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9년 전, 당시 필자의 가장 큰 고민은 H.O.T와 젝스키스 중 누구를 선택할까였다. H.O.T와 젝키(젝스키스를 줄여서 부르는 말)모두 좋아했지만, 그 당시 분위기는 두 그룹을 모두 좋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H.O.T 팬을 자청하면서 젝스키스를 좋아한다는 것은 H.O.T 오빠들에 대한 엄청난 배신이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필자는 고민 끝에 H.O.T 오빠들을 선택했다. 하지만 젝스키스 오빠들에 향한 애정을 숨길 수 없었던 필자는 용돈을 모아 젝키의 음반을 사고, 문방구에서 젝키 오빠들의 사진을 몰래 사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젝키는 해체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H.O.T도 해체됐다. 그리고 필자도 얼마 지나지 않아 H.O.T나 젝키보다 동갑내기 이성친구에게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H.O.T와 젝키는 어렸을 때 많이 좋아한 오빠들로만 남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H.O.T, 젝키의 노래를 듣기는 하지만, 그들이 남긴 노래가 좋을 뿐 그들에 대한 관심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토.토.가2 – 젝스키스>

하지만 최근 MBC <무한도전>을 통한 젝키의 컴백 소식을 듣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그런데 오랜만에 완전체 젝키 오빠들을 볼 수 있겠다는 벅찬 감동도 잠시, 지난 7일로 계획된 게릴라 콘서트 정보가 사전에 유출되어 예정된 게릴라 콘서트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순간 분노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14일 젝키는 성공적으로 게릴라 콘서트를 성공시켰고, 며칠 뒤 극비리에 진행되었던 젝키의 컴백 과정을 <무한도전>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한때 젝키를 열렬히 좋아했지만 <무한도전-토토가2 젝스키스>(이하 <무한도전-토토가2>)가 방영되기 전 그들의 모습은 필자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사람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젝키 멤버들 중에서 상당수는 꾸준히 연예계 활동을 이어갔지만, ‘왕년 젝키 멤버’ 이상의 관심을 가지진 않았다. 그런데 젝키가 컴백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완전히 가라앉았다 싶었던 젝키를 향한 팬심이 콸콸 쏟아진다. <무한도전-토토가2>를 챙겨보는 것에 모자라, 사전 스포일러 유출이지만 지난 14일 열렸던 게릴라 콘서트 직캠영상, 거기에 젝키가 한창 왕성하게 활동했던 시기의 영상까지 찾아서 본다. 매일매일 젝키 노래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기본이다.

재작년 열린 <무한도전-토토가> 방영 이후에도 한동안 90년대 히트곡만 듣는 후유증(?)에 시달리긴 했지만, 어렸을 때 진짜 많이 좋아했던 젝스키스가 나오는 <무한도전-토토가2>는 필자에게 더 큰 감흥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건, 필자뿐만 아니라 그 시절 젝키를 사랑했던 모든 소녀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데뷔 20주년을 맞아 이제는 30대가 되어버린 왕년의 소녀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오빠들의 컴백이 참으로 반갑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토.토.가2 – 젝스키스>

<무한도전-토토가> 방영 때도 그런 말이 있었지만, 이번 <무한도전-토토가2 젝스키스>를 두고 ‘추억팔이’로 바라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무한도전-토토가>가 그랬듯이 <무한도전-토토가2>는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 젝키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향수를 건드렸고, 한동안 연예계에서 잊혀진 인물이었던 이재진과 강성훈, 김재덕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게 된다.

은초딩으로 대표되는 예능 이미지가 강했던 은지원은 <무한도전-토토가2>를 통해 예전 소녀팬들이 기억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은각하’ 이미지를 회복했으며, 최근 ‘로봇 연기’의 대가로 사랑받고 있는 장수원은 수줍음으로 대표되는 젝키 활동 당시에는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푸근한 웃음을 안겨준다. 하지만 <무한도전-토토가2>의 최대 수혜자는 매순간 돌발 상황을 만들어내며 유재석까지 당황시키는 희대의 예능 캐릭터 이재진이라는 평이다.

십수 년전 목 놓아 오직 젝키 오빠들만 사랑하겠다는 팬들의 상당수가 결혼을 해 엄마가 되거나 혹은 젝키 아닌 다른 이성에 수도 없이 눈을 돌리며 살아온 지금, 젝키가 <무한도전-토토가2>를 통해 복귀의 신호탄을 쏜들 과연 예전에 젝키가 보여줬던 파급력을 보여줄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까지 젝키를 사랑했던 팬들, 혹은 그 당시 젝키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지 않거나 다른 아이돌 그룹을 좋아했어도 젝키의 컴백을 기뻐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무한도전>을 통한 젝키의 컴백은 큰 의미가 있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토.토.가2 – 젝스키스>

젝키가 다시 돌아온다고 한들, 이미 30줄에 들어선 필자에게 그들은 H.O.T와 더불어 어렸을 때 많이 좋아한 오빠들일뿐이다. 젝키 컴백 소식 이후 매일매일 젝키의 노래를 듣고 영상을 찾아서 본다고 한들 젝키에게 느끼는 감정은 딱 거기까지다. 예전 같았으면 감히 우리 오빠들을 이상한(?) 행사에 막 돌린다고 엄청난 분노를 뿜어냈겠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다면서 통증을 호소하는 오빠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나도 그만큼 나이를 먹었음을 돌이켜보게 된다. 10대 때 오빠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30대에 나보다 더 나이가 든 오빠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젝키의 컴백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 휘몰아치는 것은 왜일까? 다시 돌아온 오빠들을 향한 애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가족 아닌 누군가를 아무런 이해타산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열렬히 좋아할 수 있었던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의 발로가 16년 만에 다시 돌아온 젝스키스 랜드로 이끄는 것 같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그들이 다시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눈물 나게 고맙다.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했던 지난날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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