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소리 없이 강한 드라마다. 화제성이나 시청률 면에서 대단히 뜨겁지는 않지만 이 드라마를 한 번 본 사람이라면 끊을 수 없는 대단한 중독성을 느끼게 된다. 그 작용의 중심에 이성민의 미친 연기력이 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지만, 사실은 작가의 묵직한 내공의 필력이 작용한 결과라고 확신할 수 있다.

김지우 작가는 무엇보다 복수라는 키워드에 강하다. 이번 작품은 복수라고 단순히 규정지을 수 없지만 복수의 정서가 전반에 깔려 있다. 또한 복수라고 하더라도 상당히 역설적이고, 세련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복수의 긴 행보에 정의를 동행시킨 것이 그렇다. 또한 주인공 박태석이 복수를 해나가는 과정이 마치 매미의 마지막 칠일 같은 슬픈 끝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기억>

이제 마지막 2회만 남겨둔 시점. 박태석은 15년 전 사건의 진실에 거의 한두 발짝을 남겨둔 정도다. 그와 동시에 알츠하이머의 활동 역시 왕성해져서 매순간이 위태롭기만 하다. 그렇지만 “내게는 시간이 없어!”라고 절규할 수밖에는 없는 박태석의 마음은 바쁘기만 하다. 거의 다 온 것 같아서 더욱 안타깝기도 하다.

그래서 박태석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슬프다. 그런데 슬프면서도 왠지 따뜻한 감정을 더 받게 된다. 주변 사람들 때문이다. 아내가 그렇고, 그를 돕는 새내기 변호사와 비서가 그렇다. 그들로 인해 이 슬픈 이야기가 따뜻해질 수 있었다. 슬퍼서 눈물이 나고, 따뜻해서 또 눈물이 난다.

이 드라마가 끝날 때쯤에는 그 슬픔이 눈덩이처럼 더욱 커질 것이다. 그렇지만 그 슬픔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박태석이 정의로운 일들을 모두 처리하더라도 정작 본인은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며, 상대들 또한 순순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하더라도 박태석의 시계는 비극의 카운트다운을 향할 수밖에는 없다.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기억>

한국 드라마는 해피엔딩의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모두들 사는 게 너무도 힘들어서 드라마에서라도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그 무의식의 바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슬픈 결말이 일상을 더 억누를 거라는 것도 괜한 걱정일 수 있다. 비극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해피엔딩에 못지않은 정화를 준다.

일본말로 슬픔은 ‘가나시미’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의 자음을 모두 떼어내면 ‘아아이이’가 된다. 굳이 해석하면 ‘아 좋다“ 정도가 된다. 억지가 될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어쩌면 비극에 더 친화적인 존재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런 생각에 편을 들어주는 것이 바로 <기억>이라는 드라마다. 슬퍼서 참 좋다는 느낌을 준다.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기억>

친구란 슬픔을 대신 지고 가는 사람이라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언어도 다시 생각해봄직하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 드라마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지 않은 점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만일 <기억>이 <태양의 후예>처럼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면 엔딩에 대해서 작가에게 압력(?)을 가해졌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처음부터 이 드라마를 진지하게 시청한 사람이라면 태석의 슬픔을 함께 안고 갈 준비가 돼있을 거라 믿는다. 마치 친구처럼 말이다. 오히려 마음껏 울고 후련해질 그 결말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또 모를 일이다. 그것이 슬퍼서 좋은 이 드라마의 감상법이 아닐까?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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