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서울시민입니다. 출퇴근길과 취재 다닐 때 지하철을 이용합니다. 약속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비록 콩나물 신세가 되더라도 지하철을 타는 게 가장 낫습니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면 지하철에서 국가정보원 신고(대공상담) 안내방송 자주 듣습니다. ‘그래, 국정원도 일해야지. 공기업도 협조해야지’ 생각합니다.

바로 이 광고 말이죠. “승객 여러분, 안전하고 행복한 대한민국, 특튼한 안보가 뒷받침 합니다. 국가정보원에서는 간첩·이적사범·국제범죄·테러·산업스파이·사이버안보위협신고·상담을 위한 111콜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신고·상담전화는 국번없이 111번입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국정원 신고 안내방송 멘트. 그런데 오타가 있다! 국정원이 알기 전에 수정하시길.

그런데 하루는 취재 때문에 몇 차례 환승을 했는데 그때마다 국정원 방송을 들었습니다. 이어폰을 뚫고 들어오는 방송을 듣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메트로(1~4호선),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 코레일(1·3·4호선)은 하루에 몇 번이나 이 방송을 내보낼까? 도대체 나는 ‘국정원’ ‘간첩신고는 111’이라는 말을 하루에 몇번이나 들을까? 국정원은 이 방송에 돈을 얼마나 쏟아부을까?

그래서 3월 각 기관에 정보공개청구를 해봤습니다. 3월 말에서 4월 초까지 해서 모두 자료가 도착했습니다. 답변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일단 기관별로 약간 차이는 있는데 국정원 방송 시간은 25초 안팎입니다. 서울메트로는 27초, 코레일은 22초, 서울도시철도공사는 25초라고 설명합니다. 국정원의 간첩신고 안내방송을 시작한 시기는 정확치 않습니다. “2000년 전”이라고 하는데 “최초 문서를 확인할 수 없어 언제부터 방송을 시작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호선별로 따져보겠습니다. 서울메트로와 코레일이 공동운영하는 1호선 열차에서는 평일 기준 하루 1981회 국정원 방송이 흘러나옵니다. 서울메트로는 1호선 열차를 91회 편성하는데 회당 한차례 국정원 방송을 편성하고, 코레일은 열차를 630회 편성하는데 회당 3차례 방송합니다. 내선순환(시계방향)과 외선순환(시계반대방향)으로 유명(?)한 2호선에서는 국정원 방송이 하루 평균 542회(성수~신설동/신도림~까치산 지선 제외) 나옵니다.

일산에서 수서까지 이어지는 3호선에서는 하루 566회 국정원 방송이 나옵니다. 서울메트로와 코레일은 3호선에 차량을 298회, 268회 편성하는데 차량당 한 차례씩 방송을 내보낸다고 합니다. 당고개와 오이도를 오가는 4호선에서 국정원 방송은 하루 874회 나옵니다. 서울메트로는 열차를 326회 편성하고 열차당 한번씩 방송을 내보내고, 코레일은 열차를 274회 편성하고 회당 방송을 두 번 내보냅니다.

다음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5~8호선입니다. 서울도철은 모두 운행열차 당 1회씩만 방송을 내보낸다고 했습니다. 5호선 465회, 6호선은 356회, 7호선은 421회, 8호선은 306회입니다.

마지막으로 코레일이 운영하는 경의선, 경춘선입니다. 경의선은 1회 운행 중 2회 방송하고, 경춘선은 1회 운행 중 1회 방송합니다. 코레일이 경의선에 하루 230회 차량을 편성하니 국정원 방송은 하루 460회 나옵니다. 경춘선에서는 국정원 방송이 115회 나옵니다.

▲국가정보원의 111 신고 동영상 갈무리

정리하자면 서울지하철 1~8호선, 경의선, 경춘선에서는 하루 6086회나 국정원 간첩신고 방송이 흘러나옵니다. 서울 시내를 순환하는 2호선의 경우, 국정원 방송이 매년 19만여회 정도 편성됩니다. 2000년 19만5355회였고, 2015년은 18만8062회입니다. 2호선 일부 지선과 9호선, 분당선을 더하면 횟수는 더 많아지겠죠. 보수적으로 추정해도 연간 백만 회 이상일 겁니다.

국정원이 이렇게도 안보의식을 고취시키는 데에 든 비용은 얼마일까요? 간첩 신고 안내방송을 편성해야 할 법적 근거는 있을까요?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 코레일에 물어보니 “홍보 협조 요청이 와서 하는 것일 뿐이다. 서울시에서 만든 공익광고 것도 내보낸다”라고 합니다. ‘이렇게까지 방송을 내보내주는데 국정원에서 비용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니 한 기관에서는 “국정원이 돈을 줄리 있겠나”라고 합니다.

이밖에도 세 기관에 ‘지하철역 안에 있는 옥외광고 중 국정원에서 수주한 것이 있느냐’고도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서울메트로는 “2010년부터 국정원의 홍보협조 요청에 따라 공사의 공익홍보매체 중 역사 와이드 조명광고 20면을 배정했음. 이후 역사개선 공사 등으로 인해 기 배정된 홍보매체를 철거하여 2016년 4월 현재 14면(사당역 등 11개역) 게시 중”이라고 알려왔습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와 코레일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국정원 광고를 수주한 게 전혀 없다고 합니다.

의문은 풀렸는데, 찜찜합니다. 직원도 예산도 공개돼 있지 않고, 인터넷사이트에서 야당 까기 댓글이나 쓰는 국정원이라서 더 그런가 봅니다. 이런 국정원이 매일 6086번이나 지하철에 무임승차하고, 옥외광고도 공짜로 합니다. 테러방지법이 통과됐으니 횟수가 더 늘겠죠? 스마트폰 볼륨을 높여야겠습니다.

▲1999년 국정원의 안보신고 포스터. 제목은 ‘당신의 안보시력은 얼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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