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벌한 경제 위기 속에서 수많은 직장인들이 ‘생존의 위기’를 체감하고 있는 이때, 앉은 자리에서 5억여원을 번 이들이 있다. 바로 <한국경제> 신문사와 한국지속경영평가원이라는 곳이다.

한국경제 ‘상주고 돈받기’ 무려 18건이라는 기사를 <미디어스> 독자들께서는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참가비가 최고 1650만원(부가세 포함)이었던 ‘존경받는 대한민국CEO대상’에 이어 ‘언론사의 돈받고 상주기’ 관행을 취재하면서 우연히 알게 된 ‘한국경제 알림·이벤트 사이트’(http://event.hankyung.com/)는 업계의 ‘저인망 쌍끌이 상매매’의 전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 2009 고객감동경영대상 얼음조각상 ⓒ곽상아
이곳에 자신들이 주최하고 있는 시상/대회 등에 대해 홍보(?)를 해놓았는데, △2009 고객감동경영대상 △2009 기술혁신경영대상 △2008 사회공헌기업대상 △2008 대한민국 인재경영대상 △2008 대한민국 가치창조경영대상 △2008 서비스경영대상 등 모두 18개. 이름조차 헷갈릴 지경이었다. 홍보자료에는 ‘홍보비’ 조로 수천만원을 요구하는 내용도 실려 있었다. ‘인재’ ‘가치창조’ ‘기술혁신’ ‘고객감동’ 등 온갖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놓은 그 상들은 한마디로 언론사에게 ‘생계형 수상대회’였던 셈이다.

그 기사가 나간 후 한국경제, 아니 한경닷컴은 난리가 났다고 한다. 홍보자료 ‘관리 소홀’로 자신들의 치부를 스스로 알려준 모양새가 됐으니 그럴 수밖에. 이들은 그후 자신들의 시상대회 홍보 자료에서 ‘홍보비’ 부분만 쏙 뺐다.

▲ 16일 <한국경제>는 총8면의 특별판을 발행해‘2009 고객감동경영대상’ 수상자들에 대해 자세히 ‘홍보’해줬다.
하지만 뒤늦게 그 부분을 삭제했다고 해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는 법. 당시 ‘돈받고 상주기’ 상으로 밝혀진 18건의 상중 ‘2009 고객감동경영대상’ ‘2009 대한민국 기술혁신경영대상’ ‘제7회 신품질상’ 등 3개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16일은 3개 대회중 하나였던 ‘2009 고객감동경영대상’의 시상식이 있는 날. 올해로 3회째인 이 상은 작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홍보비가 2500만원이다. 최종평가에 선정된 기업들에 대해 노골적으로 “2009년 1월 12일까지 입금”하라고 돼있었다.

▲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화환들. ⓒ곽상아
오전 11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의 사파이어볼룸. 입구에서부터 AIG생명 사장 이상휘, 농협고양유통센터 사장 이상욱 등의 이름이 써진 화환이 화려하게 장식돼있었다. 이들은 수상자들을 축하해주기 위해 화한을 보낸 사람들인가? 아뿔싸. 아니다. 이들은 바로 이날 상을 탄 기업·기관의 대표들이다. 자신들이 돈 내고 받은 상을 ‘축하’한다며, 스스로 화환을 보내다니… B급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인가. 시상식장에 들어서니 화려한 샹들리에 조명 아래 검은색 정장을 빼입은 200여명이 앉아있었다.

“성공적인 고객감동 문화 정착과 고객감동 경영혁신을 통해 국가 및 기업 경쟁력 제고에 일익을 담당하고 국민 삶의 질적 향상 및 국민행복을 추구하는 데 기여한 기업을 높이 기리고자” 제정됐다는 고객감동경영대상.

▲ 홍보비 2500만원의 ‘2009 고객감동경영대상’ 수상자들 ⓒ곽상아
수상자들은 총 21개의 기업·기관 또는 개인이다. 이들 모두가 2500만원을 냈는지, 협상을 통해 가격을 낮추었는지 모르겠지만 홍보자료에 나온 금액만으로 추정하면 주최측인 한국경제신문사와 한국지속경영평가원은 이 대회로 대략 5억2500만원이라는 돈을 벌었다. 다음은 화려한 수상자들의 면면.

