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셋째 주 일요일 예능에는 작은 변화가 있었다. <런닝맨>이 시간대를 옮겼고, 그 자리는 SBS 신규 예능인 <판타스틱 듀오>가 대신했다. 유재석의 <런닝맨>으로도 극복하지 못했던 <복면가왕>을 신규 프로그램으로 이겨보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런닝맨>을 보호하겠다는 것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어쨌든 <런닝맨>은 이제부터는 <1박2일> 그리고 <진짜 사나이>와 경쟁을 해야만 한다. 우선 주목한 것은 첫 선을 보인 <판타스틱 듀오>다.

<판타스틱 듀오> 라인업을 보면 <복면가왕>에 오래 억눌려(?) 있던 SBS의 절치부심이 확연히 느껴지는 것만은 분명했다. 일단 <판타스틱 듀오>의 놀라운 점은 바로 이선희를 섭외했다는 점이다. MBC가 자랑하는 <나는 가수다>, <복면가왕> 어디에도 출연한 적 없는 이선희를 섭외한 것은 <신의 목소리>의 박정현, <판타스틱 듀오>의 김범수를 섭외한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SBS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판타스틱 듀오>

정작 이선희는 경쟁하는 프로그램인 줄 몰랐다고 말했지만 어쨌든 이선희가 후배 가수들과 경쟁하는 무대에 선 것은 대단한 파격이라 할 것이다. <나가수>에서 그토록 만나보고 싶었던 이선희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복면가왕>에 맞춰져 있던 일요예능의 시간표를 바꿀 정도의 강력한 유혹인 것도 사실이다.

이선희가 어느 정도 올드팬들을 위한 최강의 섭외였다면 그에 비견할 만한 젊은 층을 위한 준비도 결코 만만치 않다. 빅뱅의 태양 역시 음악예능은 물론 예능 자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얼굴이다. <판타스틱 듀오>의 태양은 지난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지 드래곤과 함께 나왔던 때와 다른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판타스틱 듀오>의 매력은 단지 라인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가수와 일반인과의 듀엣 무대로 지난 승자에 도전하는 경쟁 시스템이지만, 그 승부는 절대 이 예능의 핵심이 아니다. <판타스틱 듀오>에 주목해야 할 진짜 관전 포인트는 이 예능에 출연하는 가수 개인과 다른 가수들과의 대단히 자연스러운 콜라보 무대들이다.

SBS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판타스틱 듀오>

실제로 태양은 등장해서 자신의 가요대상 수상곡인 <눈, 코, 입>을 김범수, 임창정과 함께 즉석에서 콜라보 무대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임창정의 <그때 또 다시>를 짧게나마 둘이서 부르는 모습까지 이어졌다. 그것이 주목적이 아니어서 완곡을 부르지는 않았지만 음악예능이 추구해야 할 최선의 모습일지도 모르는 장면들이었다.

그런가 하면 <판타스틱 듀오>에 일반인들이 응모하게 되는 스마트폰 앱 에브리싱을 통한 가수들과의 듀엣영상도 기대 이상의 재미를 보였다. 또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대한민국에는 어떻게 이렇게도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보고도 믿지 못할 일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판타스틱 듀오> 정규편성 첫 방송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부분에 공개한 이선희와 송창식의 콜라보 무대일 것이다. 그것도 <판타스틱 듀오>의 프로그램 특성을 살려 이선희는 방송무대에서, 송창식은 영상으로 함께한 것도 아쉬움과 함께 아련한 느낌을 더 살리는 센스 있는 기획이었다.

SBS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판타스틱 듀오>

팝가수 나탈리 콜이 고인이 된 아버지 냇킹 콜의 노래를 영상을 통해 함께했던 무대를 떠올리게 해서 더욱 아련했는데, 송창식의 노래 <우리는>을 함께 부르는 이선희의 모습은 이미 가요계 대선배에서 순간 그 또한 선배들을 동경했던 어린 시절의 감성으로 돌아가는 매우 감성적이고 감동 그 자체인 무대였다.

이미 일 년 이상 인기를 끌며 자리를 굳힌 <복면가왕>과 싸워야 하는 <판타스틱 듀오>의 길을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무대가 있다면 후발주자로서의 불리함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판타스틱 듀오>가 꼭 <복면가왕>과 동시간 대에 경쟁을 했어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과 아쉬움은 있다. 적자생존이 아닌 각자생존은 어땠을까?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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