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패널들과 원탁에 둘러앉아 경제살리기, 국민통합, 리더십에 대해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눕니다.”(SBS <대통령과의 원탁대화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소개 홈페이지 중)

방영 이틀 전에야 전격 방송이 예고된 SBS <대통령과의 원탁대화>. SBS측은 어떤 대표성을 지닌 것인지 알 수 없는 패널 4명의 명단만을 내놓은 채, 진행방식에 대해 공개하지 않은 채 그저 ‘대화’를 나누겠다고 했다. 시청자 의견 게시판도 자기 질문만 올릴 수 있도록 하고, 질문 목록은 공개하지 않았다.

▲ SBS 홈페이지 <대통령과의 원탁 대화-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비밀주의 혹은 신비주의로 나선 이날 방송, 대체 어떻게 ‘대화’를 진행할 것인지 궁금해서 보게 됐건만, 방송 내내 ‘대화’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마치 정부의 생각을 선전하고 홍보하는 설명회 시간 같기도 하고. 뭐랄까. TV토론이 아니라 대통령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신년 인터뷰’나 ‘신년 대담’ 쯤으로 간주해야 하지 않을지.

사회를 맡은 SBS 논설위원 출신의 김형민 전 SBS앵커는 이 패널들이 어떻게 선정됐는지, 방청객들은 어떻게 모셔온 것인지 일언반구 설명도 없이, 대뜸 대통령의 설 연휴를 궁금해하며 이날 방송을 시작했다.

사회자는 ‘시간부족’을 내세우며 반박질문을 던지는 패널들에게 ‘한 가지씩만 물어보라’고 채근했다. 패널들은 한두 개 질문을 짤막하게 던졌고, 이명박 대통령은 장황하고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주장을 펴갔다.

대통령은 자신의 입장과 반대되는 패널 질문에는 ‘일방적’이라거나 ‘오해가 있다’는 말을 붙였다. 그는 자신의 교육정책에 찬성하는 한 패널에게는 ‘정부정책에 앞장서달라’고 당부하기도 했고, 나서서 찬성 패널에게 발언기회를 주기까지 했다.

이 대통령은 거침없이 북한 탓, 세계경제위기 탓, 야당 탓, 거리시위문화 탓, 폭력조직 탓 등등 수많은 환경변수 때문에 어려운 것이라고 말하면서 국민들에게 ‘믿어달라’, ‘힘내자’며 고집스럽게 희망을 여러 차례 강권(?)하는 내용이 계속됐다.

그렇게 경제위기와 국민통합 관련, 길고긴 ‘인터뷰’가 마무리되자, 사회자는 보물단지처럼 감춰둔 시청자의견 몇개를 소개하더니 “대통령이 일일이 답하기 어렵겠다”면서 “게시판 의견들을 비서진에게 전하겠다”고 말한다. 따져보면 인터넷 게시판은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있을 텐데, 굳이 SBS 홈페이지를 통해 전달할 필요가 있을는지.

사회자는 마지막으로 패널들에게 1분씩 시간을 주며 한마디를 부탁했고, 최종 마무리 발언은 시간제한을 두지 않은 채 이명박 대통령에게 돌렸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해 ‘정부는 나름대로 준비하겠다’, ‘용기가지고 극복하자’ 등이 포함된 연설이 5분도 넘게 이어졌다.

원탁을 둘러싸고 앉은 방청객들은 방송내내 조용히 앉아있기만 했고, 프로그램이 끝나자 박수를 쳤다.

과연 SBS가 원한 ‘국민과의 소통’은 대체 어떤 방식이었을까. 철저한 비밀주의와 통제 속에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SBS <대통령과의 원탁대화-어떻게 생각하십니까>는, 흡사 ‘대통령 라디오연설의 TV판’이라 봐도 큰 무리가 없을 법하다.

이날 대통령은 ‘지금은 어느 누구도 방송을 장악할 수 없다’고 강조했지만, 이날 방송을 봐서는 SBS가 국정홍보를 맡고 있는 <KTV>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 혹은 <조선일보> 등 일부 신문 지면에 등장하는 한나라당 대표의 ‘특집 대담’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꼼꼼히 TV를 뚫어져라 봤지만 도대체 모르겠다. 한나라당이 2월 들어 다시 통과를 시도할 방송법 개정안이 담고 있는 조중동뉴스-재벌방송의 미래를 미리 본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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