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의 톡투유- 걱정말아요 그대>가 1년을 맞았다. 처음으로 게스트 없이 엠씨 김제동과 패널 최진기, 서찬석, 송길영 그리고 요조가 함께했다. 그렇지만 <톡투유>는 1주년이라고 특별히 요란스러운 자축은 없었다. 대신 <톡투유> 1년을 돌아보는 빅데이터를 정리하며 은근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정도로 대신했다. <힐링캠프>가 폐지된 이후 김제동이라는 방송인의 유일한 티비 프로그램이 된 <톡투유>. 그 일 년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우선 가장 중요한 의미는 아직도 김제동을 티비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지상파 티비의 전유물이었던 예능이 종편, 케이블로 확장되면서 예능인의 수요는 대폭 늘었어도 김제동의 자리는 없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일주일에 열 편이 넘는 프로그램을 하느라 동분서주할 정도인데도 그렇다.

JTBC <김제동의 톡투유-걱정말아요 그대>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웃기기로는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는 김제동은 아직도 <톡투유>가 유일한 출연작이다. 그 사실에 화도 나지만 그래서 또 위로가 되는 것이 바로 <톡투유>다. 화가 나기로는 본인보다 더할 수는 없다. 그래도 김제동은 혼자 태연하다. 아니 유유자적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매주 일요일 늦은 밤 김제동 때문에 많이 웃고, 많이 성찰도 하게 된다. 예능과 교양이 다 되는 프로그램은 <톡투유>뿐이다. 참고로 <톡투유>는 JTBC 교양국에서 제작을 한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아마도 파일럿 방송 때였을 것이다. 김제동은 자신의 코디네이터와의 일화를 소개하며 바로 그런 프로그램이 되겠다는 약속을 했다. 연예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때로는 억울한 상황에도 감정을 드러내기 힘든 김제동에게 그 코디는 “그 집 앞에 똥을 싸놓고 오겠다”고 한 것으로 기억이 된다.

JTBC <김제동의 톡투유-걱정말아요 그대>

그 코디의 말은 보복의 의미가 아니다. 어디 하소연할 데 없는 우리 수많은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백퍼센트라고는 할 수는 없어도 방송이라는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은 보여준 것 같다. 그 구체적인 실천은 바로 방청객의 이야기들을 열심히 들어주는 것이었다.

말 잘하기로는 으뜸인 김제동과 박학다식한 최진기 강사 등이 포진하고 있지만 <톡투유>는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 말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무척이나 놀라운 현상이다.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좀 많이 수줍다. 그래서 카메라가 비치고, 마이크가 다가오면 얼굴이 빨개지고 어지간하면 숨게 된다.

그런데 <톡투유> 방청객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마이크가 가면 말도 잘한고, 서로 잘 웃기도 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잘하는 것은 남의 이야기에 너무도 잘 울어준다는 것이다. 거기에 소통과 공감과 위로가 다 담겨 있다.

JTBC <김제동의 톡투유-걱정말아요 그대>

<톡투유>는 프롤로그에 몇 명의 방청객 인터뷰를 담는다. 이번 주 그들이 말한 <톡투유>에 대한 정의는 ‘거울’ ‘이불’ ‘반창고’ 등이었다. 거울은 자신을 성찰하게 했다는 것이다. 남과의 소통은 곧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는 의미에서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그 소통은 이불과도 같은 공감의 따뜻함을 말한다. 그리고 반창고는 그렇게 소통하고 공감으로 얻는 위로, 위안을 의미한다. 과장도 아니고 포장도 아닌, 김제동의 <톡투유> 일 년을 그대로 말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세상에 어떤 방송에서도 볼 수 없는 김제동의 <톡투유>만의 풍경이 또 일 년을 함께 했다. 그것은 김제동의 팔목에도, 방청객의 팔목에 걸려 있는 노란팔찌다. 다른 것도 아니고 단지 기억하겠다는 약속과 의지를 김제동은 <톡투유> 동안 내내 지켜왔고, 그런 김제동에 대한 호응으로 어떤 방청객들은 그렇게 노란팔찌를 차고 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톡투유> 일 년은 진화를 했고, 또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켜왔다. <톡투유>가 있어 참 다행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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