다. “삼성에서 법률적 책임을 피하려면 내가 ‘이름을 써도 좋다는 포괄적 동의를 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형사적인 문제가 따른다. 위조 사문서 행사, 금융실명제법 위반이다. 다른 소득을 감추려 했다면 조세포탈 등의 혐의가 추가된다.”

김 변호사 본인이 자신의 동의 없이 통장 만들었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럼 삼성 쪽에선 그가 포괄적 동의를 했다는 것을 증명을 하면 된다. 어차피 법정으로 가서 ‘결판’이 날 일이니 ‘법률적으로’ 사고하면 간단한 거 아닌가. 액수를 보자. 간단치 않은 돈이다. 이런 거액을 ‘어떤 형식의 동의 없이’ 차명계좌를 빌려줬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된다. 금융실명제법 위반은 중대한 범죄다.

나머지 하나. 국세청장 상납진술설이 있다. 이건 양쪽의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검찰 수사를 지켜보면 된다. 결과에 따라 한쪽은 치명상을 입게 되겠지만 그건 우리가 상관할 바 아니다. 신뢰를 잃은 쪽은 내부반성을 거쳐 환골탈태하면 될 일이다.

그래서 ‘삼성 비자금’이고 뭐고 그만둘까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차근차근 짚고 풀어가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 물론 검찰과 같은 기관의 ‘수사의지’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이 있다. 대선이 코 앞인데 ‘무리해서’ 칼자루 휘두를 ‘배짱’ 두둑한 검찰이 그리 많지는 않다는 점이 다소 비관적이긴 하다. 그래서 언론 보도의 방점은 이런 쪽에 찍혀야 한다.

그런데 매일경제. 참 엉뚱한 곳에 초점을 맞추더니 엉뚱한 쪽으로 화살을 날려버린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실 국세청장 상납진술 파문은 오래 전부터 논란이 돼왔고, 연세대 총장 부인 2억 수수설은 29일자 한겨레가 1면에서 보도한 이후 새로운 사실들이 하나 둘씩 밝혀지고 있는 상황이다.

매경이 꼽은 세 가지 사안 중에 ‘새로운 사실’은 삼성 비자금 밖에 없다. 그리고 어제 오후부터 가장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문제 역시 삼성 비자금 파문이다. 굳이 두 사례와 함께 삼성 비자금을 엮은 이유가 궁금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서울경제의 1단 기사와 머니투데이 파이낸셜뉴스의 침묵이 오늘따라 참 솔직해 보인다. '섞거나 비틀지 말고' 단신이나 침묵을 택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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