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서울시청 인근을 채우던 촛불을 기억한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심지어 비가 오는 날에도)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촛불을 들고 모인 시민들을 보면서 나는 불편했다. 취재 일정이 없는 주말, 친구들과 즐겁게 노닥거리면서도 방학 숙제를 덜 끝낸 채 개학을 맞는 학생처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불편했던 이유는 촛불의 진정성을 정부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들이, 전혀 나아지지 않은 채 하루하루 계속됐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2009년 2월. 나는 YTN을 지나갈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가장 큰 이유는 구본홍 사장 선임으로 시작된 YTN사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노조원들이 매일 아침 “구본홍은 물러가라”를 외치는 상황과, 수십 명의 시민들이 매일 저녁 촛불을 들고 YTN을 밝히는 상황, 이 모든 것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잠잠할 만하면 터져 나오는 회사 쪽의 인사, 징계, 고소를 비롯해 시시각각 쏟아지는 노조의 성명, 투쟁 지침 등도 나를 괴롭게 한다. (친절한 YTN노조는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상황들을 발 빠르게 전달해주곤 하는데, 가끔 자다가, 놀다가 혹은 교회 예배중에 문자를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 2008년 8월27일 YTN노조원 60여 명이 보도국 편집회의가 열리는 '보도국 회의실'에서 부장 인사 단행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송선영
지난 200일 동안 YTN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출근 저지 투쟁, 생방송 도중 손팻말 시위, 인사 불복종 투쟁, 블랙투쟁 등 여러 매체들을 통해 이미 보도된 내용들도 있을 것이고, 내부 사정상 차마 알려지지 못한 여러 일들도 있을 것이다.

사장 선임 문제에서 불거진 YTN 사태는 ‘공정방송’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내부의 상처를 깊게 했다. 돌이켜보면 취재하면서 가장 곤혹스러웠을 때는 구본홍 사장이 노조에 막혀 힘겹게 출근을 시도하는 것을 볼 때보다, 선·후배들이 서로를 향해 비수 같은 말을 쏟아내는 현장에서 그 말들을 끄적끄적 취재수첩에 적어야 했을 때였다. YTN사태가 마무리 되더라도 지난 시간동안 서로에게 주었던 상처가 치유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듯하다.

나는 솔직하게 YTN노조를 향해 투쟁을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었고, 구본홍 사장을 향해 ‘이제 그만 쿨~ 하게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말하고 싶었다. 더 솔직하게, 투정같지만 YTN 사람들이 오랜 투쟁에 지친만큼, 이를 취재하는 기자들도 지쳤다고 말하고 싶었다. 가끔 “구본홍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현장에서 들을 때면 ‘내가 여기에 왜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내 마음의 불편함과 육체적 힘듦을 생각하기 이전에, 지난 시간동안 노조가 어떠한 명분과 가치를 두고 투쟁을 이어왔는지를 잘 알기에 차마 그 말을 꺼낼 수 없었고, 그렇기에 YTN 사태를 계속 보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YTN노조의 투쟁이 더 이상 길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노조가 그동안 내세웠던 ‘공정방송’이라는 명분을 뒤로한 채 무조건 투쟁을 접는 것이 아닌, 더 이상 투쟁이 필요 없게 되는 상황이 오길 바라는 것이다.

구 사장은 <미디어스>의 인터뷰 요청 때마다 “아직 때가 아니다”라며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지난달 30일 통화에선 “노사가 하루 빨리 안정된 모습을 보여 재승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회사의 미래를 위하는 것”이라며 “회사 경영을 위해 사방으로 뛰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매체가 YTN에 대한 보도를 수없이 쏟아내고 있다. (YTN사태 초기에 비해 지금은 그 열기가 많이 시들해지긴 했지만) 그 많은 보도들에 대해, 구본홍 사장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YTN사태에 대한 많은 물음에 이제 구 사장이 대답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이 사태를 어떻게 풀어 나갈 건지, 해법은 무엇인지, 계속 이 상태로 YTN에 있을 건지, YTN에 대한 진심이 무엇인지 듣고 싶다.

▲ 2009년 2월2일 오전 7시43분, 구본홍 사장이 사장실로 향하고 있다. ⓒ송선영
YTN의 안정화는 구본홍 사장, YTN노조, 나아가 많은 언론인을 비롯한 시민,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세상 모든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는 노랫말처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해직된 노조원들이 다시 마이크와 카메라를 잡고, 다시 <돌발영상>을 만들고, 투쟁 현장이 아닌 취재 현장에서 노조원들을 만나길 원한다.

YTN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나는 YTN을 지나갈 때마다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끝이 보이지 않아 쉽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이 투쟁이 하루 빨리 마무리되기를, 나아가 지난 200일 동안의 투쟁 경험이 헛되지 않은 채 그들이 열망하는 ‘공정방송’의 탄탄한 기반이 되기를 원한다. 그 때가 되면 YTN을 지나갈 때마다, 그리고 방송을 볼 때마다 더 이상 불편한 마음을 느끼지 않을 것 같다.

지난해 10월, YTN노조 투쟁 100일 기획 기사를 준비하면서 ‘부디 200일 기사는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졌었다. 2일 오전 YTN에서 만난 한 노조원에게 “200일이 되었네요”라는 안부를 전하자 그는 “그렇네요”라고 답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 나는, ‘제발 300일 관련 기사는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다시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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