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702일째인 17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근처에 경찰버스와 병력이 등장했다. 4·16 가족협의회와 416연대가 참사 2주기를 맞아 개최한 <4·16 세월호 참사의 교훈과 앞으로 가야 할 길> 토론회 개최에 항의하러 온 ‘어버이연합’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어버이연합은 왜 정동까지 온 것일까.

“세월호 선동세력 OUT”, “떼법의 산실! 세월호 특조위! 즉각 해체!”, “세월호 왜곡선동! 416연대! 즉각 퇴진!”, “불법폭력시위 선동하는 박래군 즉각 퇴출하라”, “전문시위꾼(박래군) 즉각 퇴출!” 등이 쓰인 피켓만 봐도 알 수 있듯, 어버이연합이 겨냥하는 사람은 이날 토론회 패널이었던 416연대 박래군 상임운영위원이었다. 어버이연합은 세월호 참사가 ‘국민 모두가 가슴 아파한 비극’이라면서도 유족들 곁을 지키는 박래군 위원은 ‘불법폭력시위’를 주도하는 ‘불순세력’이니 퇴출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닫힌 창문도 뚫는 큰 목소리는 대부분 ‘증오’를 표현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자며 ‘교훈’과 ‘나아갈 길’을 말하는 자리와는 정반대였다.

17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4·16 세월호 참사의 교훈과 앞으로 가야 할 길> 토론회가 열렸다. 같은 시각,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은 이날 토론회 패널로 참석한 416연대 박래군 상임운영위원을 비난하고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해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미디어스

마치 이 같은 촌극을 예상한 듯, 이충진 한성대 철학과 교수(<세월호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는 참사의 원인이 한국사회의 ‘야만성’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참사의 소극적 원인은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따랐던 승객뿐 아니라, 침몰하는 배 앞에서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윗선의 명령만을 기다리며 가만히 있었던 선원과 해경에게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참사의 적극적 원인은 ‘야만적 행위들’에 있었고, 이 뿌리에는 한국사회의 야만성이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충진 교수는 “야만성이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 정확히 표현하자면 ‘사회적 강자가 사회적 약자에게 불합리하게 행사하는 모든 종류의 폭력’”이라고 규정했다. 세월호 승객 구조만의 의무뿐 아니라 그 구조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선택하고 시행할 권한을 독점하고 있던 선원들이 자신들에게 목숨을 의탁한 ‘약자’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해경이 침몰하는 배를 그저 구경만 하며 일방적 폭력을 저질렀던 것을 ‘야만적 행위들’로 꼽았다.

이충진 교수는 “한국사회의 폭력은 다른 나라, 다른 사회에 비해 현저하게 부당하고 현저하게 적나라하다. 그 강도와 빈도가 너무 두드러져서 ‘한국의 야만성’이라고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다”면서 “지금 여기의 한국 사회는 야만의 사회다.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에게 노골적이고 적대적이며 악의적인 폭력을 행사한다. 우리 안의 야만성과 우리 밖의 야만성은 세월호를 침몰시켰고 단순한 사고를 참혹한 사건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약자친화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4·16 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이충진 교수님이 말씀해 주신 ‘가만히 있음’과 ‘야만성’ 두 가지가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며 ‘아이들이 생각하는 습관이 없으면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을 겪게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포항공대의 한 교수를 비판했다.

“정말 우리 아이들이 생각하는 습관이 없어서 그랬을까. 아마 이 분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전혀 들여다보지 않은 분인 것 같다. 이미 그냥 세상에 공개돼 있는 우리 아이들의 동영상 이걸 한 번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핸드폰으로 서로를 찍고 기록하며 한 이야기들, 그 표정들…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준다. 그럼 너는? 나는 또 가져오면 되지. 선생님이 연락 안 되니까 어디 계셔, 아이들이 선생님을 챙긴다. 누군가 이러다 죽는 거 아냐 하고 울먹거리니까 우리 살 건데 무슨 개소리야 하면서 격려한다. 이러다 우리 죽는 거 아냐? 우리 나가야 되는 거 아냐? 이 이야기 수없이 반복한다. 그 배 안에서 그 짧은 시간 동안 생각을 많이 했던 그 아이들에게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든 게 과연 누구냐. 그걸 꼭 되묻고 싶다”

유경근 위원장은 “이 사회가 책임과 권한을 가진 사람들에게 관대한 것은 관대한 것이 아니라 더욱 더 큰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함께 인식해야 한다. 강자에게 관대한 것은 야만이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야만인스러운 사회, 그런 사회에서 우리가 왜 세금 내고 국민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지 근본적으로 질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권운동사랑방 미류 활동가는 “한국사회가 청소년을 어떻게 대해 왔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참사 후 우리를 아프게 했던 그림 중 하나가 ‘바보 같이 착한 아이들아, 미안해’였다. 가만히 있거나 무언가를 했거나 이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가 달랐던 것이다. 선원들은 자기들만 살려고 나왔지만 아이들은 함께 살기 위해서 조끼를 입혀주거나 배가 더 흔들릴까봐 그렇게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근육을 써야 하는 것 아시지 않나. 우리가 너무 쉽게 사회적 구성원들을 대상화하고, 권리를 가진 ‘주체’로 인정해 오지 못한 경험들이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을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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