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소통’을 다짐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언론사 보도, 편집국장 오찬에서 강조한 단어 ‘소통’”
“빠른 시일 안에 여야 3당 대표와 만나는 등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KBS를 비롯한 MBC·SBS 뉴스의 첫 머리다.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시작해서 “소통을 다짐했다”가 끝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언론사 보도국장 및 편집국장 오찬 간담회 관련 지상파 3사 관련 뉴스들은 모두 이 같은 ‘받아쓰기’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노동계와 야권이 반대해왔던 노동개혁법안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을 그대로 추진하고 문고리 3인방 교체를 포함한 개각도 안 할 거라고 했다. 법인세 인상도 없을 거라고 말했다. 과연 이것이 4·13총선 결과에 대한 민의를 받아들여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인가.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총선 결과를 ‘정권심판이 아닌 국회심판이었다’는 엉뚱한 답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상파 보도에는 “그런데”, “하지만”이라는 접속사가 없다.

어버이연합의 일당 2만원으로 탈북자들을 동원해 집회를 열었고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다는 의혹이 연일 주요 뉴스로 자리 잡았지만 침묵했던 KBS·MBC는 이날 처음으로 “그런 일이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전달했다. 지상파 3사는 김영란법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부정적 발언에 공동으로 주목했다. 이 과정에서 KBS는 박근혜 대통령이 박수 받는 장면만 무려 6번을 노출시켰다.

KBS '뉴스9' 4월 26일 뉴스

KBS뉴스는 박근혜 대통령에 보도·편집 국장들이 박수치는 장면부터

KBS <뉴스9>는 26일 <박 대통령 “3당 대표 만날 것…개각·개헌은 반대”>(TOP), <“양적완화 긍정 검토…증세 마지막 수단”>, <“北 5차 핵실험 준비 완료…붕괴 재촉하는 길”>, <진솔한 심경 토로…“임기 마치면 엄청난 한 남을 것”> 등 총5개의 리포트를 배치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말씀’을 전달하는데 앞장섰다. KBS뉴스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보도·편집국장들의 박수치는 장면부터 배치했다. MBC <뉴스데스크>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른 차이가 있다면 그 횟수다. KBS는 이날 뉴스에서만 박수 장면이 무려 6번(MBC는 2번)을 배치했다.

KBS '뉴스9' 4월 26일 뉴스

KBS는 “박근혜 대통령이 KBS 등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40여명을 초청해 오찬간담회를 가졌다”며 “대통령 취임 직후 이뤄진 첫 간담회 뒤 3년 만이며, 총선 뒤 첫 소통행보”라고 전했다. 뉴스 시작부터 ‘소통행보’라고 정의했다.

KBS는 “박근혜 대통령은 먼저 여소야대의 3당체제는 민의가 만들어준 것이라면서 3당이 협력하고 견제하면서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빠른 시일 내에 3당 대표를 만나고 회동의 정례화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며 “또 여야정 협의체를 만들어 소통할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하지만 연정이나 개헌, 개각은 북핵 위기와 경제 상황, 총선 민심 등을 감안할 때 추진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4·13총선 심판으로 최소한 청와대 내 문고리3인방은 교체되지 않겠느냐는 정치평론가들의 전망은 빗나갔다. 그렇지만 KBS뉴스에 비판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배신의 정치’ 비난 뒤 탈당했던 유승민 의원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2011년 본인이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시절을 거론하면서 “그 때 많은 사람들이 당선이 됐는데, 당선되고 나서는 자기 정치한다고 또 이렇게 갈라서게 됐다”고 언급했다. 새누리당 내 계파갈등에 대한 본인의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발언이었다. 그렇지만 KBS는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다만, “무소속 의원의 복당 문제에 대해선 지도체제가 안정된 뒤 당이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고만 전했다.

KBS '뉴스9' 4월 26일 뉴스

KBS는 그동안 어버이연합이 탈북자를 동원해 집회를 열었고 그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의혹에 대해 단 한 번도 보도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해당 사안을 JTBC와 시사저널을 인용해 아침라디오에서 전한 기자를 하차시켜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랬던 KBS는 이날 “어버이연합 청와대 배후설에 대해선 사실이 아니라는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는 단 한 줄의 박근혜 대통령의 부인으로 처리했다.

총선에서 ‘북풍몰이’에 나섰던 KBS, 이날도 북한 관련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엮었다. KBS는 “간담회에서는 북핵 문제 등 안보문제도 집중 거론됐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5차 핵실험 준비를 마쳤다며, 도발을 계속하면 붕괴를 재촉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과 같은 교과서로 배우면 정통성이 오히려 북한에 있는 게 되기 때문에 북한에 의한 통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국정 교과서 추진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지만 KBS 뉴스에서는 그저 “의지 재확인”이라고만 처리됐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부자감세 정책에 대한 불만과 노동개악이 총선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법인세 인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은 견지했다. 이 밖에도 ‘경제활성화’라는 이유로 공직자들의 골프를 풀어줬을 뿐 아니라, 김영란법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민의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청와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간담회였다. 그렇지만 KBS에서는 비판 한 줄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김영란법 관련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언론인들이 좋아할만한 멘트라 할만하다. KBS는 또한 ‘노동개악’에 대해서도 “(박근혜 대통령은)구조조정에 따른 실업대책과 관련해선 노동개혁법, 특히 파견법에 해결책이 있다며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고 덧붙였다.

