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에서 ‘제3정당’은 오래된 도전이다.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통해 양당 중심의 질서를 극복해보려는 시도는 거의 언제나 있어왔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은 자민련에 이은 제3정당 실험의 성과로 평가할만하다. 그런데 이 성공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후에 한국 정치에 미칠 영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평가가 오가며 다소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국민의당의 성공은 전통적인 의미의 ‘제3당론’에 호남이라는 지역적 기반이 얹히면서 가능했다. 이 때문에 국민의당의 성공에 대한 수도권 중심의 평가와 호남 중심의 평가가 엇갈린다. 수도권 중심으로 사고하는 인사들은 대개 국민의당의 성공을 놀라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인데, 호남 중심의 평가에는 오히려 문재인 전 대표가 아직도 대권주자로서의 지위를 놓치지 않는 것에 의아해하는 기류가 있다.

이런 상황 자체가 보여주는 것은 두 가지다. 먼저 볼 것은 호남지역에서 국민의당이 성공을 거둔 것은 언론을 통해 표현되는 이른바 ‘반문정서’에 힘입은 바가 분명히 있다는 거다. 이른바 ‘반문정서’라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 요인을 통해 여론화됐다.

첫째는 참여정부가 이른바 ‘호남 토호 세력’과의 정치적 분리를 감행하면서 만들어진 균열이 작용한 측면이다. 둘째는 이런 균열에도 불구하고 호남 지역의 유권자들이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전 대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였음에도 결국 선거에 패배했다는 경험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셋째는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한 이른바 ‘오피니언 리더’들의 악선동(?)이 일부 먹혀들어간 측면이다. 여기서 악선동이란 ‘친노패권주의’와 같은 사실상 문재인 전 대표의 퇴진을 요구할 뿐인 불분명한 정치 슬로건과 ‘어릴 적에 호남 사람에게 사기를 당해 악감정이 있다더라’는 식의 전형적인 지역주의 등을 말한다. 이 문제는 여러 기회를 통해 조명되었으니 이 글에서 재차 다룰 필요는 없을 듯하다.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마포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음으로,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성공한 사실이 보여주는 두 번째 측면은 이들이 일반적인 제3정당론의 분명한 수혜자가 됐다는 점이다. 이는 국민의당이 지지율의 지역별 추이와 정당투표 결과 등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2002년 이후 제3정당론은 당장의 상황을 바꾸기 위해 지역구에서는 기득권에 속하는 양당의 후보를 지지하더라도 정당투표는 앞으로 ‘키우고 싶은’ 정당에 행사하는 것으로 현실에서 구현됐다.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 이후 이러한 방식의 투표행위는 진보정당을 향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 10명이 탄생한 2004년 총선의 경우, 직전까지 제3당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던 자유민주연합은 지역구에서만 소수의 의원이 생존하고 비례대표의원은 1명도 배출하지 못하는 굴욕을 당했다. 제3정당에 대한 표심이라는 측면만 놓고 보면 10년 사이에 제3정당으로서의 지위가 자민련에서 민주노동당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이후 지역구에서는 정치협상을 통한 후보단일화를 진행하더라도 정당투표에서의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진보정당의 전통적인 선거운동 방식이 됐다. 정의당은 국민의당이 만들어 지기 이전 이런 투표 방식의 수혜를 입기 위한 정치 슬로건을 따로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철수 공동대표가 본격적으로 창당을 밀어 붙이면서 원내 유일의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제3정당론의 수혜를 입기 어려운 조건에 놓이게 됐다. 그 결과가 지역구 2석과 비례대표 4석이라는 애매한 결과이다.

물론 정의당이 얻은 성과를 일방적인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어렵다. 6석이라는 의석 수 자체는 아직까지 진보정치가 정치적 시민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바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보정치의 역사를 맥락적으로 파악할 때 이를 온전히 긍정적인 시각으로만 다룰 수는 없다. 이번 총선의 성과는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진보정치가 단지 현상을 유지했다는 의미 정도에 그치는데다, 앞으로의 밝은 미래를 전망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제3정당론은 근본적으로 일종의 네거티브다. 제3정당이 무엇을 하겠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기득권 양당에 대한 반대가 현실화돼야 한다는 게 더 중요하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모두에 ‘내홍’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 이런 상황은 더 강화됐다. 다시 말하자면, 제3정당론이 일으키는 ‘바람’의 대상은 구시대적 보수세력부터 진보정당까지 모두가 될 수 있다. 즉, 제3정당의 지위는 언제나 정세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이 하겠다는 바를 대중을 어떻게 조직해 이룰 것인지에 대한 계획과 비전이 없는 상태에서 제3정당의 지위를 추구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하다. 정세가 제3정당의 지위를 그 정치 세력으로부터 거둬들이는 순간 진정한 실력이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보정치는 과거 제3정당의 지위를 추구했다. 기득권 양당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으므로 ‘깨끗하고 유능한’ 진보정치를 키워줘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부정부패를 추방하자거나 사회정의를 실현하자는 차원의 슬로건도 여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선거 전략이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이것만을 추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과 같은 슬로건이나 ‘부유세’와 같은 논쟁적 정책은 진보정치의 계급적 기반을 닦기 위한 전략의 일부로 받아들여졌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21일 오전 국회 219호에서 상무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국민의당이 국회에 들어오면서 정의당이 회의실로 사용하던 216호를 당 대표실로 사용하게 되면서 정의당은 부득이하게 회의실을 작은 방으로 옮겨 쓰게 됐다. (연합뉴스)

이제 시간이 지나 진보정치는 제3정당의 지위를 잃었지만, 그것의 효과가 안겨준 기회, 즉 지난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자신이 지향하는 조직적 기반을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다. 정의당이 6석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의석수를 확보했음에도 어떤 실패를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런 맥락 때문이다. 2011년의 통합진보당 창당과 이후 정의당까지 이어져오는 노선의 핵심은 조직적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3당의 지위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이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서 정의당이 그간의 노선을 계속 고수할 것인지, 또 다른 새로운 ‘결단’을 내릴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다.

같은 딜레마는 국민의당에도 찾아올 것이다. 현재로서 국민의당의 조직적 기반은 서두에 서술했듯 지역으로서의 호남이며, 이를 가능케 하는 고리는 ‘정권교체’를 기대해볼 만한 2017년 대통령 선거다. 만약 국민의당이 2017년 대선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면 적어도 무엇을 지향해서 최소한 호남을 기반으로 한 정치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식의 정치적 전망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2017년 대선 이후를 도모할 수 없다. 물론 2017년 이후까지 고려하는 진지한 정치인이 그 안에 있는지부터가 의문시 되고 있다는 점을 먼저 극복해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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