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털리고, 국회의원이 털리고, 기자들이 털렸습니다.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말이죠.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이 이동통신사에 요청해 받는 ‘통신자료’ 이야기입니다. 전기통신사업자를 포함해 정보통신서비스 사업자는 고객 동의 없이 이용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가입일 또는 해지일 같은 개인정보를 기관에 넘겨줍니다.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군수사기관, 해양경찰청, 관세청, 법무부, 고용노동부, 식품의약품안전처 같은 정보‧수사기관과 사법경찰권이 있는 정부부처가 정보를 요청하는 기관입니다.

법적 근거는 있습니다.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입니다. ‘통신비밀의 보호’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조항은 ‘예외’를 두고 있습니다. “전기통신사업자는 법원,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 정보수사기관의 장이 재판, 수사,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수집을 위하여 다음 각 호의 자료의 열람이나 제출을 요청하면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 이게 바로 정보수사기관과 전기통신사업자가 통신자료를 주고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입니다.

하지만 ‘요청에 따를 수 있다’는 것이 의무를 뜻하지는 않기 때문에 카카오 같은 경우, 통신자료를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카카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카카오는 정부의 통신자료 요청이 법적 근거는 있지만 사업자의 제공이 강제적 의무는 아니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2010헌마439)과 수사기관 요청에 따른 조치라고 해도 자료 제공 범위 등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 없이 인적사항 일체를 제공한 경우에는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고등법원 판결(2011나19012)을 반영하여 현재 통신자료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수사기관에 무작정 들여다보는 것은 아닙니다. 사전‧사후 절차가 정해져 있습니다. 수사기관은 요청 전(극히 예외적인 경우 사후)에 사업자에게 요청사유, 해당 이용자와의 연관성, 필요한 자료의 범위를 기재한 ‘자료제공요청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업자는 일 년에 두 차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게 통신자료 제공 건수,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건수, 통신제한조치 협조 건수 등을 보고해야 합니다. 이것 또한 전기통신사업법에 있는 내용입니다.

▲미래부가 2015년 10월 29일에 공개한 ‘2015년 상반기 통신비밀자료 제공 현황’ 중 통신자료 제공 현황 자료

미래부는 일 년에 두 번,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서 통신비밀자료 제공 현황을 공개합니다. 아래 표를 보죠. 미래부에 따르면, 2015년 상반기에만 수사기관이 뒤진 전화번호가 무려 590만1664개입니다. 단순하게 추정하면 2015년 한해 수사기관은 1200만개(중복 포함)에 가까운 전화번호의 가입자, 이름, 주민번호, 주소 등을 수집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전기통신사업자는 수사기관에 민감한 정보를 넘기면서 고객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습니다. “수사에 방해가 된다”는 설명입니다. 애플처럼 고객의 개인정보를 지키라고 주문할 수도 없는 답변입니다. 제공해야 할 의무도 없는데 주고, 이마저도 고객에게 알려주지 않는 게 한국의 전기통신사업자, 이동통신사의 고객사랑 수준입니다.

전근대적인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강력하고, ‘빨갱이’라는 말이 들리면 자다가 윗몸 일으키기를 할 시민들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치죠. 아니, 국가로부터 감시당하지 않을 권리를 획득하지 못한 후진국이기 때문이라고 자조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수사기관이 왜 나에게 관심이 있는지, 이용자들은 전혀 알 수 없는 것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또한 통신자료가 털렸는데, 노동운동을 하는 대학동기와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 것 때문인가 추정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동통신사는 ‘자료제공요청서’를 공개하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보수언론인 중앙일보가 <통신자료, 마구잡이로 들여다봐선 안 된다>는 사설을 썼을까요. 정보인권단체는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하는 정부부처는 아예 손을 놓고 있습니다. 고등법원 판사 출신 인사가 위원장으로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말입니다.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이라고 할 수 있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은 바로 방통위 소관입니다.

▲중앙일보 2016년 3월 30일자 사설

그런데 31일 방통위 전체회의에서는 정반대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방통위 관료 출신인 이기주 상임위원은 “통신자료 업무는 미래부 소관이지 방통위 소관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반면 고삼석 상임위원은 “방통위가 개입할 수 있는 업무”라며 수사기관과 이동통신사가 무분별하게 통신자료를 주고받는 것에 방통위가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최성준 위원장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방통위가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지 확인하자”는 정도로 회의를 끝냈습니다.

정보통신망법을 살펴보죠. 망법 24조2에 따르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제3자에게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제공하려면 이용자에게 정보를 제공받는 자의 성명, 이용목적, 항목 등에 대해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또 27조2에 따르면, 사업자는 이를 이용자가 ‘언제든지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합니다. 30조 ‘이용자의 권리’ 조항도 같은 내용입니다. 지난해 방통위가 정보통신망법에 근거해 이동통신사에게 ‘통신자료 제공 현황을 가입자가 온라인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라’고 했죠. 사업자가 이용자에게 이를 알려주지 않는다면 방통위가 행정지도를 해야 합니다.

방통위가 정보통신망법과 시행령을 촘촘하게 다시 설계해야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법인폰 문제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수사기관이 이동통신사에 010-△△△△-△△△△의 통신자료를 요청하고, 이 번호가 법인 명의로 가입된 것이라면 이통사는 기관에 ‘공개된 법인 자료’를 건넵니다. 정보통신망법이 정의한 ‘개인정보’(=생존하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서 성명·주민등록번호 등에 의하여 특정한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부호·문자·음성·음향 및 영상 등의 정보)가 아닌 사실상 정보값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동통신사들은 법인폰 실제 이용자에게 통신자료 제공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습니다.

결국 법인폰 이용자는 자신이 수사기관의 수사대상이 됐는지 확인할 길조차 없는 셈입니다. 이동전화 가입자의 5% 가량이 법인 명의인 상황인데도 말이죠.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은 최근 얼마나 많은 조합원이 ‘사찰’ 당했는지 실태조사를 하려고 했는데, 큰 언론사 기자와 PD는 법인폰을 사용하기 때문에 조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방통위 엄열 개인정보보호윤리과장은 “망법상 이통사가 사실 확인을 안 해줄 이유가 없다. 법인이라도 자연인(살아있는 개인)에 준해서 실제 이용자의 열람 요청에 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두서없이 정리하고, 예의 없게 물어봅니다. 최성준 위원장님, 이런데도 방통위 업무가 아닌가요? 아니면 방통위가 떠맡고 싶지 않은 건가요? 이동통신사에 ‘수사기관이 제출한 자료제공요청서를 가입자에게 공개하라’고 주문하는 게 껄끄러운 행정행위라고 생각하나요? 정보통신망법의 공백을 해결할 의지가 있긴 있나요?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을 해소할 생각은 없는 건가요? 미래부는 “방통위 소관”이라며 떠넘기기만 하는데 시민들은 어디에 민원을 넣어야 하나요? 그럼 다음 회의 때 뵙겠습니다. 그 전에 위원장도 한 번 조회해보세요. 주민번호와 집주소가 털렸는지.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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