MBC·SBS, ‘경제’ 관련 비판 없는 보도…김영란 법에도 주목

MBC <뉴스데스크>는 같은 날 <박 대통령 “민의 반영해 소통, 여야 3당 대표 만나겠다”>(TOP), <박 대통령 “파견법 꼭 필요, 양적완화 긍정 검토”>, <박 대통령 “국정 역사교과서 필요”, 배후설 부인> 리포트를 배치했다. MBC는 특히 세월호 참사와 땅콩회항 등의 사건에서 ‘경제 위축은 안된다’는 주장을 펴썬 만큼 이번 간담회에서도 노동개악 법안 처리 등 ‘경제’ 문제에 주목했다. 물론, 그 내용은 박근혜 대통령의 말씀을 전달하는 수준이었다.

MBC '뉴스데스크' 4월 26일 뉴스

MBC는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나라 경제에서 구조조정이 큰 화두가 됐다면서 실직자들이 새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파견법이 처리돼야 한다고 말했다”며 “특히, 파견법은 구인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에도 도움이 되는 등 1석 4조의 효과가 있어 9만 개 정도의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서비스산업발전법만 통과돼도 기업 투자가 34% 늘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조선·해운업종의 구조조정을 놓고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악안을 연결시킨 것이다. 박근혜대통령이 이야기한 ‘실직자들에게 새 일자리’라는 것은 그야말로 비정규직일 수밖에 없다. 그 자체로 비정규직 양산법이라는 점을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지만 MBC에서는 그저 ‘9만 개 일자리 생성’이라는 근거도 불분명한 통계를 제기한 박근혜 대통령의 말만을 전달하는 데에 그쳤다.

MBC는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시중에 돈을 푸는 한국형 양적 완화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또한 곧이곧대로 받아 쓸 수만은 없는 대목이다.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양적 완화’를, 더불어민주당은 ‘경제민주화’를 가지고 경쟁했다. 그리고 결과는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양적 완화’를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던 까닭이기도 했다. 하지만 MBC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전달했다.

증세문제 또한 마찬가지였다. MBC는 “일부 정치권에서 제기된 법인세 인상에 대해선 ‘증세는 항상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부정청탁 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이 내수 경제를 위축시킬까 걱정이라며, 취지는 좋지만 우려가 큰 만큼 국회의 재검토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공직자들도 자유롭게 골프를 칠 수 있어야 한다며, 칠 시간이 있겠느냐는 자신의 얘기를 확대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또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각종 규제들을 만들어놓은 대기업 지정 제도도 시대에 맞게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고 단순전달하며 박근혜 정부에 힘을 실어줬다.

SBS <8뉴스> 또한 <박 대통령 “협력·소통 노력…3당 대표 만날 것”>(TOP), <“양적완화 긍정 검토…증세? 국민에 면목없는 일”>, <국정교과서 필요성 강조…두 야당 “불통 재확인”> 등의 리포를 배치했다. 그 내용은 KBS와 MBC, 두 방송사와 큰 차이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에 박수만 쳐주고 온 언론사 보도·편집국장들

박근혜 대통령의 온갖 기자회견·간담회와 관련해 같은 행보를 보였던 지상파3사 뉴스라는 점에서 놀랄 필요는 없다. 다만, 한 가지 주목해야할 점은 이날 초청된 이들이 바로 언론사에서 ‘직접적’으로 보도에 관여하고 있는 보도국장 및 편집국장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소통하겠다’고 이야기했지만 그 알맹이는 불통 그 자체였다. 4·13총선은 박근혜 정부의 독단적 정국운영에 대한 심판으로 보는 게 맞다. 하지만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비판여론이 큰 여러 가지 정책들을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기고 그만둬야 하는데, 너무 할 일을 못하고 막혔다며, 임기를 마치면 엄청난 한이 남을 것 같다”, “일자리 창출 법안 등과 관련해 대통령이 몇 년 간 호소하면 ‘그래 해봐라. 그리고 책임져 봐라’라고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총선참패에 대한 오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섭섭함도 나타냈다”라는 수식을 붙여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지상파 3사 4월 26일 뉴스

KBS 리포트에 따르면, 이날 참석한 언론사 보도·편집국장들은 포도주스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라는 건배와 함께 오찬을 즐겼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에 박수를 쳐주는 장면들이 KBS와 MBC 보도를 통해 그대로 노출됐다. 해당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언론사 기자들이 ‘고까워’하던 김영란법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부정적으로 발언하니 이 또한 얼마나 기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지상파3사는 앞서 본 리포트 그대로 비판 없는 뉴스로 청와대 오찬에 화답했다. 그야말로 청와대의 청와대에 의한 청와대를 위한 보도라고 해도 무방해보일 정도의 앵무새 뉴스였다. 과연, 부정청탁을 방지하기 위한 ‘김영란법’과 경제활성화가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이날 언론사 보도·편집국장 간담회 그리고 당일 지상파 3사 보도는 그야말로 언론의 망가짐 정도를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총선에서 심판받은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박수만 치다 온 꼴이지 않나. 그런 수뇌부들이 있는 보도국, 지상파 뉴스가 앞으로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했다. 언론사 보도·편집국장님들은 누구를 위해 축배를 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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