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은 갈수록 예능전쟁으로 뜨겁기만 하다. 기존 금요일 밤을 지키던 예능들 외에도 신규 예능들이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다. 금요일을 타겟으로 새로 생겨난 예능만 해도 듀엣가요제, 노래의 탄생, 언니들의 슬램덩크, 히트메이커 등이 있고, 논란의 예능 나를 돌아봐를 대신해 새로 런칭한 어서옵쇼도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거기에다가 기존 금요일 밤을 지켜온 정글의 법칙, 나 혼자 산다도 여전하다.

얼핏 봐도 동시대간에 각 방송사들의 예능 경쟁이 심상치 않음을 잘 알 수 있다. 과거와 달리 주5일제가 자리잡아가고 있어 예능 전쟁터가 토,일에서 금요일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 금요일은 확실히 tvN이 강세였다. 나영석 피디의 새로운 예능들과 신원호 피디의 응답 시리즈들이 연이어 히트를 하면서 금요일 밤은 tvN에 채널을 맞춰두면 그만일 날들이었다.

게다가 프로야구광이라면 금요일은 티비 한 대로는 보고 싶은 것을 다 볼 수 없는 상황이 될 지경이다. 즐거운 비명이라도 질러야 하겠지만 사실 너무 지나친 예능 프로그램들의 범람은 반드시 피로감을 동반하게 된다. 일주일의 노동을 끝내고 휴식과 즐길 거리를 찾게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청자 모두가 예능만은 월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기억>

그런 면에서 <시그널>에서 <기억>으로 이어지는 tvN의 드라마 편성이 더욱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응팔>로 시작해서 <시그널>, <기억> 그리고 다음 주부터 방영될 <디어 마이 프렌드>까지 예능 프로그램들의 피 터지는 전쟁터 속에서 조금은 차분하게 금요일 밤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의 채널 선택권을 보장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엉뚱한 말로 서두가 너무 길어졌다. 그것은 이제 <기억>이 마지막 하루만을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고, 그 아쉬움이 벌써부터 너무 큰 탓일 것이다. 종영을 하루 앞둔 <기억>은 박태석을 통해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복수가 아니라 진실을 증명하려는 것이라는 작가의 의지다.

그리고 작가가 지키고자 하는 또 다른 것은 바로 희망이다. 인간에 대한 희망 바로 그것이다. 그 희망의 시그널을 15회에 두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그것이 고작 드라마 속의 허구라 할지라도 왠지 따뜻해지고 이런 각박한 세상에 살면서도 조금은 안심이 되게 해준다.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기억>

박태석은 이찬무에게 더 이상 본심을 숨기지 않고 아들 정우 사건의 진실을 밝히겠다고 선언했다. 그러고 해고라고 소리를 지르는 이찬무에게 나가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라고 했지만 기실 그것은 법무법인을 나가겠다는 의미였다. 그런 박태석이 사무실로 돌아오자 정진은 웃는 얼굴로 사표를 내민다. 박태석과 함께하겠다는 의미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뒤따라 들어온 봉선화도 사표를 내민다. 자기 사표를 받아줄 사람은 박변호사밖에 없다면서 생글생글 웃는다. 그런데 그 사표가 생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살다 살다 핑크색 봉투의 사표는 처음이었다. 핑크색 사표가 낯설어서 놀라고, 그 의리에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논어의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이란 말처럼 의로운 사람 박태석 곁에는 그를 지키는 또 다른 의로움이 있어 참 다행이었다.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기억>

그리고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도 먼 관계인 서영주와 나은선의 통화 역시 세상에 없을 따뜻한 우정을 보였다. 나은선이 먼저 전화를 걸었다. 박태석이 아내인 서영주에게 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알려주며 알츠하이머를 앓는 남편을 지키는 서영주를 걱정했다. 그러자 서영주도 역시 “동우엄마는 혼자라서 더 많이 힘들 것 같아요. 동우엄마 참 대단해요. 귀찮더라도 식사 거르지 말고 꼭 챙겨드세요”라고 했다. 듣는 나은선은 물론 보는 시청자도 가슴이 뜨거워져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어쩌면 이런 사람들은 현실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허구라고 냉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해준 사람은 없었다고 비관하기보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한 것을 반성케 하기에는 충분하다. 그것이 곧 희망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 아닐까? 진실과 희망이라는 두 키워드로 이 슬프고 따뜻한 드라마 <기억>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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