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심사를 준비하고 있는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최양희)가 이례적으로 심사주안점안(방송)과 심사기준(통신)을 공개했다. SK에서는 “차라리 잘됐다”는 반응이 나온다. 사업계획서 보정 기간 중에 미래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오히려 SK에 유리하고, 가이드라인에 충실한 계획을 제출한다면 경쟁사업자와 시민사회의 반발이 줄고 뒷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SK는 경쟁사업자와 여론의 압박이 거세질 것에 대비해 몇 가지 선심성 약속들만을 추가로 계획해놓기만 한 상황이다.

상황은 여러모로 SK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번 인수합병이 경쟁을 제한할 것인지, 이동통신 시장의 지배력이 유료방송 시장으로 전이될 것인지를 판단하고 있다. LG유플러스 백용대 홍보팀장은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공정위가 경쟁제한성 심사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이번 인수합병은 불허될 것”으로 전망했으나, 국책연구기관인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최근 ‘2015년도 통신시장 경쟁상황 평가’에서 이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다. 또 공정위는 부인했으나 ‘내부적으로 허가로 결론을 내렸다’는 이야기 또한 흘러나왔다.

▲(사진=미디어스)

공정위의 심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미래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오히려 SK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미래부는 방송의 공적 책임, 공정경쟁 방안, 지역채널 및 시청권 강화, 원·하청 고용안정방안, 사회적 신용 등과 관련해 강도 높은 조건을 제시했다. LG유플러스 백용대 팀장은 “며칠 전 SK가 미래부에 ‘(미래부가 제시한 심사주안점안이) 그런 조건이라면 인수합병 계약을 철회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한 것으로 안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이번 사업계획서 작성에 참여한 관계자는 미디어스와 만나 “미래부가 심사주안점안과 심사기준을 제시하기 전에 우리에게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 했고, 우리는 그것들이 심사기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충분한 검토를 거쳐 자료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이미 방송부문 심사주안점안과 통신부문 심사기준을 만족하는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는 이야기다. SK와 CJ는 사실상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의 심사 정도만을 ‘걸림돌’로 보고 방통위를 설득할 만한 계획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 미래부, 방통위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업파트너인 지상파의 입장이 중요해졌다. SK는 현재 지상파에 실시간방송 재전송료와 VOD 대가를 인상할 것을 확약하고, 합병 1년차에 배분할 콘텐츠펀드 3200억원 중 대다수를 지상파에 투입할 것이라며 지상파를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CJ헬로비전 관계자는 “지상파가 최근 CJ 관련 비판보도를 하는 이유는 방송시장에서 CJ E&M이 지상파와 동등한 사업자가 될 것에 대한 위기 의식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SBS를 필두로 해서 지상파가 연일 쏟아내는 SK-CJ 관련 비판 보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SK와 반SK 진영은 모두 고강도의 여론전과 로비에 집중하고 있다. 언론 관련 학회와 언론들은 이미 찬반으로 팽팽하게 갈라섰다. 지상파는 반대 입장을 유지하고 있고, 조선·중앙·동아일보와 종합편성채널 등은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판단이 더 중요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SK와 CJ의 거래가 ‘전체 방송통신산업에 득일지 독일지’에 대한 근본적 논의가 필요하다.

다시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이동통신 1위 사업자, IPTV 2위 사업자, 알뜰폰 2위 사업자인 SK가 케이블(종합유선방송) 1위이자 알뜰폰 1위 사업자인 CJ헬로비전을 인수하려는 목적은 ‘가입자 가두기’에 있다. 이동통신 가입자는 인구보다 많고, 유료방송 가입자는 전국의 가구보다 많은 상황에서 ARPU(가입자당 매출)를 높이는 게 사업자들의 화두다. 특히 이동통신사와 IPTV사업자들이 방송을 미끼 상품으로 활용해 시장에서 ‘경쟁’이 사라지면서 이 같은 목표는 분명해졌다. SK가 CJ의 케이블방송 가입자 415만명(2016년 1월 기준)을 사들인 이유다.

