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과 <태양의 후예>, 이 두 드라마는 2016년을 강타한 최고의 히트작들이다. 상업적으로는 <태양의 후예>가 앞서겠지만 작품의 완성도나 주제의식에서는 <시그널>에 더 무게를 두게 된다. 그렇지만 두 드라마가 모두 끝난 시점에서 무엇이 더 그리울지는 순전히 각자의 취향에 달린 문제다.

<무한도전>이 두 드라마 중 하나를 선택했다. 바로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와 그의 남편인 영화감독 장항준. 사실 예능인 <무한도전>으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예능인 못지않은 개그 코드를 가진 장항준 감독 때문일 것이다. 또한 실제로 장항준 감독은 무도 멤버들에 전혀 뒤지지 않은 여전한 예능감으로 시종 분위기를 이끌었다.

MBC 예능 <무한도전>

또한 <무한도전>이 김장부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결정적 이유는 바로 지난해 매듭짓지 못한 무한상사 액션 블록버스터 때문이었다. 작가가 액션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 무한상사가 의도했던 것은 역시나 액션멜로가 아닌 액션스릴러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선택에 고민은 많이 덜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김은희 작가 역시 과거 무모한도전 시절부터 <무한도전>을 애청해온 사실을 고백했다. 그렇다면 이미 멤버들의 캐릭터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고, 대본을 쓰는 데 있어 아무래도 수월할 것이다. 아마도 <무한도전>과 김장부부의 만남의 배경에는 이런 것도 적잖이 영향을 끼쳤을 것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무한도전>과 <시그널> 김은희 작가의 콜라보는 만날 것이 만난 필연의 결과인 것이다.

MBC 예능 <무한도전>

어쨌든 김은희, 장항준 부부와 무한상사의 만남은 일단 기대치에서는 그간 어떤 장기 프로젝트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무한도전> 장기 프로젝트에 처음으로 전문 드라마 작가와 영화감독이 대본과 연출을 맡게 됐다. 쉽게 말해서 살림하는 사람이 곳간열쇠를 남에게 다 내어놓은 셈이다. 사실 이 부분은 대단히 높이 평가를 해야만 한다.

<무한도전>에는 누구나 알고 있는 김태호 피디가 있고, 많은 수의 작가들이 존재한다. 다른 프로그램도 아니고 <무한도전>의 피디고, 작가인 그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외부인에게 내놓은 것이다.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은 김장부부가 무한상사에 합류한 것보다 이 사실이 더욱 놀랍고, 감동적인 부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른 생각도 가능하다. 이제는 거의 수면 아래로 내려갔지만 한때 <무한도전>의 시즌제가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나영석 피디의 제안에 당사자가 아닌 MBC의 다른 인사가 발끈하는 반응이었지만 정작 김태호 피디는 그 필요성만은 인정한 바 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번 대한민국 대표예능으로 떠오른 이후로는 흔들린 적이 없는 <무한도전>이지만, 10년이면 아무리 천재라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MBC 예능 <무한도전>

근본적으로 이번 무한상사 프로젝트에 김은희, 장항준을 섭외한 배경에는 지금까지 이룬 <무한도전>이라는 업적을 자기 것이라 뻐기지 않는 겸손함이 주요했겠지만, 이미 너무 지치고 고갈된 <무한도전>의 상황에서 보낸 절실한 구조 시그널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얼마 전 김태호 피디는 SNS에서 ‘할 일은 많고 마음은 불안하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그리고 거기에 태그로 ‘NO_ANGER'라는 말을 덧붙였다. 왜 화내지 말자고 했을까? 최근 동료였던 예능피디들의 대거 이탈 그리고 이상호 기자의 퇴사 등 때문은 아니었을지 모를 일이다. 본인이 직접 언급하지 않은 내용이라 확대해석하는 일은 피해야겠지만 왠지 그쪽으로 시선이 간다.

어쨌거나 이번 무한상사에 김은희 작가와 장항준 감독이 담당하게 된 것은 드라마와 예능의 콜라보라는 무한도전다운 또 하나의 도전이라는 의미와 그것을 위해 자신의 지휘봉을 내준 김태호 피디의 대인배다운 태도라는 드러나는 의미들은 분명하다. 더 깊이 파고들지 않더라도 이미 그것만으로도 <무한도전>은 또 하나의 레전드가 시작됐음을 확신할 수 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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