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꽃샘추위의 시샘에 잠시 주춤했지만 봄은 분명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와있음이 분명하다. 실제로 다음 주부터는 최고 기온이 20도에 육박하는 등 완연한 봄 날씨를 보일 것이다. 그와 함께 반갑지 않은 황사라는 불청객도 찾겠지만 그래도 봄의 유혹은 그보다 강해서 겨우내 닫혔던 창문들이 열리는 모습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봄을 맞아 <무한도전>이 특급 이벤트를 제안했다. 멤버 다섯 명이 각자 다른 팀을 짜서 결혼식 축가를 불러주는 또 하나의 시청자 보은 이벤트라 할 수 있다. 이른바 웨딩싱어즈다. 전개와 구성은 사실상 <무한도전>이 2년마다 여는 가요제와 거의 흡사하다. 다만 그 규모를 결혼식장의 이벤트로 줄인 정도이다.
이는 <무한도전>이 얼마나 아이템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그 고충을 살짝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가요제보다 훨씬 소박하고, 그 대상이 될 신혼부부에게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엄청난 행운을 가져다주는 꽃보다 반가운 봄소식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우연히 일등 축가를 부른 멤버와 함께한다면 쏠쏠한 혼수까지 챙길 수 있다니 대단한 유혹이다.
<무한도전>은 노래와 궁합이 잘 맞는다. 그래서 웨딩싱어즈도 장기 프로젝트까지는 아니어도 짧은 봄을 함께하기에는 충분한 시간과 재미를 가져다 줄 것이라 일단 기대만발이다. 그런데 그 기대에 더 큰 기대를 얹어준 인물이 등장했다. 봄의 캐롤이라 불리는 ‘벚꽃엔딩’의 주인공 장범준이 박명수와 짝을 이뤄 축가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 가요계에 발을 딛었지만 이후 방송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범준을 보는 것 자체로도 흥미로운 일이었는데, 그보다는 장범준의 독특한 아니 유니크한 태도가 더 흥미로웠다. 신기롭다고 할 정도로 새로운 모습이라 할 수 있는데, 괜히 장‘봄’준이 아니었다.
일단 장범준은 거절의 아이콘이었고, 솔직했다. ‘엠알로 하면 안 하겠다. 춤을 추라면 또 안 하겠다’ 방송에는 나왔지만 자기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뚜렷했다. 89년생. 우리 나이로 28세의 가수가 방송 카메라 앞에서 거절을 남발할 수 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방송이니까’라는 말 한 마디에 연예인들은 모두 자기를 놓게 된다. 물론 그것이 연예인의 본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에 저항하는 이가 없다는 것은 좀 싱거운 일이다. 장범준은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카메라 권력에 완강히 자기를 방어하는 모습이었고, 살짝 위험해 보이기는 했어도 신선함을 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당당함에 노련한 방송인 박명수가 그를 포장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솔직함과 담백함 역시 반가웠다. 그런 장범준에게서 어떤 문화충격까지 느끼게 된다.
그런 장범준에 대해서 벌어놓은 돈 때문이라고 하기는 좀 부족하다. 아무리 히트를 해도 몇 주면 끝나는 요즘 노래들과 달리 봄캐롤이라 불릴 정도로 ‘벚꽃엔딩’은 매해 다시 히트되는 신기한 노래다. 그래서 장범준과 비슷한 또래라면 상상에서나 가능한 돈을 벌어주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돈이라는 것은 많이 가질수록 더 갖고 싶게 만드는 법이다. 그래서 뜰수록 방송에 더 출연하고, 더 많은 행사에도 다니게 된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장범준은 방송도 행사도 하지 않고 그 이유를 “굳이 하지 않아도”라는 말을 한다. 그것은 현재의 수입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젊은 장범준의 재산의 크기가 너무 커서 소박하다는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욕심이 없다는 정도는 해도 될 것이다.
세상에 말이 되지 않는 것 중에 하나가 욕심 없는 부자일 것이다. 그러나 장범준에게는 그 욕심이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표정과 말 속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런 장범준과 만난 박명수는 어쩌면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전혀 닮지 않은 이들의 만남이 의외의 케미를 보였고 관심을 끌었다. 부조화 속 조화랄 수 있는 박명수, 장범준 커플이 어떤 축가를 만들어낼지 기대가 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