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의 대표 앵커인 정애숙 앵커에게서는 ‘사람 향기’가 난다. 단순히 뉴스를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뉴스에 사람을 향한 따뜻함까지 더해 전하는 사람이다. YTN노조 투쟁 200일을 맞아 400여명의 YTN노조원 가운데, 그를 인터뷰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다.

혹여나 다른 누군가가 알아볼까 얼굴을 감싼 채 집회 혹은 투쟁 현장을 찾던 다른 방송사의 아나운서·앵커와는 달리, 그는 늘 투쟁 현장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투쟁 현장에서 그의 자유 발언은 다른 노조원을 비롯한 시민들을 늘 감동시켰고, 그가 울먹이는 모습이 담긴 ‘YTN앵커 정애숙의 눈물’이란 제목의 동영상은 네티즌들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정 앵커는 YTN노조의 지난 200일 동안의 투쟁을 ‘가장 옳은 일을 위하면서도, 부끄럽지 않은 길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투쟁 현장에서 선배들을 향해 구호를 외치는 것을 참 많이 힘들어 하는 그는, 가끔 서럽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앵커로서 투쟁 현장에 나오는 게 두려웠을 법한데도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노조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며 “YTN노조의 투쟁이 끝난 뒤, 서로가 웃으면서 지난날들을 이야기하면 좋겠다”며 ‘YTN이 사회의 산소 역할’을 하게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덧붙였다.

다음은 정애숙 앵커와의 일문일답이다.

▲ 정애숙 YTN 앵커. ⓒ송선영

YTN노조 투쟁이 200일이 되었다. 200일 올 거라고 예상했나?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으니까, 200일이 올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투쟁을 시작할 때만 해도, 겨울용 투쟁 조끼를 맞추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최악의 상황에 대해 고민했던 정도지, 그 누구도 딱 200일을 못 박아놓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200일을 돌아보면 아프다. 선배도 아프고, 후배도 아프고, 선후배 사이도 아프고, 우리 사회도 아프고 그런 것 같다. 다들 그만 아팠으면 좋겠다. 어서 빨리 상처도 치료하고 회복해야 할 것 같다.

YTN노조가 투쟁을 계속 하는 이유, 뭐라고 생각하나?

어느 정도 시늉하고 명분을 쌓다가 적당히 타협할 수도 있고, 가족들의 생계와 인생이 걸린 문제임에도 열심히 매달리는 이유는, 방송을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는 적어도 기자로서, 앵커로서, 어떤 직군이든 24시간 뉴스전문채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들을 굉장히 고민하면서 200일을 지나왔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안위와 가족들만을 생각했다면, 쉬운 길 놔두고 이렇게 어려운 길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200일 동안 ‘가장 옳은 길은 무엇일까’ ‘부끄럽지 않은 길이 무엇일까’ ‘서로 아프지 않은 길은 무엇일까’ 그렇게 망설이면서, 가끔은 서럽기도 하면서, 아픔을 겪어 온 것 같다.
아는 분이 ‘YTN사태에 대해 관심이 없었는데, 어느날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나에게 말을 했다. ‘투쟁하지 않아도 주는 월급 받으면서 편하게 일할 수 있을 텐데 저렇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맙다’란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봐주시면 정말 고맙다.

투쟁 이전과 비교했을 때, 투쟁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정말 치열하게 이 일(방송)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 것이 달라진 점이다. 각자 역할에서, 적어도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사명감과 공정방송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하고 있다. 자기 스스로 더 돌아보게 되고, 검열하게 되고, 이러한 것들이 미래에 긍정적인 걸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투쟁 이후, 사람들 사이가 너무 많이 힘들어진 것 같다.

그렇다면 투쟁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어떤 형태로든 의견이 갈리고, 문제 의식도 다르고, 해결 방법도 달라지는 것, 그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사이가 멀어졌다는 게 가장 힘든 것 같다. 그리고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황에서 여전히 문제를 안고 방송을 하고 있다.
여러 노조원들이 집회에 나가있는 동안에도 방송은 방송대로 나가야하기에 자리(집회 현장)를 비워야 했다. 그래서 투쟁에 적극적으로 했던 동료들이 징계를 당했을 때 마음이 아팠다.
과거 YTN이 어려워 6개월 정도 월급을 못 받았을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든 이유는, 적어도 그때는 선후배들이 서로 굉장히 끈끈했다는 점이다. 월급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언제 월급을 받을 수 있을지 기약 없는 상황에서, 무딘 펜끝을 곧고 날카롭게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자고 서로 위로했기에 적어도 사람 사이에서 힘든 점은 없었다.

앵커 입장에서 투쟁 현장에 나서는 게 두렵지는 않았나?

두렵거나 이런 것은 없었다. 사실 현장에 저보다 훨씬 더 자주 나오는 분들이 많을 텐데 TV에서 보던 익숙한 얼굴이기에 현장에 많이 나왔다고 착각하시는 것 같다.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은 앵커로서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기도 한다. 하지만 방송을 통해서 개인적 의견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노조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주 현장을 찾지 못해 미안하다. 충돌하는 이런 상황들이 오래 이어진다는 게 너무 마음 아픈 일이다. 이런 일 때문에 노조원들이 자주 모여야 한다는 것도 굉장히 슬프다.

