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신이 났다. 동시간대 1위를 고수하며 연일 최고시청률 기록을 새롭게 써 나가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 덕이다. 다시 한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며 연예 프로그램, 뉴스까지 동원해 <태양의 후예>의 대단함을 강조하기에 바쁘다. 6분 15초를 할애해 배우 송중기(유시진 대위 역)를 단독 인터뷰한 30일 <뉴스9>는 그 정점이었다.

<뉴스9>는 △세계적 한류스타 반열에 오른 소감 △기억에 남는 대사 △송혜교 김지원 중 어떤 캐릭터가 좋은지 △본인이 생각하는 대체 불가 매력 등 배우 개인에게 집중된 질문을 쏟아냈다. “송혜교와 김지원 캐릭터 중 누가 더 끌리느냐”고 묻자 송중기는 “9시뉴스에서 이런 질문을 받을지는 몰랐습니다”라고 답해 눈길을 끌었다.

30일 KBS 메인뉴스 <뉴스9>에 출연한 배우 송중기

KBS는 ‘송중기 효과’를 톡톡히 봤다. 30일 <뉴스9> 시청률은 23.3%(닐슨, 전국 기준)에 달했다. 29일 19.7%에서 3.6%p 오른 수치다. KBS뉴스 홈페이지에서 ‘많이 본 뉴스’와 ‘공감뉴스’ 12개 중 10개가 송중기 관련 뉴스였다. 또한 <뉴스9>의 단독 인터뷰는 다른 뉴스 프로그램에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30일 심야뉴스 <뉴스라인>은 5분 43초짜리 리포트로 송중기 인터뷰를 ‘재방송’했고, 오늘(31일) <뉴스광장>은 무려 3개의 리포트를 통해 11분 가량 관련 내용을 전달했다. <아침뉴스타임>도 4분 21초 리포트, <930뉴스>도 1분 52초 리포트로 거들었다.

KBS 보도국은 29일 <뉴스9> 방송에 대해 ‘연예인을 메인뉴스에 출연시키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있을 수는 있지만 <태양의 후예> 신드롬이 온 국민의 관심사이고, 한류 드라마 열풍을 부활시키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결정한 것’이라며 ‘시청자들 반응도 무척 좋았다’고 반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자사 뉴스를 바라보는 구성원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뉴스9>에서 방송연예 소식을 다룰 수 있고, 유명인이 출연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고 보았지만, KBS뉴스가 현재 주요 사안을 축소하거나 외면하는 와중에 이런 인터뷰가 나갔기 때문에 문제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KBS뉴스는 존재하는 걸 존재하지 않게 만들어 버리고 있다”

A기자는 “송중기 씨가 뉴스에 나올 수도 있다. <태양의 후예> 인기를 문화적 현상으로 분석할 수도 있다. 그런데 5~6분씩 배려받아야 하는 다른 뉴스들이 있는데 송중기 씨를 다룰 때에만 5~6분을 쓴다는 게 문제”라며 “보도국 책임자들은 반성이 전혀 없다. 같이 사진 찍으면서 웃는 그들이 은폐하거나 축소하는 뉴스가 얼마든지 있다. 나경원 의원 부정입학 보도, 황교안 총리 서울역 플랫폼 질주 논란, 청와대의 공천 개입 문제 등 한 줄도 보도하지 않고 있는 게 너무 많다”고 비판했다.

A기자는 또한 “(보도국 간부들에게는 시청률이) 하나의 성적표일 수는 있다. 하지만 시청률이 높다고 해서 좋은 뉴스라고 보긴 힘들다. 조선일보가 1등 신문이라고 하지만 누가 좋은 기사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나. <뉴스9> 시청률은 앞에 하는 일일드라마와 맞물려 있어서 착시 현상이 크다”면서 “요즘은 TV 시청률만 높다고 해서 뉴스를 영향력 있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중시한다는 인터넷, SNS 등 디지털에서의 (KBS뉴스) 도달률은 소위 ‘듣보잡’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메인뉴스라면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뉴스를 보도해야 한다. 정말 제대로 된 저널리즘적인 관점을 가지고 보도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가감 없이 균형있게만이라도 보도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때 수험생 교통 불편 리포트에 대해 사회부장이 ‘단 한 건의 불편함이 있더라도 팩트이기 때문에 보도한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 KBS뉴스가 얼마나 많은 팩트들을 처박아 두고 있나. 현재의 한국사회 흐름과 여론을 바라볼 수 있는 뉴스, 그런 ‘해야 될 뉴스’를 안 하고 있으니 욕을 더 먹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KBS 정지환 보도국장(왼쪽에서 4번째)이 30일 <뉴스9>에 출연한 배우 송중기와 대화하고 있는 모습. 이 내용은 31일 <뉴스광장>에 보도됐다.

B기자는 “주변에 물어 보니 오히려 20~30대 시청자들은 (연예인 출연이) ‘뭐 어떠냐’, ‘뉴스가 너무 딱딱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반응이고, 주 시청자층인 50~60대 쪽에서 연예인이 출연해 신변잡기 질문과 대답을 하는 것을 메인뉴스에서 몇 분씩이나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개인적으로는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걸 잘 하면서 젊은이들과 호흡한다는 취지에서 짧게 출연했으면 모르지만…”이라고 밝혔다.

B기자는 “세월호 청문회 보도도 안 하고 총선을 앞두고 후보자 검증을 하지도 않고… <태양의 후예>가 우리 국가경제와 한류에 분명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건 맞다. 그 의미를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다”면서도 “하지만 아쉽다는 거다. KBS뉴스가 공영방송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해 왔는지 돌아봤으면 한다”고 전했다.

C기자는 “자사 프로그램을 자사 뉴스에서 홍보하는 게 어디 있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KBS 메인뉴스는 위성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도 많이 방송된다. 해외 프로그램 판매가 잘 되게 하기 위해서, 도달률이 높은 9시 뉴스를 활용해 홍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른 직종의 D씨는 “배우가 출연할 수는 있다. 그런데 세월호 청문회 같은 다른 소식은 안 나오는데 송중기 씨만 나오니 이상하다는 것이다. KBS뉴스는 존재하는 걸 존재하지 않게 만들고 있다. 주목 받아야 할 사건들을 그런 식으로 처리해 버린다. 메인뉴스가 중요하다고 한다면, 그만큼 ‘다뤄야 할 것을 제대로 다뤄야’ 맞지 않나”라고 전했다.

오늘(31일) 오전 11시 기준, KBS뉴스 홈페이지의 많이 본 뉴스, 공감 뉴스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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