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자신을 비례대표 2번으로 전략공천하고, 문제적 인사들을 비례대표 당선권에 올려둔 결정을 두고 말이 많다. 김 대표는 ‘친노’ 이해찬 의원과 ‘운동권’ 정청래 의원을 정무적 판단으로 내쳤을 때만큼, 아니 그때보다 더 강한 비판과 비난을 받고 있다. 야권 성향으로 분류할 수 있는 언론은 “김종인이 선거를 망쳤다” “탐욕의 정치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김종인 대표는 과연 선거를 망쳤을까. 김 대표는 국민의당과 안철수 의원에게 야권통합을 먼저 제안하고 거절당했다. ‘야권의 적자는 더불어민주당’이라는 명분을 챙겼다. 야권연대를 원하는 정의당을 앞에 두고 시간을 끌었다. 소선거구제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사표 심리를 유도한 것이다. 이해찬와 정청래를 정리하며 ‘전혀 다른 당이 됐다’는 듯한 인상을 줬다. 호남, 386, 누리꾼 같은 집토끼는 도망가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그는 새누리당을 다시 유일한 경쟁자로 만들었고, 새누리당이 ‘살생부’와 ‘죽여버려’ 녹취록 갈등으로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의 행보에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는 이른바 ‘정치 9단’의 실력을 보여줬다. 김종인 대표의 비례대표 2번 셀프추천을 두고 비난 일색이다. 그러나 사실 그가 전두환 정권 때부터 박근혜 정부에서까지 경제전문가, 경제민주화 전도사, 킹메이커 등으로 일하고 한몫을 챙기지 못한 것은 박근혜 정부가 유일하다(그가 비례대표만 4번을 했다). 비례대표에 관심이 없다고 하다가 갑자기 자신을 2번으로 결정한 것을 두고 말바꾸기 논란도 있지만, 문재인 전 대표가 김종인 대표 영입 과정에서 비례 2번을 약속했다는 보도도 있다.

김종인 대표가 독선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음에도 더불어민주당이 용인한 것은 다른 이유는 찾아볼 수 없다. 문재인 전 대표가 김종인을 데려오고, 거대정당이 김종인 대표 1인에게 당헌당규 개정권과 해석권을 넘겨준 이유는 ‘새누리당의 개헌선’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그만큼 총·대선 판세가 불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권심판론은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박근혜 심판, 새누리 심판을 외치지만 먹혀들지 않는 게 현실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왼쪽)가 2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5차 중앙위원회의에 참석하며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이유는 새누리, 더민주 두 거대정당에 있다. 두 보수양당은 지난 선거들을 통해 한국은 이념과 정책의 차이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 미달의 ‘진영논리’로만 선거를 치렀다. 유권자들은 새누리냐, 아니냐는 2지선다형 투표용지에 적응했다. 정치학에서 이야기하는 회고적 투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권자들이 전망적 투표를 할 가능성도 찾아볼 수 없다. 진보정당 또한 야권연대에만 목을 메다 ‘실기’ 했다. 이것이 지금 김종인 대표가 보는 선거의 형세라면, 그의 선택은 불합리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철저히 실리를 챙기고 있다.

그러나 김종인 대표가 맡은 역할이 ‘외연 확대’라면 그의 정치가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 그는 보수에서 단 한명, 진영 의원만을 데려왔다. 새누리당이 유승민계를 제외한 비박(비박근혜계)을 어느 정도 배려한 공천으로 다시 보수결집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정치는 성공적이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을 ‘이념과 성향이 모호한 정당’으로 만들어 선거를 치르겠다면 그만큼 지지층을 넓혀야 하는데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선거 상황을 고려하면, 김종인 대표의 정치가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은 단 하나 남았다. 보수가 ‘합리적’이라고 평가하는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을 영입하는 것뿐이다.

문제는 ‘김종인의 정치가 성공한 이후’다. 우클릭한 제1야당은 투쟁하지 않고, 시민들은 수차례 반복된 프레임에서 대선을 맞이하게 된다. 총선에서 몫을 얻지 못한 진보정당이지만 대선이라는 더 큰 정치에서 운신의 폭은 좁아진다. 국민의당은 호남 자민련 수준으로 전락한다. 정치는 그만큼 퇴보한다. 야권도 여권도 재편하지 못한 김종인 대표의 정치는 보수양당의 양당제를 강화하기만 한다. 지금 김종인 대표는 한국정치의 수준을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고, 그가 통제하는 야권의 정치는 정치를 망가뜨리고 있다. 지금은 ‘탐욕의 정치’를 비난할 게 아니라 ‘정치의 소실’을 비판해야 할 때다. 김종인 대표는 지금 선거를 망치고 있는 게 아니다. 정치를 망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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