삼성물산(주), SK에너지(주), SK텔레콤(주), 우리은행(주), 서울특별시, (주)서울도시가스, 웅진코웨이(주), 현대증권(주), 대구은행(주), KB카드, 이건창호시스템(주), AIG생명, 농협고양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 G마켓, (주)호텔롯데, 서울시농수산물공사, 신용보증기금, 부산도시공사, (주)한국인터넷서비스, 국토해양부, 인하대학교 안광호 교수

국토해양부가 받은 상패 ⓒ곽상아

그런데, 어라? 국토해양부도 고객감동경영대상을 받았단다. 상패를 보니 ‘국민 삶의 질적 향상과 행복을 위해 국가의 환경과 서비스를 세계일류 수준으로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바, 이를 높이 평가한다’고 돼있다.

국토해양부 권도엽 제1차관은 수상소감에서 “주택, 도시, 기업, 도로, 철도, 수자원에 이르기까지 국민경제와 생활에 직결되는 서비스를 담당하는 우리는 지난해 수요자의 입장에서 정책을 집행하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이 노력을 평가받은 것 같다”며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해달라는 격려로 받아들인다. 지금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녹색성장이라는 확실한 미래발전전략을 추구하는 확실한 계기로 만들자”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 부처에게 ‘고객’이란 국민일 터인데, 정부는 21세기 삽질 프로젝트 시리즈인 ‘4대강 정비사업’ ‘경인운하’로 국민들이 감동받았다고 믿는 것일까.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고객감동경영‘대상’ 하위에는 최우수상, 우수상 등으로 나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무려 대상만 해서 13곳이다. 삼성물산(주), SK에너지(주), SK텔레콤(주), 우리은행(주), 서울특별시는 ‘종합대상’이라고 한다. 13곳이 대상이고, 5곳이 종합대상이라…. 초등학생 답안지에 찍힌 담임선생님의 “참 잘했어요” 도장의 새로운 버전인가. 하기야, 애당초 돈 벌려고 개최한 상에서 ‘상식’을 기대하는 게 더 이상하겠다.

이날 시상식에는 수많은 취재진(?)들이 몰렸다. 다만 언론사 기자가 아닌, 상 받은 기업·기관쪽에서 나온 직원들이다. KB카드, NBS(Nonghyup Broadcasting System) 등의 로고가 적힌 옷을 입은 직원들은 열심히 ‘사장님’을 쫓아다니며 사진 찍기 바빴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한상린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고객 ‘만족’을 넘어 고객 ‘감동’을 실천하고 경영혁신을 추구하는, 고개감동경영대상이 3번째를 맞이했다. 단순히 우수기업 표창이 아니라 기업이 나아갈 이정표를 제시하는 매우 의미있는 행사다. 국내 수많은 기업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기 바란다”고 밝혔고, 신상민 한국경제 사장은 “오늘 수상한 기업들은 그동안 지속적인 고객감동 경영을 통해 소비자의 행복을 높이고 우리나라 경제의 발전에도 큰 도움을 준 이들이다. 이런 사례를 널리 퍼지도록 해서 국민경제가 한단계 레벨업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 이날 시상식에는 취재진들이 많았으나 ‘언론사 기자’가 아닌, 수상 기업·기관의 직원들이었다. ⓒ곽상아

▲ 수상기업 또는 기관 직원들이 모여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곽상아
이들의 공허한 심사평과 인사말 이후, ‘신성한’ 상 전달식은 이내 끝이 났다. 그리고 이들은 코스 요리의 호화스러운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관행’이라는, 그들의 항변을 도대체 어디까지 인정해줘야 하는 것일까. 시상대회를 통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언론사와 돈으로 명예를 사는 기업이 벌이는 호화 파티 현장은 씁쓸함만을 남길 뿐이다.

▲ 시상식 후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 ⓒ곽상아
한국경제의 ‘돈받고 상주는’ 시상대회는 올해도 계속될 것이다. “기술혁신의 중요성을 제고하고, 기업 및 국가의 글로벌경쟁력 확보에 기여하고자 제정됐다”는 ‘2009 대한민국 기술혁신경영대상’ 시상식이 2월 5일(목요일)로 예정돼있다. 이 상은 대기업의 경우 2000만원, 중소기업은 1200만원을 1월9일까지 입금해야 했다.

“미국 말콤볼드리지 국가품질상(MBNQA), 유럽 품질상(EEA) 등과 같이 우량경영시스템 실천과 혁신주도 경영문화 창출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자 마련됐다”는 제7회 신품질상 시상식도 2009년 5월 중순, 제7회 신품질 컨벤션이 개최될 때 함께 열린다. 이 상은 900만원(종합대상), 500만원(혁신대상·사회적 책임부문 대상), 300만원(글로벌 시스템 대상) 을 내야 하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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