최근의 통계를 확인해보자. 2015년 6월 기준 전체 유료방송가입가구 2835만명 중 이동전화 결합상품 가입자는 496만명이다. 이는 전체 유료방송시장에서 17.5%밖에는 안 된다. 이동통신사에게 82.5%의 시장이 눈 앞에 있는 셈이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은 지난 23일 한국언론정보학회 세미나에서 “케이블은 ARPU가 하락하고, IPTV는 영업비용이 영업매출을 상회하는 등 규모의 경제에 의한 자본 축적이 한계에 부딪혔다”며 “이런 상황에서 이동전화 결합상품이 없는 나머지 82.5%가 SK의 전략지점이다”라고 분석했다. SK가 가입자 415만명을 사들인 이유는 ‘ARPU가 가장 높은 이동전화 결합상품을 선점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이 지난 23일 한국언론정보학회 세미나에서 발제하는 모습. 언론정보학회는 이날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방송통신기업의 인수합병 심사와 공적 가치, 방송정책의 새로운 경로 형성>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언론정보학회 회장인 유선영 성공회대 교수는 “여러 곳에서 다룬 주제이지만 학계에서도 시장에서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언론정보학회는 민주주의, 공공성을 중심으로 현안을 다뤄왔다. 단순하게 트렌드를 분석,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평가하고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학계와 학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세미나가 미디어 환경 변화의 큰 청사진을 그릴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이번 세미나는 학회 차원에서 비교미디어정책연구회에 제안했고, 분과의 집단지성과 논의를 거친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미나를 주관한 비교미디어정책연구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이상훈 전북대 교수는 “이 주제를 두고 서로 등을 돌린 채 이야기를 해왔다. 이번 세미나는 인수합병과 관련해 겉으로 논의되고 있는 논쟁들의 뒤에 숨어 있는 좀더 방송통신계의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고 미디어기업들의 인수합병에 대한 방향과 기준을 제시하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SK-CJ는 이동전화시장의 지배력이 방송으로 전이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CJ헬로비전 임성원 사업협력팀장은 지난 10일 한국언론인협회 토론회에서 “모바일의 지배력이 전이될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유료방송시장의 현황을 제대로 모르고 숫자만 보고 얘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CJ헬로비전 케이블방송 가입자 415만 중 73만은 단체 가입자, 40만은 법인 가입자, 40만 이상은 유료방송 복수 가입자, 30만 가량은 리(里) 단위 가입자로 알려져 있다. SK는 이들을 이동통신 결합상품으로 유도하기 어려울 뿐더러 나머지 가입자들이 이동통신시장 점유율(SK:KT:LG=5:3:2)대로 분포돼 있다고 주장한다. SK가 유도할 수 있는 가입자는 최대 66만명 정도라는 게 두 회사의 분석이다.

실제 SK는 ‘이통3사의 경쟁으로 20만~30만 정도만이 SK의 이동통신 결합상품에 가입할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공정위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쟁사업자들은 더 많은 숫자를 제시하며 지배력 전이가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정보통신정책연구원조차 지배력 전이와 결합상품 시장의 획정 여부 등에 관해 결론을 내지 않은 사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SK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SK는 최소 ‘200만+α’의 가입자를 이동통신 결합상품에 가둘 수 있다. 이 숫자는 CJ헬로비전 케이블방송 가입자 중 단체, 법인, 복수, 리단위 가입자 등을 제외한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가입자를 가두기만 한다면 이동통신, 사물인터넷, 홈서비스 결합상품으로 ARPU를 높일 수 있다는 게 SK의 전략이다. SK-CJ 사업계획서를 작성한 한 관계자는 “모바일도 중요하지만 이번 인수합병의 핵심은 유선”이라고 설명했다. “유선은 KT의 점유율이 높다. 그런데 결국 유선을 깔아야 사물인터넷, 홈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SK가 노리는 것은 유료방송가입자의 거실TV가 아닌 ‘이동통신 결합상품 가입가구의 집 전체’라는 이야기다. 결국 정부 인·허가 사업으로 SK는 가장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미래부와 방통위는 방송통신 시장을 SK와 KT로 재편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전체 유료방송 정책의 기조를 어떻게 세울 것인지, 그것이 소비자에게 이득이 되고, 미디어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심영섭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는 언론정보학회 세미나에서 “(인수합병이 되면) SK와 KT가 가격 선택 등 다양한 결정권을 갖게 된다”며 “이번 결정은 새로운 경로를 만드는 만큼, 정부도 명확한 목표를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관 미디어미래연구소 방송통신정책센터장은 지난 25일 미디어스와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공적 책무를 새롭게 배분하고 유료방송에 대한 중장기 정책을 재편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미래부가 그 동안 제시한 유료방송 관련 정책, 통합방송법안 등의 취지와 내용을 고려하면 이번 인수합병은 무난하게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 미래부는 기술규제를 완화했고, 플랫폼사업자의 대형화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미래부가 방송통신업계의 큰 그림을 제시한 적은 없다. 시민사회와 학계에서 ‘가부를 떠나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업자들의 갈등을 또 다른 규제완화로 해소할 게 아니다. 이번에야말로 방송통신융합 시대에 맞는 거대 플랫폼사업자의 공적 책무를 부여하고, 고용과 투자에 있어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도입해야 한다. SK가 앞으로 제시할 어떤 '카드' 이상의 차원에서 공적 책무를 어떻게 부여할 지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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