지난해 ‘YTN정애숙 앵커의 눈물’ 동영상이 화제가 됐었다.

누가 이야기해줘서 알았는데, 당시 화제가 됐는지 몰랐다. 과거 십여년 전의 아픔들이 반복되는 듯했고, 그 때 불렀던 노래를 다시 불러야 한다는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다.
또 소외되어서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부끄러웠다. 뉴스라는 게 많은 일들 가운데 우선 순위를 정해 보도하기에 일반 뉴스 프로그램에서 사안을 깊게 보도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용산 철거민 참사’ 같은 가슴 철렁한 일이 생겨야 보도 되니까. 이러한 것들에 대한 생각 때문에 당시 울컥했던 것 같다. 민망하다. 많은 분들이 귀 기울여 주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두려운 일이다. 부끄럽다.

지난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YTN 앵커들의 블랙투쟁에 대해 ‘시청자에 대한 사과’ 징계를 내렸다.

동참할 때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감수하고 한 것이었기에 징계 결정에 놀라지는 않았다. 다만 처음 블랙투쟁을 같이 하면서 본인의 의사와는 다르게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있을까, 방송에 대한 신뢰도를 지키면서 우리의 의지를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최근 연쇄 살인 사건 등을 비롯해 마음 아픈 뉴스를 전할 때에는 ‘이런 뉴스는 오늘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뉴스들이 반복되질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 정애숙 YTN 앵커. ⓒ송선영

투쟁이 끝난 YTN 모습을 상상해본 적 있는가?

구체적으로 그때 돼봐야 알겠다.(웃음)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다들 고생했다’ ‘너 때문에 회사 다닐 맛 난다’ 등 모든 이들의 징계가 풀리고,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그런 모습을 상상한다. 서로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남은 상처들 때문에 쉽기 않겠지만 말이다. 예전에 뵙고 싶었던 작가 조정래씨를 스튜디오에서 짧게 뵈었었는데 그분은 ‘작가란 우리 사회에서 산소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힘들 때마다 뉴스를 만드는 YTN이 우리 사회의 산소같은 역할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산소를 많이 내뿜는 그런 뉴스를 하고 싶다.

정애숙 앵커에서 방송이란 어떤 의미인가?

1995년 만 23살에 입사했다. 당시 이 직업을 선택할 때, 평생 내가 열정을 다해 젊음을 바칠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영상 매체가 가지고 있는 힘과 영향력 뒤에는 반드시 책임감이 뒤따르는데, 그 책임감이 갈수록 커지는 것 같다. 방송은 동시성과 대중성을 지니고 있기에 이런 부분에서 두려움이 크다. 그래서 가끔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많이 가라앉을 때가 있다. 때로는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푸근해지는 방송을 너무 하고 싶은데 뉴스만 하다보니까 내 마음이 주름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몸과 마음의 건강뿐 아니라 내 생각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생각보다 힘들어서 평생 공부해야 하는 직업 같다. 그냥 ‘삶’인 것 같다.

상투적인 질문일 수도 있지만, 어떤 앵커를 꿈꾸고 있는가?

인간 관계를 보면 처음엔 신선하지만 나중엔 식상한 사람이 있는데, 앵커로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보면 볼수록 친해지고 싶은 사람, 가까이 하면 할수록 더 믿음이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래 볼수록 편안하고 좋은, 그런 방송인이 되고 싶다.

방송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뉴스는 어떤 것인가?

회복에 관한 뉴스를 전하고 싶다. 여기 저기 꼬여있고, 다투고, 악화된 문제들이 회복되고 풀리는 소식을 전하고 싶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좋은 소식만 전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정말 근본적 바탕이 회복되는 뉴스를 전했으면 좋겠다. 방송하는 사람이라면 희망을 주고 싶은 것은 다 비슷할 것 같다. ‘이상주의자’라고 손가락질 받더라도 이러한 마음 드는 것 어쩔 수 없다. (웃음)

투쟁 중인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한다. 다 같이 서로 아픈 마음이 아니라, 편안한 마음으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이 어서, 속히, 꼭, 왔으면 좋겠다. 어떻게 일일이 그 마음을 다 알겠냐만 그래도 비슷할 것 같다. 미안하고, 안타깝고, 이 일로 서먹해졌던 관계들도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인터뷰를 당한 기분이 어떤가?

내가 한 말이나 생각들이 혹여나 다른 사람에게 누가 되질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럴 때에는 논리적이고 멋있고 그런 말보다 두려움이 있더라도 속에 있는 말을 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웃음)

▲ 정애숙 YTN 앵커. ⓒ송선영

정 앵커는 처음 인터뷰를 요청했을 당시 “열심히 투쟁한 분들이 많은데, 내가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요청했을 때 “도움을 주고 싶지만,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조심스러워했다.

사람에 대한 애정과 사회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을 가진 그가 YTN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은 YTN을 통해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을 만나게 될 것 같다. 부디 그의 바람대로, 아픔 많은 YTN이 하루빨리 상처를 훌훌 털고 이 사회에서 산소같은 역할을 하는 방송사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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