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군인이 자비로 총이나 장비를 사야 한다면 그 나라의 국방이 제대로 될 리는 없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그럴 일이 없다. 한 해 국방예산이 40조원이 넘는다. 어마어마한 돈이고, 자주 방산비리 보도가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만 그 돈이 아깝지 않다.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데 쓰이는 돈이니 그렇다.

군대가 국경을 지킨다면 후방의 시민을 안전을 지키는 것은 경찰과 소방관이다. 그 중에서도 재난과 위험에서 직접적으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몸을 내던지는 이들은 소방관뿐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 소방관들에 의해 목숨을 건진 사람들에게 소방관은 말 그대로 영웅이고, 슈퍼맨이 아닐 수 없다.

SBS 스페셜 <슈퍼맨의 비애 - 소방관의 SOS> 편

그런데 그 슈퍼맨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심지어 자살까지 한다. 한 해 자살로 잃는 소방관의 숫자는 순직의 경우를 몇 배나 훌쩍 넘기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소방관의 자살은 동료 소방관들에게 가장 큰 정신적 트라우마를 남기는 악순환이 되고 있다.

눈만 뜨면 소방관들이 접하는 일들이라는 것이 죄다 험한 것들뿐이다. 소방관 본연의 업무인 화재현장은 물론이고 구조와 구급 상황이라는 것이 육체적인 위험은 물론이거니와 정신적으로 무거운 충격을 줄 수밖에는 없다. 게다가 안전장비를 스스로 사서 써야 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들은 점점 누구를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구원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24일 방영된 SBS 스페셜 <슈퍼맨의 비애- 소방관의 SOS>는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2년 전 세월호 참사를 겪은 후 대한민국은 안전에 대해서 정말 나아진 점이 없었다. 다른 것보다 모든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야 할 구조 최일선의 소방관들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심각하게 병들어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고, 이 심각한 문제를 방관만 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SBS 스페셜 <슈퍼맨의 비애 - 소방관의 SOS> 편

SBS 스페셜에 따르면 10년 넘게 논의되던 소방병원 설립 계획은 2015년 취소가 되었고, 소방관 안전관리 예산도 삭감되었다. 그 결과 소방관 1인당 배당되는 정신건강을 위한 예산은 고작 7천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화재진압이나 구조를 하다가 소방관 자신이 다치거나 목숨이 위태롭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임무 중에 다친 소방관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해줄 병원 하나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119소방안전복지사업단 단장 최인창의 말은 대단히 무거웠다. “소방관 제복의 의미를 제발 한 번만 되새겨 달라. 그것은 정부와 우리가 준 수의입니다. 수의” 하긴 그렇다. 소방관의 제복을 입은 이상 죽음을 각오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니 소방관의 제복을 수의라고 표현하는 것이 과장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만큼 소방관들의 각오와 현실이 죽음과 동행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정일랑은 모른 채 오늘도 열심히 119를 불러댄다. 행여나 늦으면 소방관들에게 행악을 부린다. 그 늦은 이유가 골목길에 불법주차된 차량 때문이고, 그 차 중에는 내 것도 있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치 않다. 또한 비워둔 집에서 화재가 일어나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고 온갖 욕설을 해댄다. 모세의 기적 따위 내가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면 안중에도 없다.

SBS 스페셜 <슈퍼맨의 비애 - 소방관의 SOS> 편

세월호 참사 때에도 해경이 막지 않았다면 119 구조대원들은 가라앉는 세월호를 그냥 바라만 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구조경험이 일천한 해경과 달리 119에게 구조는 일상의 업무이기 때문에 분명 다른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그 또 다른 결과 중에는 구조 중에 119대원들의 희생도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119는 그렇기 때문이다.

그런 소방관이 안전장비를 사비로 구입해야 하고, 화재현장에서 다쳐도 치료해줄 병원이 없다. 몸만 다치는 것이 아니다. 반복되는 위험 속에 소방관들은 정신적으로도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밖에는 없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안전해야 한다. 군인도, 경찰관도 마찬가지다. 소방관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소방관은 절대 안전하지 못하다. 그것은 곧 대한민국이 안전하지 않다는 증거이자 심각한 허점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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